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시카리오: 데이 오브 솔다도>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2015, 드니 빌뇌브 감독). 여성 FBI 요원 케이트는 악랄한 남미 마약 카르텔을 소탕하기 위해 모인 CIA의 작전 총책임자 맷(조슈 브롤린), 남미 마약 카르텔에 의해 가족을 잃고 검사를 때려치운 뒤 비밀작전 컨설턴트가 된 멕시코의 알레한드로(베니치오 델 토로)와 합류한다.

결국 알레한드로와 맷은 목적을 이루지만 케이트는 죄의식과 무기력감 때문에 괴로워한다. 그로부터 3년 후 ‘시카리오: 데이 오브 솔다도’(스테파노 솔리마 감독). 멕시코 마약 카르텔이 테러리스트들을 미국 국경 지역에 수송함으로써 잇단 테러가 발생하자 CIA의 작전이 다시 시작된다.

상사 신시아로부터 지휘봉을 하사받은 맷은 다시 알레한드로를 끌어들인다. 카르텔 보스 레예스야말로 알레한드로 가족을 죽인 장본인이었던 것. 맷은 레예스의 라이벌 조직의 변호사 등 수뇌부를 죽인 뒤 레예스의 16살 딸 이사벨라(이사벨라 모너)를 납치함으로써 멕시코 카르텔 전체를 뒤흔든다.

국경지역 맥캘란. 고등학생 미구엘은 멕시코 사촌 형과 은밀하게 만나 큰돈을 받는다. 불법 이민자 수송 일을 하는 사촌은 국경 지리에 익숙한 미구엘을 길잡이로 이용하고 있는 것. 어느 날 차를 몰고 슈퍼마켓을 향하던 알레한드로 일행은 실수로 미구엘을 칠 뻔하고 미구엘은 그들에게 욕을 해댄다.

▲ 영화 <시카리오: 데이 오브 솔다도> 스틸 이미지

CIA의 작전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맷과 알레한드로는 이사벨라를 멕시코 정부에 넘기는 마지막 작전을 수행한다. 이를 위해 멕시코 경찰이 무사히 국경을 넘도록 투입되지만 멕시코의 공권력마저도 미국의 공권력에게는 믿을 수 없는 상황이라 이사벨라와 알레한드로는 제거 대상이 되는데.

‘시카리오’라고 하면 무엇보다 저음의 관악기의 치찰음과 타악기의 파열음이다. 이번에도 그런 음향효과가 주는 긴장감과 공포는 굉장하다. 전작이 가졌던 목적과 헌법 수호 사이의 고뇌와 사유는 이번엔 사명감과 공명심, 사적 목표 의식과 인류애 사이의 갈등으로 변주된다.

전작에서 그랬듯 알레한드로는 개인의 복수심 때문에 흔쾌히 미국 정부의 사냥개가 된다. 도덕심 강한 케이트에게 낭패감과 무기력감을 안겼던 그는 이번엔 오히려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하지만 그 와중에도 복수심 일변도에서 벗어나 차분하게 사람다운 인류애를 선택한다.

전작이 스릴러였다면 이번엔 누아르 형태다. 전작은 법과 정의 사이의 관계를 묻는 철학적 탐미가 강했다면 이번엔 법과 배신의 인과율이란 철학이 돋보인다. 과연 법을 수행하고 질서란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서라면 배신과 소수의 희생마저도 용인될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다.

▲ 영화 <시카리오: 데이 오브 솔다도> 스틸 이미지

전작에서 케이트가 여성성의 남성성에 대한 동등한 지위와 아이덴티티의 정립에 기여하고 남성성(권력)의 폭력성에 희생당하는 순례자로 기능했다면 이사벨라는 트라우마와 고뇌로 도덕성을 상실한 채 폭주하는 알레한드로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는 종교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변별성을 갖췄다.

'윈드 리버’로써 감독으로서도 유니크한 능력을 인정받은 할리우드 천재 각본가 테일러 쉐리던이 전편에 이어 시나리오를 썼기에 내용은 흠잡을 데 없이 훌륭하다. 이탈리아 범죄 스릴러 분야에서 알아주는 솔리마의 연출력도 꽤 봐줄 만하지만 빌뇌브가 워낙 천재적이고 철학적이기에 조금은 아쉽다.

그럼에도 멕시코 카르텔과 테러리스트를 통해 미국 사회의 내부를 꿰뚫는 문제의식은 통렬하다. “지금 마약보다 더 돈 되는 건 사람”이란 대사는 히스패닉 청소년도, 멀쩡한 금발 미녀도 모두 불법 이민자 수송에 팔을 걷어붙이는 내용과 더불어 온통 물욕에 눈이 먼 자본주의의 맹주 미국을 비웃는다.

그건 “이 나라 식욕 놀라워”라는 대사와 직결된다. 식욕은 비만이 심각한 사회문제인 미국인의 단순한 음식에 대한 욕심을 비롯해 모든 탐욕을 의미한다. 그래서 “요즘 것들 깡패랑 구분이 안 돼”라는 대사로 이어져 날로 늘어나는 청소년 범죄와 그런 범죄에 노출되는 연령층이 점점 낮아지는 비극을 말한다.

▲ 영화 <시카리오: 데이 오브 솔다도> 스틸 이미지

그렇다면 미국 혹은 자본주의의 앞날은 희망적일까? “이래서 변화가 없는 것”이란 자조 섞인 푸념에 “그래서 변화가 올 것 같아?”라는 대답에서 뻔하다. 그건 국경 지역의 무한하게 뻗은 황량한 고속도로라는 미장센 아닌 미장센으로 계속 보여준다. 먼지 날리는 비포장도로도 굉장한 메타포.

“왕을 죽이면 50개의 나라로 분열돼 더 큰 혼란이 와”라며 “차라리 왕자를 잡아 왕을 자극하는 게 효과적”이란 말은 중국의 타초경사란 교훈에서 빌렸다. 무원고립의 알레한드로가 허허벌판에서 만난 앙헬이 청각장애자란 건 맷과의 소통에 대한 암시다. 마지막 시퀀스는 매우 충격적이다.

마치 마피아처럼 깔끔하게 올백으로 머리를 넘기고 온몸을 태투로 장식한 미구엘이 여유롭게 ‘알바’ 사무실의 문을 연 뒤 뜻밖의 한 남자를 보고 깜짝 놀란다. 2개의 열린 결말인데 한쪽으로 유난히 쏠림을 느낄 때쯤 3편이 매우 기다려질 것이다. 브롤린과 델 토로의 명연기는 두말하면 잔소리다.

두 사람은 최근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 타노스와 컬렉터로 만난 바 있다. 여전히 둘의 관계는 ‘갑’과 ‘을’이다. 실제로 16살인 모너는 나이답지 않은 연기력을 펼치는 가운데 남미와 인도를 동시에 아우르는 묘한 매력을 뿜어낸다. 122분. 15살 이상. 6월 27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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