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남긴 영화 ‘님은 먼 곳에’ [김문 작가 칼럼]

김문 작가l승인2018.10.05l수정2018.10.0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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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김문 작가가 쓰는 격동의 현대사를 주도한 군장성들의 이야기]

▲ 영화 <님은 먼곳에> 스틸 이미지

전쟁이 남긴 영화 ‘님은 먼 곳에’

지금 우리나라 2,30대 젊은이들에게 “베트남 전쟁에 대해 얼마나 아느냐?”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할까. 아마 우리나라가 왜 파병이 됐고 전쟁에 참여했던 과정에 대해서 확실하게 대답하는 젊은이들이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 ‘님은 먼 곳에’를 얘기하면 표정은 달라질 것이다. 2008년 개봉된 이준익 감독의 이 영화는 많은 관객수를 모으며 영화팬들에게 감동의 사랑을 받았다.

영화 ‘님은 먼 곳에’의 배경은 1971년 베트남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던 때였다. 20대 초반의 순이(수애 분)는 대학생 남편에게 농촌으로 시집을 왔다. 한마디로 철이 없다고나 할까. 남편 상길(엄태웅 분)은 빨리 대를 잇는 손자를 보고 싶은 어머니의 뜻에 따라 사랑하지도 않고 잘 알지도 못하는 여자 순이와 결혼한다. 아내와 어머니는 시골집에 두고 상길은 서울에서 학교를 다닌다. 1971년 한국 상황은 박정희의 독재정치가 실행되고 있었다. 도시는 베트남 특수와 개발독재가 부르짖는 근대화로 빠르게 변해갔지만, 새마을운동이 막 시작된 시골은 여전히 남아선호와 남존여비의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가끔씩 동네 아주머니들 앞에서 노래 부르는 게 유일한 소일거리인 순이는 외아들 상길 하나만을 바라보고 사는 시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매달 군대 간 남편의 면회를 간다. 그러나 언제나 살가운 말 한마디 없는 남편 상길이다. 어느 날, 그녀에게 취한 상길이 묻는다. “니 내 사랑하나?” 상길의 물음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돌아온 순이는 다음 달도 여느 때처럼 면회를 가지만, 상길이 베트남 전에 자원해 갔다는 소식을 통보 받는다. 행방조차 알 길 없는 남편을 찾아 베트남으로 떠나기를 결심한 순이는 위문공연단의 보컬로 합류하여 ‘써니’란 새 이름을 얻고 화염과 총성이 가득한 전쟁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었다.

베트남에 도착한 순이는 ‘님은 먼 곳에 ’ 등을 노래 부르며 이곳 저곳을 다니다가 결국 남편을 찾자 뺨을 세게 때리면서 이 영화는 막을 내린다.

한국 군인의 베트남 파병은 1964년 9월부터 1973년 미국이 베트남에서 철수할 때까지 총 8년 5개월간에 걸쳐 이루어졌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71년은 미국 내 반전 여론으로 미군이 베트남에서 손을 떼어가던 중이었고 한국군도 서서히 철수준비를 할 때였다.

결국 베트남 파병은 8년이 넘도록 총탄이 날아다니는 전쟁터에 우리나라 젊은이들을 내보내는 일이었다. 참혹한 전쟁터에 내 아들, 내 형과 아우를 내보낸 전쟁이었다. 영화에서처럼 수많은 순이의 남편들도 베트남전에 나가 생사를 달리했던 것이다.

▲ 영화 <님은 먼곳에> 스틸 이미지

‘5.16혁명’ 민심 잠재우기 ‘파병’

베트남 파병에 대해서는 배경이나 과정 등에 대해 그동안 많이 알려져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관련 인물을 통해 비화 위주로 소개해보고자 한다.

육사8기 출신으로 군수통으로 알려진 이범준 장군은 한국군의 베트남전 참전과 매우 밀접한 인연을 맺고 있다. 1962년 3월이었다. 이 장군은 대령계급장을 달고 육군본부 보급과장에 보임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장군은 중앙정보부의 호출을 받았다. 이때 중정부장이 김종필씨였다. 중정에 도착해보니 박창암 대령도 와 있었다. 박 대령은 게릴라전투의 전문가로 알려져 있었다. 잠시 후 심흥선(沈興善)장군과 정규섭(鄭圭燮)제독 등을 비롯 여러 장교들이 회의실에 모였다. 석정선(石正善)중정차장이 회의를 주재했다. 내용은 한달동안 교육을 받은 뒤 베트남에 군사사절단으로 파견된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는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의 명령이며 절대 비밀로 해야 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1962년 5월초 예정된 교육을 모두 마쳤다. 이 장군은 베트남의 군수분야를 집중적으로 관찰하는 것이 주요 임무였다. 다음은 이 장군의 증언이다.

“군사사절단의 베트남 파견 배경에는 한국의 사정이 많이 작용됐다. 5.16혁명 성공후 군사정부는 민심을 잠재우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제일 큰 문제는 쌀이었다. 박 의장은 고심 끝에 김종필씨를 출국시켜 한국과 비슷한 나라를 견학토록 했다. 이때 JP가 마지막으로 들른 곳이 베트남이었다. JP는 고 딘 디엠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베트남을 어떻게 통치하고 있으며 한국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없느냐고 제의했다. 그러자 고 딘 디엠은 ‘당신같이 훌륭한 인재가 필요하다’며 한국의 사절단 파견을 정식으로 요청하는 친서를 전달했다. 결국 박 대통령은 베트남 대통령의 제의를 받아들여 군사 사절단을 파견하게 된 것이었다.”

군사 사절단 파견은 전투부대 파병을 위한 예비단계나 마찬가지였다. 이후 한국군의 파병은 태권도단, 비둘기부대, 전투부대 등의 순서에 의해 착착 진행됐다면서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비둘기부대가 베트남에 도착한 지 4개월쯤 됐을 때 고 딘 디엠 대통령이 피살됐다. 한국의 파견 등으로 정치적 입지가 강화되자 이를 두려워한 반대세력이 일을 저질렀던 것이다. 그러자 얼마 후에 티우 대통령이 권좌에 올랐다. 이 사건으로 순조롭던 한국군의 파병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주베트남 한국대사관에 근무하는 이대용 무관의 활약이 특히 컸는데 마침 이 무관과 티우 대통령은 미참모대학 동기여서 서로 잘 아는 처지였다. 이 무관은 전임 대통령과 맺은 한국과 베트남간의 약속을 거론했고 티우 대통령으로부터 한국의 전투부대 파병을 다짐받게 됐다.”

▲ 김문 작가

[김문 작가]
전 서울신문  문화부장, 편집국 부국장
현) 제주일보 논설위원

김문 작가  gamsam10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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