▲ 영화 <라라랜드>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지난해 12월 7일 국내 개봉돼 351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고 제74회 골든글로브에서 역대 최다 7관왕을, 제89회 아카데미에서 최다 6관왕을 각각 휩쓴 ‘라라랜드’(데이미언 셔젤 감독)가 오는 8일 재개봉된다. 과연 어떤 영화이기에 신드롬이 아직도 진행 중일까?

미아(엠마 스톤)는 고향을 떠나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 내 커피숍에서 일하며 영화배우를 꿈꾼다.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은 레스토랑에서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로서 자꾸만 재즈가 상업화되는 데 반발해 순수 재즈를 지향한다.

제멋대로 프리재즈를 연주했다가 한 번 경고를 받은 세바스찬은 사장의 명령대로 캐럴을 연주하다 돌변해 프리재즈로 바꾼다. 뭔가에 홀린 듯 이 레스토랑에 들어와 세바스찬의 연주를 듣고 무아지경에 빠진 미아는 그에게 말을 걸려 하지만 막 해고를 당한 세바스찬은 그녀를 무시하고 지나친다.

▲ 영화 <라라랜드> 스틸 이미지

수영장 파티에 참석한 미아는 이리저리 둘러보다 촌스러운 복장을 하고 아하를 연주 중인 밴드의 키보디스트 세바스찬을 발견한다. 그렇게 둘의 인연은 시작된다. 처음엔 절대 서로에게 끌리는 게 없다고 장담했던 두 사람을 이어주는 건 ‘꿈’이었다.

세바스찬은 잘나가는 대학 동창 키이스의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고 성공 가능성이 높은 자신의 상업적 재즈밴드에 들어오라는 제안을 거절할 만큼 이상주의자다. 미아는 커피숍에 수시로 들락거리며 스튜디오가 공짜로 제공하는 커피 값을 꼭 내고야 마는 스타들을 보며 그들을 꿈꾼다.

하지만 미아는 오디션에서 매번 낙방한다. 면접관들은 자신의 대사 한 마디에 ‘그만’을 외치는가 하면 열심히 연기를 할 때 딴청을 피운다. 한 마디로 그녀는 재능이 없거나 외모가 부족하거나 ‘빽’이 없는 것이다.

재즈가 싫다던 미아는 세바스찬의 재즈를 향한 열정에 빠져들고, 세바스찬은 미아의 순수함에 이끌린다. 세바스찬이 미아에게 ‘이유 없는 반항’을 보여주겠다고 약속한 시각, 미아는 오래전에 약속한 연인과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일행의 따분한 상류사회 화제를 들으며 안절부절 하던 끝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극장으로 달려간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한집 살림을 차린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세바스찬은 키이스의 밴드에 들어가고, 미아는 자신이 주인공까지 맡을 1인 연극 대본을 쓰기 시작한다. 밴드는 단숨에 스타덤에 올라서고 음반 취입과 투어는 물론 각종 인터뷰 등으로 세바스찬은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아진다.

▲ 영화 <라라랜드> 스틸 이미지

드디어 미아의 연극이 열린 첫날. 관객은 극소수였고, 그들은 혹평을 쏟아낸다. 완패였다. 투어로 멀리 떠나있는 세바스찬에게 미아가 메시지를 남긴 뒤 집으로 들어오니 세바스찬이 열심히 요리 중이었다. 그는 미아를 깜짝 놀라게 할 서프라이즈 파티를 준비 중이었던 것.

그렇게 오랜만에 오붓한 저녁식사를 하던 두 사람은 밴드 문제로 말다툼을 벌이게 된다. 세바스찬의 원래 꿈은 그가 오랫동안 재즈를 연주해왔지만 이제 삼바로 장르를 바꾼 카페를 인수해 그 무대에 평생 프리재즈를 올리는 것이었는데 어느덧 그는 현실과 타협해 상업 밴드의 일원으로 돈 버는 데 만족하고 있다. 미아는 그게 불만이었지만 세바스찬은 현실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논리를 펼치고 결국 미아는 짐을 싼다.

혼자 남은 세바스찬에게 전화가 온다. 영화제작사인데 미아의 일인극을 봤고, 그녀를 영화의 주인공으로 캐스팅하고 싶다는 것. 세바스찬은 얼핏 집이 도서관 앞에 있다는 미아의 말을 떠올려 그녀의 집을 찾아낸다. 미아는 드디어 꿈에 그리던 영화배우로 탄탄대로를 달리고, 그렇게 5년이 지난다.

