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다크 플레이스> 스틸 이미지- 클로이 모레츠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킥 애스: 영웅의 탄생’(매튜 본 감독, 2010)에 대한 다수의 선입견은 유치한 청소년용 혹은 저예산의 슈퍼히어로물이었지만 관람한 관객 대다수는 두 가지에 크게 놀라 손뼉을 치며 속편이 제작되는 데 힘을 실어줬다.

첫째는 ‘왓치맨’ ‘다크 나이트’ 등을 잇는 슈퍼히어로의 어두운 면이 더욱 현실적으로 피부에 깊게 와닿는 철학과 메시지를 담았다는 점이고, 둘째는 마치 ‘킬 빌’의 새로운 버전 같은 느낌을 주는 주인공 힛걸의 활약과 그 역을 맡은 13살 소녀 클로이 모레츠의 뛰어난 연기력과 엄청난 매력이었다.

모레츠의 별명은 ‘제2의 다코타 패닝’. 그런데 다코타보다 동생 엘르가 점점 더 부각되는 느낌을 주기도 하고, 현시점에서 국내 팬들에게 ‘핫’한 또래의 여배우는 다코타보다는 단연 모레츠다. 에릭남과의 돈독한 친분으로도 유명해 어쩐지 한국에 친숙한 할리우드 스타다.

▲ 영화 <다크 플레이스> 스틸 이미지

그녀는 뛰어난 미모는 아니지만 천사와 악마, 성녀와 창부, 여자와 소녀, 지성과 퇴폐 등의 극단의 이미지가 동시에 담겨있는 독특한 외모로 매력을 풍기는가 하면 선역과 악역을 동시에 소화해내는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배우라 그 값어치를 인정받는다.

이후 뱀파이어 소녀와 인간 소년의 사랑을 소재로 한 스웨덴의 토마스 알프레드슨 감독의 걸작을 리메이크한 ‘렛 미 인’의 여주인공으로 한국 관객과 만난 뒤 2012년 팀 버튼의 ‘다크 섀도우’에서 여주인공 에바 그린에 뒤지지 않는 캐릭터와 연기력으로 한국 관객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 영화 <다크 플레이스> 스틸 이미지-샤를리즈 테론

‘다크 플레이스’(질스 파겟-브레너 감독, 2015)가 딱 그렇다. 미모의 슈퍼스타 샤를리즈 테론이 주인공이지만 남는 배우는 역시 모레츠다. 한국에서 6만 6000여 명의 관객 동원에 그치고 슬며시 사라진 ‘망작’이지만 그 내용과 메시지만큼은 만만치 않은 문제작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특히 모레츠의 광기 어린 연기력은 두고두고 회자될 열연이었다.

‘나를 찾아줘’의 길리언 플린의 소설이 원작이다. 추리탐정 모임에서 활동 중인 라일(니콜라스 홀트)은 25년 전 텍사스 한 농장에서 17살의 큰 아들 벤이 엄마와 어린 여동생 2명을 잔혹하게 살해한 사건에 의구심을 갖게 되고 유일한 생존자이자 증인인 막내 리비(샤를리즈 테론)를 찾는다.

리비는 워낙 유명한 사건이라 성금이 쇄도하고 출판물 등의 인세가 짭짤해 경제적 어려움 없이 혼자 자랄 수 있었고, 그 덕에 아직까지 ‘백수’로 살아왔지만 통장 잔고가 거의 바닥을 보이는 상황. 아직도 어릴 때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래서 기억하기 싫은 일들이지만 라일이 돈을 준다고 하자 그와 함께 사건을 재조명하기 시작한다.

▲ 영화 <다크 플레이스> 스틸 이미지

먼저 수감된 벤을 면회한다. 자신에 대한 경계심을 풀지 않는 리비에 대해 벤은 심한 불쾌감과 폭력적 성향을 드러낸다. 리비는 “왜 죽였어?”라고 묻지만 벤은 마음에 들지 않는 답을 내놓는다. 벤의 혐의에 힘을 실어준 당시 증언자들을 만나던 중 리비는 벤을 짝사랑했던 한 여자로부터 뜻밖의 인물을 알게 된다. 벤의 아이를 임신했던 또래의 디온드라(클로이 모레츠).

수소문 끝에 리비는 은거 중인 디온드라를 찾아낸다. 25년 전. 디온드라는 인디언 트레이와 친하게 지내는데 그들은 사탄을 숭배하고 마약에 빠져있었다. 벤은 디온드라를 진정으로 사랑했지만 어른들은 그들을 정상으로 안 봤다. 결국 악의적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마치 사살인 양 굳어져 동네에서 벤은 어린 소녀를 탐하는 변태로 낙인찍히게 됐고, 그게 살인혐의 재판에서 결정적인 작용을 했다.

▲ 영화 <다크 플레이스> 스틸 이미지-니콜라스 홀트

그러나 벤은 상처받은 아이였다. 방탕한 아버지는 무책임했고, 그렇게 부모가 이혼한 뒤 엄마 혼자 4남매를 어렵게 키웠지만 아버지는 무시로 찾아와 엄마에게 돈을 뜯어갔다. 디온드라 등 마을의 청소년들에게 마약을 공급한 이도 아버지였다. 결국 생활고에 시달리고, 벤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와 공격에 괴로워하던 엄마는 최후의 결정을 내리는데.

디온드라는 지금까지 스크린에서 봐온 모레츠와 확연히 다르다. ‘킥 애스’의 억울하게 엄마와 아버지를 잃고 흔들리는 ‘성장통’을 겪는 동시에 냉정한 살인병기의 양면을 보였던 소녀도, ‘다크 섀도우’의 반항적이고 퇴폐적인 사춘기 뱀파이어도 없다. 겉과 속이 다른, 자신의 사랑마저도 조작해 스스로 믿게 만드는 아주 복잡한 캐릭터지만 모레츠이기에 가능했다. 악마 숭배에 미쳐 벤에게 광기를 뿜어낼 때는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다.

▲ 영화 <다크 플레이스> 스틸 이미지

메시지는 결국 희생과 가족애, 그리고 아무리 상처 입은 영혼일지라도 언제든지 새 출발할 기회는 있다는 천편일률적인 것이지만 영화는 테론과 홀트로 시작해 모레츠가 긴 여운을 남긴다는 점에서만큼은 매력적이다. 세상은 편파적이거나 편견이 횡행한다는 철학은 꽤 설득력을 갖췄다.

아주 선하고 순수하며 비폭력적이었던 벤이 이기적인 사람들에 의해 왜곡되고 그게 소문으로 번져 진실처럼 굳어짐으로써 살인죄 누명을 쓰고 수감된 동안 진짜 그런 잔인한 살인범 같은 느낌을 주는 말투와 행동을 굳히고 생김새마저 그렇게 변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오해와 편견에 가득 찬 기득권 세력이 평범한 사람을 범죄자 혹은 그런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설정은 충분한 기시감을 준다. 여론 조작.

심지어 유일한 혈육인 리비조차 벤을 오해하고, 그걸 진실이라 자기최면을 걸었을 정도이니. 벤이 무혐의를 입증함으로써 진실을 밝히려 하지 않은 이유는 희생이었다는 결론은 스릴러도 감동을 주고자하는 요즘의 패러다임이다. 세상이 그만큼 각박해졌다는 증거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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