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1급기밀>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2016년 세상을 떠난 홍기선 감독은 1980년대 서울대학교 영화제작 서클 ‘얄라셩’, 영화 운동 집단 ‘서울영상집단’, 영화제작소 ‘장산곶매’ 등의 창립과 조직을 주도한 한국 영화 운동 1세대다. 국내 최초로 방위산업 비리를 폭로한 ‘1급기밀’은 그의 유작이다.

평범한 아내와 초등학생 딸 시원과 사는 박대익 중령(김상경)은 국방부 군수본부 항공부품구매과 과장으로 전출 명령을 받고 뛸 듯이 기뻐한다. 이제 거친 야전생활을 끝내고 편안하게 내근을 하는 가운데 시원을 큰 학교에 보내고 각종 혜택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직속상관은 외자부장 천 장군(최무성)이고, 대익의 동기인 남선호 대령(최귀화)이 그의 오른팔이다. 부하직원은 구매과 실세 황 주임(김병철) 등. 대익에게 아내 명의로 된 석연치 않은 판공비 통장이 지급되는가 하면 결재서류에서 수상한 점이 발견되는 등 업무 시작부터 만만치 않다.

어느 날 공군 전투기 파일럿 강영우 대위가 찾아와 전투기 부품 공급업체 선정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다. 이에 대익이 부품 구매 서류를 확인하던 중 유독 미국의 에어스타 부품만 집중된 사실을 발견하고 천 장군에게 어필하지만 묵살된다.

▲ 영화 <1급기밀> 스틸 이미지

작전에 투입됐다 귀대 중이던 강 대위가 전투기 추락 사고를 당해 목숨이 경각에 달하자 외자부에서 남 대령 주재로 긴급 대책 회의가 열린다. 대익만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일사불란하게 이를 전투기 결함이 아닌, 강 대위의 나태와 비위로 은폐하기로 결론을 내리고 조작된 내용이 언론을 통해 발표된다.

양심의 가책을 느낀 대익은 천 장군 몰래 군검사 정인국(신승환)을 만나 이 내용을 폭로하고 인국은 대학 후배인 방송사 탐사보도 기자 김정숙(김옥빈)을 끌어들인다. 세 사람은 나름대로 팀워크를 발휘해 각종 증거를 수집한 뒤 대익의 폭로를 방송에 내보내려 하지만 미리 정보를 입수한 천 장군의 로비에 의해 방송내용은 오히려 대익이 인사 불이익에 불만을 품고 날조한 것으로 조작된다.

천 장군의 반격으로 가정이 풍비박산이 된 대익은 정숙이 공명심에 자신을 희생시켰다고 원망하고, 구매과에선 황 주임의 노골적인 배타로 ‘왕따’를 당하더니 결국 한직으로 전출 통보를 받는다. 그러던 중 에어스타의 로비스트 캐서린(유선)의 보디가드가 갑자기 대익의 앞에 나타나 기겁하게 만드는데.

1998년 2월 국방부 조달본부 박대기 구매 담당관이 MBC ‘2580’에 내부 비리를 폭로한 뒤 한직으로 밀려나 그해 9월 ‘명예퇴직’했다가 사망했다. 2002년 3월 공군 시험평가단 부단장 조주형 대령은 차세대 전투기 F-X 사업의 시험 평가 과정에서의 부당한 압력을 제보했지만 대법원에서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09년 10월 해군 김영수 소령은 MBC ‘PD수첩’에 납품 비리 의혹을 제보했지만 한직을 전전하다 스스로 전역했다.

▲ 영화 <1급기밀> 스틸 이미지

‘1급기밀’은 이런 실화를 모티프로 권력과 군 고위층의 추악한 면을 까발리기 위한 의도를 지녔기에 상업적 테크닉을 발휘하는 걸 자제하는 대신 진정한 군인의 복무자세에 충실하려 하지만 동시에 가족의 안위와 행복도 그에 못지않은 가치관이기에 갈등하는 대익의 심리묘사에 집중한다. 시종일관 다큐멘터리처럼 흐르는 내러티브가 긴장감을 고조시킨 뒤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결말이 통쾌한 청량감을 선사한다.

군인정신이 투철하면서도 동기보다 진급이 늦은 대익은 천 장군의 허수아비로서 안성맞춤이다. ‘군인은 상명하복’이 가장 센 채찍이고, 진급과 적당한 부의 분배는 최상의 당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 장군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다. 그들처럼 부패한 군인이 가진 군인정신은 ‘부정할지라도 상관이 까라면 까는 것’이었지만 대익은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한 명령만 목숨 걸고 이행하는 소신을 가진 ‘진짜 사나이’였던 것이다.

인간의 본성이 천박한 게 맞는다면 극단적 자본주의는 그 천박함의 절정에 딱 들어맞는다. 어린 딸이 군인을 꿈꿀 만큼 집에서도 군대식으로 살아가는 대익은 천 장군의 비리에 갈등하다가도 국방부 인사참모부장이 진급을 약속하자 이내 잊고 얼굴에 미소를 짓는다.

▲ 영화 <1급기밀> 스틸 이미지

그러나 그의 천박함은 거기까지. “군인으로 남고 싶다. 늦었지만 다시 군인이 되겠다”라며 내부자 고발을 결심한다. 그건 그가 비록 무능할지라도 아내에겐 떳떳한 남편이, 딸에겐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국가엔 당당한 군인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이게 정상인데 기존의 군은 비정상이 분명히 존재했다. 군사정권이 낳은 폐단이 잔존해있기 때문이다.

법은 군대의 1급기밀을 누설한 자와 그걸 보도한 자도 징역형으로 정하고 있다. 문제는 1급기밀의 정체성이다. 국가안보와 국익과 국민의 안위 등에 위협을 가하는 기밀이라면 문제가 없지만 개인 혹은 일부 집단의 사리사욕을 위한 비밀마저 군대에 관계된 것이라고 1급기밀로 분류한다면, 그런 비리에 연루된 사람이 1급기밀로 규정한다면 과연 그게 국가적 문제일까? 방산비리를 제보하는 강 대위는 “적과 싸우다 죽고 싶지, 장비의 결함 때문에 죽고 싶지 않다"라고 외친다.

군사문화와 밀접했던 호루라기는 다른 상징성으로 등장한다. 대익은 호신용으로 시원에게 줬던 그것을 시원으로부터 다시 선물을 받고 자신을 해치려는 천 장군과 그 일행들에게 경고용으로 분다. 이명박 정권 때 기획돼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이른바 ‘사자방’ 비리를 명명백백하게 파헤치라는 전 국민적 염원이 하늘을 찌를 듯한 시기에 개봉되는 점이 흥미롭다. ‘누구나 알고 싶어 하지만 아무도 밝히지 못하는 진실’은 아직 규명하지 못한 게 많다. 101분. 12살. 오는 24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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