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땅을 밟은 이수근 첫 일성 “카, 술맛 좋다” [김문 작가 칼럼]

김문 작가l승인2018.08.31l수정2018.08.31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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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김문 작가가 쓰는 격동의 현대사를 주도한 군장성들의 이야기]

▲ 사진= tbs 방송화면 캡처

남한땅을 밟은 이수근 첫 일성 “카, 술맛 좋다”

3공화국때 최대의 미스테리 사건 중 하나는 아마 ‘위장귀순 이수근’이 아닐까 싶다. 북한의 고위직에 있던 이수근이 귀순했다가 탈출 도중 붙잡힌 사건은 국내외 언론으로부터 지대한 관심을 받았다. 특히 이중간첩이라는 사실에 적지 않은 충격과 놀라움을 던져준 사건이었다. 그렇다면 그 자세한 내막은 어떤 것이고 얼마 만큼 우리가 확실하게 알고 있을까. 세월이 지난 후 김윤호 장군이 주미공사 시절을 회고하면서 몇가지 새롭게 털어놨다. 또 당시 이수근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했던 영국 첩보기관과 미국 CIA의 놀랄만한 첩보능력을 떠올린다.

1967년 3월22일 제242차 군사정전회의 본회의가 진행되고 있는 판문점. 갈색 코트차림에 검은 테 안경을 쓴 중년 사내(당시 44세, 북한 중앙통신사 부사장, 판문점 출입기자)가 아까부터 잔뜩 긴장한 얼굴로 회의장 주변을 왔다 갔다 했다. 잠시 후 중년사내는 정전위사무국 직원에게 다가가 뭐라고 귀엣말로 소곤거렸다. 비밀 메시지는 곧 회의장 안의 유엔측 대표에게 전달됐다.

이 날 오후 5시20분, 긴 시간의 정전위 회담이 마침내 끝났다. 유엔측 영국대표인 밴 코프트 준장이 회의장을 빠져나와 자신의 전용 세단차로 향했다. 밴 준장이 승용차 뒷문을 막 열려는 순간, 회의장 막사 모퉁이에서 서성거리던 중년 사내가 밴 준장을 젖히며 세단차의 뒷좌석으로 잽싸게 몸을 날렸다. 이와 동시에 북측 경비병 2명이 달려들면서 차문을 열려고 했다. 그러자 뒷좌석에 미리 타고 있던 밴 준장의 보좌관이 이들을 세차게 밀쳐냈다. 이 때 ‘달려!’라는 소리가 운전사의 귓전을 강하게 때렸다. 세단차는 밴 준장을 남겨둔 채 전속력으로 질주했다. 북한측 경비병들은 차를 향해 수십발의 권총사격을 가했다. 세단차는 회의장에서 200미터쯤 떨어진 초소의 목재 바리케이트를 들이받으면서 남쪽으로 향했다. 불과 20초 동안 벌어진 일이었다.

중년 사내 위장귀순 ‘이수근 사건’은 처음부터 극적으로 시작됐다. 남한땅을 밟은 첫 마디는 “카, 술맛 좋다.”였다. 남한 땅에서 맥주 한 잔을 들이키고 나서 내뱉는 일성이었다. 다음 날부터 국민들의 시선은 제임스 본드의 ‘007 영화’에 나옴직한 화제의 주인공에게 쏠렸다. 각지에서 성금이 답지하고 여기저기에서 환영회가 벌어졌다. 가는 곳마다 그는 ‘자유 대한의 위대한 승리’라고 외쳤다.

▲ 사진= tbs 방송화면 캡처

이듬해 9월 그는 반도호텔에서 우석대 교수였던 이모씨와 결혼식을 올린 뒤 당시 귀하게 여겨졌던 코로나 승용차로 신혼여행길에 올랐다. 산혼의 단꿈에 젖어 마냥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1969년 1월 세간에는 이상한 소문이 나돌았다. ‘이수근이 화장실에서 무전을 치고 있대.’ ‘그는 이중간첩이래’ 하는 풍문이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그로부터 한 달 뒤인 2월14일 중앙정보부는 “끈질긴 추적 끝에 홍콩을 경유해 북한으로 가려던 이수근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이수근 이중간첩사건은 중정에 의해 조작된 것

이와 관련 김윤호 장군은 △이수근의 홍콩행을 맨처음 포착한 것은 영국 첩보기관이었으며 △이같은 정보를 전해들은 미국 CIA측은 처음에는 한국의 중앙정보부에 알려주지 않으려 했고 △이수근의 탈출동기는 계속되는 국내기관의 압력을 견디지 못해 제3국으로 도피하려고 했었다고 당시 CIA 관계자들의 말을 근거로 새로이 밝혔다.

김 장군의 말을 빌리면 이수근은 홍콩에 도착한 후 캄보디아 비자를 발급받는 과정에서 영국 첩보원에세 신분이 탄로났으며 이러한 사실이 미 CIA에 통보되면서 추적받게 됐다는 것이다.