이 영화에서 재즈는 매우 중요한 키워드다. 재즈란 용어에는 장르적 특성은 물론 ‘마음대로’ 혹은 ‘즉흥적으로’ 연주한다는 꽤 의미심장한 임프로비제이션에 대한 변별성이 담겨있다. 재즈 자체가 ‘프리’라는 의미를 담고 있지만 재즈의 장르가 자꾸 분리되고, 그래서 프리재즈라는 굳이 귀찮은 용어를 따로 구분해야 한다는 건 그만큼 재즈가 순수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의미다.

그건 사진기 영상기 녹음기 등 기계의 발달이 순수예술을 파괴하고 그 영역을 침범하고 있다는 메타포다. 처음에 미아는 재즈를 싫어한다고 말한다. 왜? 그녀는 연극배우(배고픈 예술가)가 아닌 무비스타(배부른 연예인)가 꿈이니까. 세바스찬은 제 집에 제멋대로 들어와 “왜 이렇게 난장판처럼 해놓고 사냐? 좀 더 현실적으로 살아”라는 누이의 핀잔에 “왜 낭만을 부정적으로 보냐"라고 응수한다.

재즈는 낭만이고 꿈이지만 무비스타는 현실이고 자본주의에 걸맞은 목표다. 즉 이 영화는 재즈와 팝, 연극과 영화의 대비를 통해 보수와 진보를 말하고자 한다. 보수와 진보는 싸구려 정치인들이 대중을 혹세무민함으로써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포장한 이념적 개념과는 다른 트러디셔널리즘과 트렌드다.

재즈는 전승주의고 영화는 개혁주의다. 재즈는 음반으로도 대중과 만나지만 무대와 객석이란 관계를 통해 즉석에서 즉흥연주로 소통할 때 진정한 재즈가 된다. 재즈는 한 곡을 놓고 여러 밴드가 연주하면 각자 다른 곡이 되고, 심지어 한 밴드가 거듭 연주할 때조차도 각기 다른 곡으로 완성된다. 멤버 하나만 바뀌어도 또 달라진다.

▲ 영화 <라라랜드> 스틸 이미지

재즈는 각 파트의 연주자들이 모두 각자가 주인공이 돼 멤버들과 경쟁하고, 때론 각 유닛으로서(혹은 써) 화합하며, 일체화된 ‘인 더 그루브’를 통해 절정부를 향해 이어달리기와 함께 달리기를 동시에 펼치는 레이스다. 하지만 아무리 아트무비가 살아있다고 해도 영화는 연극의 산업적 변혁임을 부정할 수 없다. 영화가 영화의 자본주의적 속성을 꼬집는 아이러니!

게다가 이 영화는 보수와 진보의 진정한 추구 지점과 목표치를 알려주는 데 꽤 공을 들인다. 재즈의 오리지널리티를 지키려는 세바스찬은 보수다. 연극의 순수함에 빠져 시나리오까지 직접 썼지만 낙담한 채 결국 무비스타를 향해 질주하는 미아는 진보다.

보수와 진보는 서로 갈등할 수밖에 없었지만 결국 그들의 지향점은 똑같다. 꿈과 낭만이다. 세바스찬은 밴드의 일원으로서 낭만은 상실했지만 그것을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써 미아의 꿈을 이뤄줬다. 대리만족일 수도 있겠지만 그는 미아의 꿈과 낭만을 모두 충족시켜줬다. 결국 그는 번 돈으로 재즈 카페를 인수하니까 낭만까지 챙겼다. 세바스찬과 달리 진보적인 그의 누이는 흑인과 결혼한다. 참으로 영악한 영화다.

영화의 결말은 천편일률적이지 않아 신선하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뮤지컬과 판타지라는 장르를 결합함으로써 연극적 예술성과 영화적 완성도를 모두 충족시키고 있다는 데서 작품성이 매우 높다는 게 강점이다.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의 뮤지컬 장면은 두고두고 회자될 몇 안 되는 영화계 최고의 인트로다.

미아와 친구들의 클럽에 가는 길과 클럽에서의 뮤지컬, 세바스찬과 미아의 달빛 아래의 탭댄스 등은 연인들을 위한 동화다. 세바스찬의 눈부신 피아노 연주와 주제곡 ‘City Of Stars’는 왜 영화에 음악이 그리도 중요한지 힘찬 웅변을 쏟아내는 서정의 향연이다.

감독은 특히 빛과 색감으로 비주얼을 탄탄하게 만들었다. 천문대에서의 두 주인공의 천체를 유영하는 판타지부터 두 사람이 연인이 되는 극장에서의 역광의 콘트라스트를 이용한 연극과 영화의 묘한 동거와 경쟁관계의 서글픈 알레고리는 압권이다.

감독의 믿을 수 없는 연출력에 방점을 찍은 건 두 사람의 눈부신 연기력이다. 엠마 스톤이 ‘인생 영화’라고 손꼽을 만하다. 재미와 볼거리와 메시지와 철학과 이념을 모두 담은 보기 드문 걸작이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