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박수룡 원장의 부부가족이야기] “결혼 6개월 차, 그런데 생각보다 결혼 생활이 행복하지 않아요. 다들 신혼일 때 깨소금 볶나요? 신혼 집이 내 집 같다는 생각이 안 들고 조금만 있다가 다시 친정 집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지난 주말에도 집에서 신랑이랑 단둘이 있으면서 너무 심심했어요. 늘 바쁜 신랑, 다정다감하고 가정적일 것 같았는데 별로 그렇지도 않은 것 같고. 더 짜증나는 건 신랑도 저처럼 그렇게 행복해하지 않는다고 보인다는 거예요. 그래서인지 괜히 사소한 걸로 토라지기 일쑤에요. 혹시 복직해서 전처럼 회사를 열심히 다니거나, 아니면 아기라도 낳아서 기르다 보면 행복해질까요?”

한 인터넷 상담 사이트에 올라온 내용입니다. 신혼인데 행복하지 않아서 고민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 바탕에는 ‘신혼에는 당연히 행복해야 합니다’는 일종의 선입견이 깔려 있습니다. 예쁜 ‘커플 룩’을 입고서 여행을 다니고, 행복한 모습으로 식사하고, 쇼핑하다가 비싼 선물도 선뜻 사 주고, 서로 껴안은 채로 잠자리에 드는, 우리가 흔히 꿈꾸는 신혼부부들의 모습은 각종 대중매체와 상업광고에 의해서 ‘현실보다 더 현실’처럼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여 같이 살게 된 것은 당연히 축복받을 만한 일이지만, 그러나 과연 좋기만 할까요? ‘진짜 현실’에서는 신혼 생활이 행복할 이유보다 불안하고 긴장할 만한 이유가 더 많습니다. 몇 가지 신혼 생활의 모습을 통해서 실상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결혼, 자유이자 구속

우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결혼의 가장 좋은 점일 것입니다. 연애 때는 매일 만나도 시간이 되면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헤어져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렇게 잠시만 떨어져 있어도 뭐 하는지 궁금하고 또 보고 싶어도 참아야만 했는데, 결혼을 하면 그런 불편이 없어집니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쓸데없는 돈 들이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과 매일 둘이서만 있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나 결혼을 하면 상황이 좀 달라집니다. 솔직히 더러는 그러고 싶지 않은 때도 있는데, 같이 있어야 한다는 ‘동거의 의무’가 생깁니다. 서로가 원해서 함께 있을 때에는 그렇게 달콤하던 시간들이 의무로 바뀌는 순간부터는 그 맛을 잃어버립니다. 싸워서 기분이 좋지 않을 때라도 같이 있어야 하고,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다가도 일정 시간이 되면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간혹 친구들과 더 있고 싶어서 돌아가지 않으면 그 친구들이 ‘혹시 얘네 결혼 생활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거 아냐?” 라고 생각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 시켜주려면 억지로라도 돌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끔찍한 것은, 정말로 자신의 결혼생활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럴 때 ‘법적 배우자’라는 사람이 귀가를 재촉하는 전화를 몇 번이나 해대면 ‘이 사람이 내가 사랑했던 그 사람 맞나?’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다음으로 내 집, 내 가족이 생긴다는 것도 꿈같은 일입니다. 특히 평소 부모의 간섭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사람에게는 정말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내 마음에 드는 가구를 들이고, 내 취향대로 인테리어를 하고, 내가 먹고 싶은 요리를 내가 먹고 싶을 때 먹는 등 뭐든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아이도 내가 바라는 대로 입히고 먹이고 키울 수 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상호 보호자가 되어서 서로 돕고 아끼며 살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뿌듯한 일입니까?

그러나 현실에서 보면 ‘내 집’이 정말 내 집처럼 느껴지는 데에는 결혼하고도 한참이 걸립니다. 결혼 후에 무심코 ‘옛 집’으로 가는 차를 탔다가 깜짝 놀란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습니다. 간섭하는 것이 싫어서 투정 부렸던 부모가 갑자기 보고 싶고, 그 음식을 먹으며 어리광도 부리고 싶어집니다. 옛 집에 오래된 애완동물이나 감나무라도 있으면 그리움이 더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이 모든 익숙함을 포기해야 한다니, 신혼의 행복이 아니라 마치 이전의 행복을 모두 빼앗긴 것 같은 느낌에 빠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끔 이런 감상에 빠져 눈물이라도 짓고 있는 것을 발견한 배우자가 위로는 못해줄망정 자신과 결혼한 것을 후회하는 것이냐고 따져 물어올 수도 있습니다. 이런 때면 ‘내가 뭘 믿고 이런 사람과 평생 살려고 했을까?’ 회의마저 들게 됩니다.

또 결혼을 함으로써 비로소 어른이고 정상적인 사람으로 인정받게 되는 것도 행복한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이전까지는 “아직도 혼자냐?”는 말을 들을 때마다 뭔가 결함이 있는 사람처럼 취급 받는 느낌을 받았지만, 이제는 그런 열등감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혼 전에는 남들의 대화에 끼려고 해도 “멋모르는 소리하지 마라, 너도 결혼해서 애 낳고 살아보면 무슨 말인지 알 거다”는 말에 일종의 ‘장애인’ 취급 받던 설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연말정산에서도 남부럽지 않게 각종 공제를 받을 수 있고, 주택청약 자격도 올라가서 비로소 ‘재테크’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경제 문제는 물론이고 사회와 정치 문제에도 관심을 갖게 된 자신이 새삼스레 대견하게 여겨지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른으로 대접받으며 사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결혼에는 ‘부양의 의무’와 ‘협조의 의무’가 따르기 때문에, 돈을 벌어야 하고 집 안팎의 여러 일들도 처리해야만 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만을 고를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하기 싫은 것도 해야 하고, 또 내가 하고 싶을 때 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하기 싫을 때에도 해야만 하는 일들이 엄청나게 많아집니다.

또 단지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싶어했을 뿐인데, 갑자기 낯 설은 친인척이 생겨나 눈치보고 챙겨야 할 것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더구나 이제 막 같이 살게 된 두 사람의 의견이 일치할 리 없으니 크고 작은 싸움이 반복되기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내가 하필 왜 이 사람을 골라 이 고생인가!” 한탄하면서 억지로 맞춰 살아가야 하는 것이 신혼 생활인 것입니다.

▲ 박수룡 라온부부가족상담센터 원장

[박수룡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 전문의 수료
미국 샌프란시스코 VAMC 부부가족 치료과정 연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겸임교수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현) 부부가족상담센터 라온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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