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이프 오브 워터’, ‘헬보이’의 철학 멜로 스핀오프 [유진모 칼럼]

유진모 칼럼니스트l승인2018.02.03l수정2018.02.13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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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제75회 골든 글로브에서 감독상과 음악상을 수상했고 제90회 아카데미에서 13개 부문에 걸쳐 노미네이트된 양지와 표절 논란의 음지를 동시에 지닌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은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대표작 ‘헬보이’ 시리즈의 스핀오프 멜로 버전이라는 설명이 가장 쉬울 듯하다.

남자 주인공인 양서인간은 ‘헬보이 2: 골든 아미’에서 요괴 세계의 누알라 공주와 사랑에 빠지는 에이브와 떼려야 뗄 수 없다. 누알라의 생명이 연결된 쌍둥이 누아다 왕자는 수천 년 전 인간과 요괴가 맺은 휴전협정을 깨고 인간 세상을 정복하려 한다. 이에 헬보이 등은 누아다를 죽임으로써 누알라까지 죽게 만들어 에이브를 비통에 빠뜨린다. 이번의 사랑은 비극일까, 해피엔딩일까?

미국과 소련 간의 우주 개발 경쟁이 한창인 1960년대. 언어장애를 지닌 엘라이자(샐리 호킨스)는 미국 항공우주연구센터 비밀 실험실에서 청소부로 일하고 있다. 그녀의 친구는 무기력한 남편과 함께 사는 흑인 동료 젤다(옥타비아 스펜서)와 가난한 이웃집 화가 자일스(리차드 젠킨스) 단 두 명.

어느 날 실험실에 온몸이 비늘로 덮인 양서인간(더그 존스)이 수조에 갇힌 채 들어온다. 보안 책임자는 출세 지향적이고 폭력적이며 독선적인 스트릭랜드(마이클 섀넌). 그는 청소부들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가 하면 엘라이자에게 노골적인 성추행도 서슴지 않는다.

스트릭랜드와 사사건건 부닥치는 호프스테틀러 박사(마이클 스털버그)는 사실 소련의 스파이다. 스트릭랜드는 양서인간에게 무차별 폭행을 가했다 물려 손가락 2개를 잘린 뒤 가해의 강도를 더욱 높인다. 엘라이자는 만신창이가 된 양서인간에게 삶은 달걀을 준 계기로 친해져 음악을 함께 들으며 사랑을 쌓게 된다.

스트릭랜드는 군대에 아부하기 위해 양서인간을 해부해 우주 개발에 활용하기로 결정한다. 호프스테틀러가 이 사실을 소련에 알리자 상관은 미국이 해부하기 전에 죽여서 빼돌리라는 명령을 내린다. 우연히 스트릭랜드의 계획을 엿들은 엘라이자는 양서인간을 탈출시킬 계획을 세우고 자일스에게 도와달라고 애원하는데.

▲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스틸 이미지

당시의 미국은 대기업 같은 나라에 국민이 최하위 노동자처럼 복종해야만 했던 구조였다. 제2차 세계대전의 승리로 엄청난 부를 쌓고 정치적 헤게모니를 쥠으로써 소련과 냉전시대를 연 미국 정부는 한편으론 대다수 국민이 원하지 않는 베트남전 참전 후의 고전으로 체면도 명분도 실리도 모두 잃은 상황.

심한 빈부의 격차와 부의 소수에로의 쏠림 현상에 소외된 다수의 불만이 결국 집단행동으로 이어진 항의와 폭력의 시대였다. 그래서 강한 래디컬리즘(급진주의)이 대두됐고, 1969년 ‘우드스탁 페스티벌’이 밥 딜런 등의 반전운동 메시지로 축제를 넘어선 혁명 고취 선전의 장이 됐을 정도.

이 영화는 국지적으로는 지위 외모 등 모든 외형적 조건을 초월한 순수한 사랑을 그리지만 사실 담고 있는 메시지와 철학은 심오하고 다양하다. 선두가 종의 초월과 인권의 평등이다. 성별, 종, 소수성애, 지위 등의 차별 금지다. 당시 팝의 전성시대를 연 미국에는 낭만보다는 신분 격차와 인종차별이 득세했다.

5성장군은 자신의 계급장을 가리키며 “내가 못 할 게 뭐가 있냐"라고 자랑하고, 그의 권세를 등에 업은 스트릭랜드는 실험실에서 폭군처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 젤다는 스트릭랜드의 폭력에 침묵으로 저항하려 하지만 그녀의 남편(당연히 흑인)은 숨도 쉬지 않고 굴복한다. 파시즘의 알레고리다.