바로 그때에도 이러한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던 한국의 중앙정보부에서는 이수근의 행방에 대해 알 길이 없어 애를 태우고 있었다. 이럴 즈음 CIA측이 이수근의 소재를 알려왔다. 그러면서 이수근은 이미 홍콩을 출발해 현재 사이공을 향하고 있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아울러 최종 목적지는 프놈펜이라는 것도 귀띔했다. 이같은 미국 정보기관의 도움으로 주베트남공사 이대용(李大鎔 육사7기)씨는 1969년 1월31일 이수근을 체포할 수 있었다.

결국 이수근은 중간 기착지인 베트남 사이공의 탄손누트 공항에서 이중간첩 혐의로 쇠고랑을 찼다. 김 장군은 “만약 이수근이 사이공 경유의 비행기표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체포하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 사진= tbs 방송화면 캡처

김 장군이 이러한 내막을 자세하게 알 수 있었던 것은 사건발생 직후 평소 친하게 지내는 CIA관계자들과 저녁 만남에서 나눈 대화를 통해서였다. 그는 이 자리에서 이수근이 한국 정보기관에서 ‘이중간첩 혐의’로 몰아가려는 압박을 느껴 탈출하게 됐다는 얘기와 그가 탈출을 결행할 때 CIA는 한국의 김형욱 중정부장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아 한때 ‘이수근 포착’ 정보를 전해주지 않으려 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는 또 “한국 수사당국의 발표를 전해 듣고 CIA 관계자들은 웃었다.”면서 며칠 후면 김형욱 부장이 사임하게 될 것이니 두고 보라고 했다. 이들의 예견대로 그 해 8월 김형욱은 중정부장직을 떠났다. 또한 이수근 이중간첩 사건은 중앙정부에 의해 조작된 사건이라는 것은 한참 뒤에야 밝혀졌다. 2007년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이수근 사건을 중정에 의한 조작이라고 결론짓고 국가에 재심 을 상응하는 조치를 권고했다. 이수근 사건을 다시 정리 하면 이렇다.

북한의 고위 언론인이었던 이수근은 1967년 3월 22일 판문점에서 남쪽으로 탈출, 귀순했다. 이후 그는 여교수와 새로 결혼도 하고, 중앙정보부 판단관으로 대우를 받으며 반공강연 등을 하면서 남쪽에 정착했다. 그러던 중 이수근은 돌연 1969년 1월 27일, 북에 두고 온 원래 처의 조카 배경옥(裴慶玉)과 함께 여권을 위조하여 출국하였다. 이들은 홍콩을 거쳐 캄보디아로 가다가 베트남 사이공 공항에서 중앙정보부 직원들에 의해 체포됐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이수근이 애초부터 간첩활동을 목표로 위장귀순을 했고, 남측에서 수집한 정보를 북한에 전달하기 위해 출국을 감행했다고 발표하고, 이 사건을 간첩사건으로 처리하였다. 이수근은 물론이고, 그와 동행한 배경옥 등의 관련자들도 공범으로 몰려 재판에 회부되었다. 이수근은 1969년 5월 10일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위반죄로 사형을 선고받았고, 판결 직후 항소 의사가 있음을 밝혔지만 결국 공식적으로 항소가 이루어지지 않아 형이 확정되었다. 반면 배경옥 등 공범 혐의자들은 항소를 하였는데, 이들의 항소심 재판이 열리기도 전인 1969년 7월 2일, 사건발생 6개월, 형확정 2개월만에 이수근의 사형이 서둘러 집행됐다. 배경옥은 대법원에서 무기징역형을 선고 받았고, 이후 20년 형으로 감형됐다.

그러나 1980년대 말부터 이 사건의 진상에 대해 많은 의혹이 제기됐다. 언론 취재활동 등을 통해 일부 과거 중앙정보부 관리 등은 이수근이 간첩이 아니라고 증언하였다. 이들은 이수근이 위장귀순한 것은 아니며, 그가 계속되는 당국의 감시와 통제에 환멸을 느껴 해외로 탈출하여 중립국으로 망명하려다가 체포되었는데, 이것이 간첩사건으로 둔갑되었다고 증언했다. 그 근거로 이수근이 만약 북한에 가려했다면, 첫 기착지인 홍콩에서 중국을 경유하여 북한으로 갈 수 있었고, 굳이 캄보디아까지 갈 필요가 없었다는 점, 그가 체포 당시 영한사전과 한영사전을 휴대하고 있다는 점 등이 거론되었다. 즉 이수근은 중립국에 망명하여 남북한 체제 모두를 비판하면서 한반도 통일과 관련된 책을 쓰며 살려고 했다는 것이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김문 작가

[김문 작가]
전 서울신문  문화부장, 편집국 부국장
현) 제주일보 논설위원

김문 작가  gamsam10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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