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슬럼버’, 권력의 이미지 조작 까발리는 서스펜스 [유진모 칼럼]

유진모 칼럼니스트l승인2018.02.11l수정2018.02.11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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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골든슬럼버>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동명의 일본 소설 겸 영화를 리메이크한 영화 ‘골든슬럼버’(노동석 감독)는 박근혜 탄핵을 전후해 쏟아져 나오는 시사 혹은 다큐멘터리적 외형을 띈 일련의 영화들과 맥락이 비슷하다는 점, 강동원의 원맨쇼가 시종일관 손바닥에 땀을 흥건하게 만드는 강력한 흡인력을 발휘한다는 점에서 분명 화제작이다.

김건우(강동원)에겐 밴드로 만나 절친해진 고교 동창 4명이 있다. 신해철의 ‘그대에게’ 등을 연주하면서 추억을 쌓은 컴퓨터 수리공 최금철(김성균), 지방대 출신 이혼 전문 변호사 장동규(김대명), 교통방송 ‘57분 교통정보’ 리포터 전선영(한효주), 보험 설계사 신무열(윤계상)이다.

택배기사인 건우는 어느 날 지하 주차장에서 우연히 아이돌스타 수아가 괴한에게 납치되는 걸 발견하고 구해준 뒤 모범시민 상을 받으며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다. 그에게 정당 입당 제안, 기부 권유, 보험 가입 부탁 등의 전화가 쇄도하는데 한동안 연락이 없던 무열에게서 만나자는 전화가 온다.

당연히 보험 가입 권유라 생각하고 무열을 만나러 광화문 광장으로 간 건우의 눈앞에서 집권 여당 대통령 후보 유영국이 탄 차가 폭발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무열은 “넌 지금 살인범이 됐다. 아무도 믿지 마”라는 말과 함께 명함 한 장을 건넨 뒤 역시 누군가에게 살해당한다.

▲ 영화 <골든슬럼버> 스틸 이미지

긴급 뉴스는 건우의 얼굴을 도배하며 살인범으로 지목하고 국가정보원까지 나선 합동수사본부는 건우의 목을 죄어온다. 사면초가에 몰린 건우는 명함의 주인공인 전직 요원 민 씨(김의성)를 만난다. 도와줄 듯했던 민 씨는 해외 도피 자금 마련을 위해 건우를 넘기겠다며 국정원에 돈을 요구하고, 가장 믿었던 친구 중 하나인 금철마저도 국정원과 내통하는 듯한데.

비틀스의 명곡 ‘Golden slumber’는 황금빛 낮잠, 즉 아주 화창한 한낮의 꿀잠이다. 영화는 ‘우정과 추억’이라는 씨줄과 ‘권력의 이미지 조작과 음모’라는 날줄을 기본으로 구성돼있는데 제목을 건우의 추억을 상징하는 ‘골든슬럼버’로 정한 것을 보면 우정을 더 강조하고자 한 듯하다.

건우는 아주 착하고 오지랖도 넓은 매우 평범한 국민이다. 그저 착하게 열심히 살고자 노력한 그는 요원에 쫓겨 도망가면서도 시민들에게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는 심성 고운 청년이다. “마누라는 죽을 때까지 내가 홍삼 파는 줄 알았다"라는 민 씨와 달리 그는 거짓말을 모른다.

국민들은 이렇게 착한데 국가, 아니 국가를 움직이는 인물들은 철저하게 이기적이고 가식적이며 폭력적이다.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정당한 절차를 거쳐 당의 대통령 후보로 당선된 동료와 다른 동료조차 가차 없이 살해하는 잔인함은 권력욕의 추악함을 고발하는 시퀀스다. 간첩 조작, 광주민주화운동 등 역사 왜곡 등이다.

'어른’의 직접적인 지시를 받는 국정원 황 국장은 경찰은 물론 검찰도 무시하는 일방통행으로 치닫는다. 건우의 자수조차 받아들일 수 없어 자조하는 경찰의 “우리가 뭐 힘 있냐? 위에서 까라면 까는 거지”라는 비통한 대사는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 영화 <골든슬럼버> 스틸 이미지

경찰은 죄 없는 서민에게도 이유 없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그런 경찰이 아무런 힘이 없다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데 하물며 서민들의 자괴감은 오죽할까? 정말 힘없는 국민이야말로 할 수 있는 건 숨죽이고 조용히 사는 것밖엔 없다는 소름 끼치는 메타포다.

요원이 건우에게 “국가가 하는 일에 왜 나서”라고 윽박지르는 게 대표적이다. 이는 마치 스스로 국부(國父, 임금)라 칭하며 자신이 곧 나라인 듯 으스댔지만 막상 북한군이 쳐들어오자 시민들에게 안심하라고 해놓고 자기 먼저 도망가며 한강 다리를 끊은 이승만을 조롱하는 듯하다.

결국 전체 플롯을 이끄는 건 다섯 친구의 우정이다. 수시로 보여주는 파스텔 톤의 학창시절 회상 인서트는 지옥과 다름없는 악랄한 세상을 사는 이 나라 청년들의 피를 데우는 동력이자 내일을 기대하게 만드는 희망이다. 그나마 골든 슬럼버처럼 다디단 추억이다.

무열은 “아무도 믿지 마”라며 건우 대신 장렬하게 희생했지만 남은 네 친구는 끝까지 서로를 믿으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옛 친구”라는 경찰의 표현을 “아니다. 지금도 친구”라고 바로잡으며 변치 않는 믿음과 의리를 당당하게 드러내는 인물이 여자인 선영이라는 설정은 일부 남자에겐 섬뜩할 듯.

▲ 영화 <골든슬럼버> 스틸 이미지

동규는 유머, 선영은 메시지 담당이다. 동규의 “이혼할 때 왜 나를 찾지 않았냐"라는 서운한 발언에 “두 번째 이혼할 때 찾으려고”라고 선영이 쏘아붙이는 장면은 ‘웃프’다. 전 수사권이 건우를 잡으려고 세 친구들까지 죄어오자 동규가 "너희들은 왜 내 친구로 태어났니?”라는 식으로 코미디를 책임진다.

선영은 “모든 사람들은 월요일 오전 11시 16분이 될 때까지 단 한 번도 웃지 않는다”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세상은 권력을 쥔 자들의 이미지 조작으로 진행된다는, 그런 각박한 환경 속에서도 우정은 존재하고, 그런 우정이 가장 소중하다는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다.

월요일 점심시간이 임박해서야 비로소 자그마한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척박한 세상처럼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가슴의 압박감에 정신이 아득해지게 만든다. 민 씨의 “CCTV만 1000개”라는 대사는 영화의 설정이 ‘그럴 수도 있다’가 아니라 ‘그런 게 세상’이라고 외치는 듯하다.

1인 2역을 열연한 강동원은 이제 잘생긴 배우를 넘어서 연기파의 대열에 합류하는 중이다. 악역 전문 김의성의 시니컬한 연기 변신이 주는 재미도 쏠쏠하다. 김유정 정소민의 임팩트 강한 깜짝 출연도 볼거리. 108분. 15살 이상. 2월 14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유진모 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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