TV엔 흑인들의 폭동 뉴스가 흘러나오고, 식당 주인은 점잖은 흑인 부부의 악수를 거부한 채 “여긴 패밀리 레스토랑”이라며 그들을 쫓아낸다. 백인에게 흑인은 가족이 아니었다. 젤다가 “신은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했다”라고 하자 스트릭랜드는 “신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기나 하냐? 너처럼 이거나 결국 나처럼 이겠지만”이라고 말장난을 한다.

엘라이자가 세 든 건물의 1층은 극장인데 1960년에 나온 영화 ‘룻의 이야기’가 상영 중이다. 모압인인 룻은 베들레헴으로 시집온 이방인이지만 후손들이 다윗 왕과 예수를 낳는 축복을 내린다. 이방인과의 화합, 즉 양서인간과 엘라이자의 사랑을 암시하는 설정이다.

▲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스틸 이미지

양서인간을 아마존 밀림에서 잡아왔다는 설정은 제국주의의 침략에 대한 비판이고, 서커스단이 원숭이에 지느러미를 붙여 인어라고 조작했다는 폭로는 인종차별과 인류의 비뚤어진 종의 우월의식에 대한 조소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리디아의 왕 탄탈로스를 언급하는 건 인간의 오만이 낳은 지속되는 불행, 즉 전쟁, 기아, 돌연변이, 자연재해 등에 대한 경고다. 탄탈로스는 신들의 총애를 받았지만 오만방자가 극에 달해 함부로 천기를 누설하고 신들을 시험하다 저승 타르타로스에 떨어져 영원한 형벌을 받는다.

그로 인해 가문은 5대에 걸쳐 처절한 골육상쟁이 벌어진다. 불행과 비극의 키워드다. 중세-근대의 제국주의와 현대의 미국 등 선진국들은 현대화 과학화라는 미명 아래 약소국들의 정치, 경제에 간섭하거나 침투하는 가운데 생태계 질서를 교란하고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있다. 사라진 종만 해도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시종일관 어두운 조명 아래 유독 초록과 빨강을 강조하는 것도 그 메시지의 연장선상에 있다. 초록은 자연, 빨강은 생명을 유지하는 힘의 원천(피)이다. 과학으로 해결할 수 없는 자연과 생태계다.

에이브, 즉 아브라함은 구약성서 ‘창세기’에 기록된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으로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등 유일신 종교들의 공통 조상이다. 양서인간의 이름은 없지만 그를 아마존 원주민들이 신으로 떠받들었다는 대사는 에이브에 대한 암시다.

▲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스틸 이미지

그는 실내 욕조 안에선 비늘이 벗겨지는 등 심하게 앓지만 야외에서 빗물을 뒤집어쓰자 상처가 자연 치유될 뿐만 아니라 대머리인 자일스의 머리를 쓰다듬어 새 머리가 자라게 만들기도 한다. 자연은 인간이 개입하지 않으면 뛰어난 복원력을 발휘한다.

원제가 ‘물의 형상’인 것은 인식론이다. K. 라인홀트가 저서 제목에 ‘인간의 표상능력’이란 문구를 삽입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형이상학과 함께 철학의 양대산맥인 인식론에 대해 엘라이자와 양서인간은 경험론과 이성론의, 혹은 실재론과 관념론의 ‘종합’(정립과 반정립을 초월한)을 주창하지만 스트릭랜드 등의 기득권 세력은 대립을 강요한다.

물은 담는 그릇에 따라 모양이 변한다. 사랑하는 사람 역시 모두 생김새도, 이유도, 방식도 제각각이다. 하지만 결국 물은 물이고, 사랑은 사랑이다. 담긴 용기가 다르다고 물의 성질이 변하지 않듯 종과 지위와 소속과 이념이 다르다고 사랑의 본질이 변형되진 않는다.

신화와 종교는 신을 하늘 높은 곳에 사는 전지전능한 존재로 여기지만 감독의 인식론 안에서의 신은 자연이고 물이다. 만물의 근원을 물이라 주장한 그리스 최초의 철학자 탈레스를 따르는 것 같다. 뤽 베송의 판타지 ‘그랑 블루’의 정서와 일부 시퀀스가 유사한 점도 관람 포인트.

‘헬보이’ 시리즈에 이어 이번에도 양서인간 슈트를 입고 열연한 존스와 대사 없이 영화의 철학을 완성하는 데 결정적으로 공헌한 호킨스는 어떠한 형용사로도 찬사를 부여하기 힘들 명연기를 펼쳤다. 123분. 청소년 불가. 2월 22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유진모 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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