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날 맞아 성차별 철폐 목소리 울려 퍼져
-한국 유리천장지수 12년 연속 꼴찌

[미디어파인 칼럼=김주혁 위원의 오늘보다 나은 세상]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기념행사와 시위가 펼쳐져 성차별 철폐와 여성 인권 증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리나라의 여성 인권 수준은 어느 정도나 될지 궁금하던 차에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이날 발표한 유리천장 지수(The glass-ceiling index)에서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9개 조사 대상 회원국 중 29위를 기록했다. 유리천장 지수는 일하는 여성의 노동 참여율, 남녀 고등교육·소득 격차, 여성의 노동 참여율, 고위직 여성 비율, 남녀 육아휴직 현황 등의 지표를 통해 산정되는 성차별 지표다. 2013년 첫 조사 이래 12년 연속 최하위를 차지한 것은 개인 성차별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라는 확실한 증거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더 이상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 차별은 개인적 문제”라고 밝혀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유리천장지수에서 한국이 12년째 최하위를 고수하고 있다.(이코노미스트)
유리천장지수에서 한국이 12년째 최하위를 고수하고 있다.(이코노미스트)

결혼 출산 육아 등으로 일을 그만두는 사람 중 남녀가 비슷하다면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경력단절 우려가 바로 국가적 최대 현안인 저출생의 주원인으로 꼽힌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의 지난해 국민수요조사에 따르면 저출생의 원인으로 양육 부담과 경력단절(27.3%)이 가장 높게 나왔다. 통계청의 23년 사회조사에서는 여성의 취업장애요인으로 76.5%가 육아부담을 꼽았다. 국내 기업 수의 98%, 직장인 수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중소기업에서는 출산휴가나 육아휴직 등이 법 규정과 달리 그림의 떡인 경우가 많지만 법은 제대로 집행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최근 양성평등정책의 사령탑인 여성가족부의 힘을 빼는 조치를 잇따라 시행해 반발을 사고 있다. 대안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부처 폐지 수순에 돌입해 업무 공백 우려마저 낳는다. 윤 대통령은 김현숙 장관의 사표를 지난달 수리하면서 후임 장관 후보자는 당분간 지명하지 않기로 했다. 지난해 말 임명된 타부처 출신 조직개편 전문가인 신영숙 차관 대행체제로 운영하겠다는 것. 장관 사임 5일 후 기획조정실장에 보건복지부 국장을 임명했다. 여가부 1, 2인자가 모두 외부 인사로 채워진 것이다. 게다가 대책없이 국장 2명을 대기발령했다. 그에 따라 결과적으로 여성폭력을 총괄하는 권익증진국장과 정책기획관의 공석 사태가 장기화할 판이다. 일련의 조치는 윤 대통령의 여가부 폐지 공약을 이행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받아들여진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이던 22년 1월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한 줄 공약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바 있다. 행정안전부는 여가부를 폐지하고 보건복지부 산하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로 주요 기능을 이관하는 내용의 정부조직법 개편 방안을 22년 10월 발표했으나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해 실현되지 못했다. 이와 달리 국민의힘은 올 초 저출생 대책으로 부총리급 인구부 신설 공약을 발표하면서 기존 여가부 업무를 인구부에 흡수해 여러 부처에 흩어진 저출생 정책을 통합하겠다고 밝혔다. 어떤 모양으로 조직개편이 이뤄질지 아직 정해진 게 없는 상태에서 흔들기부터 하는 셈이다.

이에 대해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은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성명을 발표, 여성가족부 폐지 움직임에 우려를 표명하며 구조적 성차별 해소 노력을 촉구했다. 송 위원장은 "여성 정책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할 여성가족부의 폐지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어 성차별 철폐와 성평등 실현을 위한 정책 수립이 가능할지 크게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우리 사회의 구조적 성차별을 시정하고 개선하기 위한 정부와 국회, 사법부 등 대한민국 모든 영역에서의 노력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여성가족부 폐지 저지와 성평등 정책 강화를 위한 범시민사회 전국행동의 2월23일 기자회견(출처 한국여성단체연합)
여성가족부 폐지 저지와 성평등 정책 강화를 위한 범시민사회 전국행동의 2월23일 기자회견(출처 한국여성단체연합)

총선에 관계없이 엄연히 존재하는 구조적 성차별을 철폐하고 양성평등 개선 속도를 높이기 위해 정부와 기업, 개인 등 우리 사회가 힘을 합해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김주혁 미디어파인 논설위원
김주혁 미디어파인 논설위원

[김주혁 미디어파인 논설위원]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폭력예방통합교육 전문강사
가족남녀행복연구소장
전 서울신문 선임기자, 국장
전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초빙교수, 여성가족부 정책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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