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베놈>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주인공 에디(톰 하디)가 방송사 기자라는 점에서 소니와 마블의 새 빌런 히어로 영화 ‘베놈’(루벤 플레셔 감독)은 DC의 ‘슈퍼맨’이 연상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다. ‘스파이더맨3’에서 등장한 심비오트가 또 다른 주인공이니 형제인 ‘스파이더맨’의 그림자가 아른거리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여기에 최근 공개됐던 전신마비의 주인공을 첨단 인공지능 시스템 ‘스템’이 슈퍼히어로로 만드는 영화 ‘업그레이드’까지 겹친다. 서사 구조는 마블의 형제들은 물론 대다수 영웅 액션 영화의 클리셰를 답습한다. 그럼에도 공생생물(Symbiote)을 소재로 한 철학의 깊이와 군더더기 없는 액션은 훌륭하다.

라이프 파운데이션의 창업자 겸 천재 과학자 칼튼(리즈 아메드)은 지구 온난화를 막고 인간의 수명을 늘리는 데 공헌한 것으로 포장됐지만 사실은 이기적인 야심가다. 그는 우주선을 보내 심비오트를 지구에 가져오도록 하지만 귀환 중 사고로 한 개가 말레이시아의 대중에게 흘러들어간다.

우주생명체인 심비오트는 궁합이 맞는 숙주를 통해서만 완벽한 생명체가 될 수 있는데 안 맞을 경우 숙주는 죽지만 심비오트는 생존한다. 라이프 파운데이션은 이 실험에 수많은 노숙자들을 희생시킨다. 에디는 상사의 명령을 어기고 칼튼과의 인터뷰에서 이 소문의 진상을 묻는다.

▲ 영화 <베놈> 스틸 이미지

사실 그는 결혼을 앞둔 연인 앤(미셸 윌리엄스)의 PC에서 몰래 그 정보를 얻었다. 칼튼은 로펌 변호사인 앤의 고객이었고, 이와 관련된 소송이 진행 중이었다. 분노한 칼튼은 신문사와 로펌에 연락해 두 사람을 해고시킨다. 그런데 양심의 가책을 느낀 연구소의 한 박사가 에디에게 제보를 한다.

연구소에 잠입한 에디에게 심비오트가 들어와 베놈이 된다. 심비오트들은 사실 칼튼의 부하들에게 스스로 잡힌 ‘척’한 것이었다. 이들의 목적은 대형 우주선을 심비오트의 행성에 보내는 것. 수백만의 심비오트가 그걸 타고 되돌아와 인류를 멸망시키려는 게 목적. 에디는 베놈을 극복할 것인가?

에일리언은 숙주의 몸에서 자라 그를 죽이고 세상에 나온다. 기생충과 유사하다. 뱀파이어는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은 빼앗지만 흡혈귀로서 영생을 제공한다. 좀비는 흡혈귀처럼 좀비를 만들 수도, 에일리언처럼 죽일 수도 있다. 심비오트는 이들과 유사한 듯하지만 공생을 최상으로 친다는 점에서 다르다.

한 몸인 듯, 한 몸 아닌 듯, 남남 같으면서도 부부 같은 공생관계의 베놈이 보여주는 ‘자아전쟁’이 의외로 큰 재미를 선사한다. 사실 심비오트로서의 베놈은 자신의 세계에서 루저였고 그래서 강한 숙주를 찾았다. 돈도 배경도 없는 에디가 강하다는 의미는 정의를 향한 사명감의 값어치가 높다는 의미다.

▲ 영화 <베놈> 스틸 이미지

에디가 우연히 심비오트를 만난 게 아니라 그가 에디를 원해서 불렀다는 내용은 그 연장선이다. 아무 생각 없이 보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팝콘무비다. 내내 즐겁고, 보고 나선 아무 생각 없이 뒤끝이 개운하다. 하지만 깊게 보면 굉장한 문화적,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먼저 에크하르트 톨레 미장센.

21세기를 대표하는 영적 교사 중 1명이라 불리는 톨레는 2권의 저서를 통해 “모든 문제와 불행의 원인인 ‘자기 자신’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 ‘지금 이 순간의 자유와 기쁨’에 이르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이는 쿠키영상에 등장하는 빌런 클레투스 카사디가 외친 다다이즘으로 연결된다.

다다이즘은 초현실주의의 뿌리다. 에디와 베놈의 결합은 곧 초현실주의의 4차원적 콜라주나 프로타주(그림물감을 화면에 비벼 문지르는 채색법)나 데페이즈망(있어서는 안 될 곳에 물건이 있는 표현)이다. 빌런 히어로 베놈의 탄생은 곧 초현실주의가 추구하는 비윤리, 부도덕, 무질서 등의 찬양이다.

둘의 ‘결합’은 ‘기생’인지 ‘합체’인지 불분명하지만 나중에 공생으로 분명히 정리가 된다. 하이데거의 존재론이다. 에디라는 세계-내-존재가 심비오트란 존재자를 만남으로써 존재론적 고민을 하다 결국 베놈이란 현존재를 인정하는 존재상적인 결론에 도달한다는 의미다. 숙주도, 기생도 아닌 존재 자체다.

▲ 영화 <베놈> 스틸 이미지

일찍이 하덕규는 ‘가시나무새’에서 ‘내 속엔 내가 너무나 많아’라고 하이데거의 존재론을 가사로 표현한 바 있다. 톨레는 “자신과 상대방이 하나임을 아는 것, 그것이 진정한 사랑, 돌봄, 자비”라고 썼다. 또 ‘생각한다고 깨닫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데카르트의 ‘코기토 명제’에 대한 정면 도전.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가 아니라 생각 없이 깨달음에 도전할 수 있는 위버멘시(극복인)적 방향을 제시하는 것. 심비오트는 에디에게 “내가 널 찾아. 아니 우리가 널 찾아”라고 한다. 생각하지 말고 본능에, 오늘에 충실하라는 얘기다. 톨레는 하이데거의 ‘현존재’ 대신 ‘현존’을 채택했다.

에디가 혼자 맥주를 마실 때 냉장고에서 꼭 2병씩 꺼내는 건 ‘현존재’가 아닌 ‘현존’, 즉, ‘공존’을 뜻하는 것이다. 기증자와 수혜자로 나뉘는 게 아니라 공존하는 현존이다. 노골적으로 아이작(이삭)이란 피실험자가 있고 칼튼은 아브라함이 아니라 이삭이 승리자라고 말한다. 칼튼은 신이 되려 한 것.

에디와 심비오트의 다툼이 일방적으로 펼쳐지다 에디를 통해 베놈이 된 심비오트가 에디의 심성 때문에 변화하는 과정이 꽤 큰 재미를 준다. 그리고 하이라이트의 격전과 맥거핀 같은 반전도 꽤 볼 만하다. 톰 하디의 원맨쇼가 아니라 베놈의 맹활약이다. 107분. 10월 3일 개봉. 15살 이상.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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