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을 위한 행진곡’, 모든 갈등 허물자는 최루물 [유진모 칼럼]

유진모 칼럼니스트l승인2018.05.11l수정2018.05.21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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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박기복 감독)은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성폭행이 수면 위로 떠오름과 동시에 전두환에 대한 재판이 화두가 된 현시점과 절묘하다. 최근의 ‘택시운전사’와 ‘1987’이 그랬듯 이 작품은 특정 이념의 프로파간다가 아니라 자유·평등·평화를 외치며 화합을 주창한다.

1980년 봄 광주. 미대생 명희(김채희)의 작업실에 법대생 철수(전수현)가 경찰의 추격을 피해 숨어든다. 이전까지 학생들이 데모를 하면 수업이 단축돼 좋았던, 그래서 그들이 왜 민주화운동을 하는지 몰랐던 명희는 순수하고 신념이 강한 철수에게 빠짐으로써 비로소 그들의 고귀한 정신을 깨닫고 합류한다.

중앙정보부 광주분소장 영찬(이한위)에게 요주의 인물로 지목된 철수는 시시각각 압박해오는 그의 추격을 피해 명희와 하룻밤을 보낸 뒤 도망치지만 결국 붙잡혀 고문 끝에 죽는다. 5월 16일, 철수의 싸늘한 주검을 발견한 그의 형 철호(김효명)와 명희는 성당에 그의 시신을 임시로 모신다.

군 사기진작을 위해 철수의 시신이 필요했던 영찬은 수사 끝에 성당을 포위한다. 명희는 당당히 군대 앞에 나타나 의지를 굽히지 않는 주장을 펼치지만 영찬이 쏜 총에 쓰러진다. 머리에 총알이 박힌 채 살아난 그녀를 철호가 돌보고 그렇게 철수의 딸 희수가 태어나 철호의 호적에 입적된다.

▲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스틸 이미지

현재.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명희(김부선)는 정신병원에 장기입원 중이고, 철호(이재구)는 식당을 운영한다. 성장한 희수(김꽃비)는 서울로 가 인기 개그맨이 됐다. 희수는 재력가 집안의 의사와 사랑에 빠졌고, 중식당에서 양가 부모를 모시고 상견례 자리를 갖는다. 그런데 그 자리에 혼미한 명희가 나타난다.

희수의 가정사를 알게 된 의사의 부모는 ‘빨갱이’의 딸을 며느리로 맞을 수 없다며 파혼을 선언한다. 어릴 때부터 ‘미친 여자’라며 명희를 친엄마로 인정하지 않았던 희수의 분노는 극에 달한다. 명희를 찾아가 “그때 죽었으면 열사라는 소리라도 들었지, 왜 살아남으셨어요”라고 모진 말을 퍼붓는다.

아직도 1980년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사이렌 소리만 들어도 물건을 감추고 어딘가 숨기 급급한 명희. 과거를 떨치지 못하는 엄마 탓에 피해 의식만 쌓게 된 희수. 두 사람은 도저히 접점을 찾을 수 없는 평행선을 달리며 서로 먼발치서 바라만 볼 뿐이다. 과연 이들은 모녀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까?

제목은 중의적 의미다. 군부정권에 유린당한 민주주의와 인권 등을 한탄하며 목숨 걸고 독재를 타도하자는 본래의 뜻과, 이제 지역과 이념 등의 케케묵은 갈등들을 모두 허물고 화합해 민주적 ‘행진곡’에 발맞춰 행복한 미래를 건설하자는 것. 그래서 희수는 말미에 “우리의 역사는 달라, 주인은 우리”라고 외친다.

▲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스틸 이미지

명희는 철수와의 만남 초기에 “그런데 종로 깡패 두목(김두한)이 어떻게 대통령(전두환)이 됐죠?”라고 물을 정도로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데모한다고 세상이 더 나아지나요?”라고 노예근성을 드러냈을 정도. 철수는 알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독사에게 먹히는 두꺼비 얘기를 해주며 신념을 강조한다.

명희는 “사회의 모순에 대해 고민해본 적 있냐"라는 철수의 질문에 노예의 틀을 깬 뒤 평화를 위해 누구보다 굳은 신념으로 목숨을 초개처럼 내놨다면 현재의 희수는 아직도 깨우치지 못한 새내기 대학생 명희와 다름없다. 그녀는 명희에게 “이제 그만 잊고 살면 안 돼? 나도 잊고 사는데”라고 항의한다.

또 “그렇게 해서 얻은 게 뭐야? 왜 난 못 지키는데? 최소한 방해는 말아야지”라고 친모 가슴에 대못을 박는다. 명희는 가끔씩 정신을 차리면 해탈의 경지를 보인다. 난동 후 깨어난 그녀는 묶인 팔을 풀어주려는 희수에게 “풀지 마, 이렇게 묶어놨을 땐 다 이유가 있을 거야”라고 말한다. 병원(세상)과의 화합.

과거에 명희를 숨겨줬던 신부는 “군대가 국민을 지키지 않고 학살하는 나라”라고 강하게 성토하며 신념을 보였다. 이때 미국이 도울 것이냐가 화두가 됐는데 한 중년 여인은 “도와주겠지. 미국은 민주주의(의 표상)이니까”라고, 한 여학생은 “이걸 미국이 모를 것 같아요?”라고 각각 다른 의견을 냈다.

이 시퀀스는 현재의 명희의 정신병원과 연결된다. 감독은 우리가 사는 현실을 정신병원에 비유한 것이다. 어쩌면 ‘미친놈’들이 사는 정신병원이 더 인간적이거나 정상적일지도 모른다는 반어법까지 구사한다. 그건 제정신이라고 볼 수 없는 방송인과 기자를 등장시키는 신랄한 언론 비판 시퀀스로 연계된다.

▲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스틸 이미지

희수가 엄마의 병실에서 새 전자밥통을 발견하고 뚜껑을 여니 생쌀이 가득하다. 민주열사들의 희생으로 세상은 많이 변했다. 경제성장에 첨단과학의 혜택까지 더해지니 살맛 난다는 말이 나온다. ‘박정희가 그래도 먹고살게는 해줬잖아’라는 역사에 무지한 말이 아직도 심심찮게 나돈다.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차진 밥이 아니라 생쌀이다. 모든 게 과거보다 나아졌다고 착각하고 있지만 겉만 그럴 뿐 대다수 국민들은 성숙하지도, 행복하지도 못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비유다. 다소 거친 편집을 제외하면 깔끔한 가족 드라마이자 젊은이들에 힘을 북돋워주는 희망의 메시지로서 괜찮다.

물론 절반 이상이 비극이긴 하다. 아직도 전두환과 그 패거리, 그리고 역사에 어두운 일부 국민은 그때의 상황을 왜곡하려 하거나 잘못 알고 있지만 영화는 비교적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두고 진실을 그리려 애쓴다. 당시 고3이던 박 감독은 보고 들은 걸 토대로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했다고 한다.

현재는 분명히 혼돈의 시대다. 그게 더 나아지기 위한 빅뱅이 될지, 나빠지게 되는 블랙홀이 될지 그건 내일의 주인공인 젊은이들의 몫이다. 역사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교훈이라는 것과 함께 이 영화의 양대 주제다. 자녀교육에 관심 큰 부모에게 적극 추천, 105분. 15살 이상 관람 가. 5월 16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유진모 칼럼니스트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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