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완벽한 타인>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영화 ‘완벽한 타인’(이재규 감독)은 꽤 탄탄한 플롯에 썩 재미있는 스토리로 구성돼있는데 그 완성도의 절반 이상은 원작 및 각본의 힘일 것이다. 변호사 태수(유해진), 가슴 성형 전문의 석호(조진웅), 레스토랑 사장 준모(이서진), 교사를 그만둔 백수 영배(윤경호)는 속초에서 함께 자란 45살 죽마고우다.

태수의 아내 수현(염정아)은 시어머니까지 함께 사는 시집살이에 쌓인 말 못 할 스트레스를 SNS 문학 모임을 통해 풀고 있다. 석호의 아내 예진(김지수)은 정신과 의사고, 준모의 사업 자금을 대준 어린 아내 세경(송하윤)은 부잣집 딸로 태어난 때문인지 매사에 명랑하고 쾌활하다. 수의사로 일한다.

교사를 때려치우고 이혼까지 한 영배는 아버지가 알선해준 교사 자리도 싫다고 버틴다. 그런 그들이 한강변 고급 빌라 펜트하우스에 입주한 석호의 집들이 자리에 모인다. 그들은 새롭게 교제 중인 영배의 새 연인이 어떨지 궁금해하지만 막상 영배는 그녀가 아프다며 휴지만 잔뜩 안고 홀로 입장한다.

술잔이 몇 순배 돌자 예진이 휴대전화 공유 게임을 하자고 제안한다. 오늘 이 시간 동안 모두의 휴대전화 통화와 메시지 등을 공개하자는 것. 저마다 찜찜해하지만 분위기에 휩쓸려 그렇게 불가항력으로 게임이 시작되고, 완벽한 친구와 부부인 줄 알았던 그들의 관계가 뒤틀려있다는 진실이 속속 드러나는데.

▲ 영화 <완벽한 타인> 스틸 이미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원작인 이탈리아 영화 ‘퍼펙트 스트레인지’를 안 봤다면 후회 안 할 작품이다. 기시감을 주는 클리셰로 시작하지만 시퀀스를 거듭할수록 다음에 어떤 에피소드가 나올지, 진실은 뭣일지 궁금증이 더해지는 점층법의 구성이 주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래서 어떤 면에선 호러 장르다.

원작은 휴대전화의 메시지와 통화를 공유한다면 한 커플 이상 갈라질 것이란 호언장담 속에 게임이 시작되지만 이 영화는 한국적인 정서가 많이 가미됐다. 왜 주인공은 속초 출신이고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영랑호가 화두인가? 인트로의 어릴 때 주인공들이 구사하는 말투는 거의 북한 사투리다.

강원도는 남과 북으로 나뉘었고, 속초는 북한 피란민이 대거 정착한 지역이다. 여러 가지 이념과 개념이 상충하고 혼재하는 세계다. 과장된 사투리는 그것의 극대화된 은유다. 어린 주인공들이 영랑호가 바다인지 민물인지 싸우는 것 역시 속초와 같은 맥락. 향후 치열하게 전개될 진실게임의 암시다.

이 영화가 ‘누구나 비밀은 있다’(2004) 같은 류의 다른 영화와 거리를 두는 지점은 개개인의 은밀한 비밀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휴대전화란 존재자에게 우월적 지위를 빼앗긴 인간이란 현존재에 포커스를 맞춘 ‘공간’이다. “거짓말은 남이 아니라 나를 속이는 것”이란 대사 한 마디가 이를 웅변한다.

▲ 영화 <완벽한 타인> 스틸 이미지

‘사건’의 출발은 태수다. 그에겐 12살 연상의 어떤 여자로부터 매일 밤 10시 정각에 나신을 찍은 사진을 전송받는다는 비밀이 있다. 그 여자가 불륜인지, 단순한 흥미 대상인지는 불분명하지만 태수가 오바상 콤플렉스라는 건 확실하다. 그는 수현의 옷차림과 화장에도 민감한 권위적, 보수적 ‘아재’다.

그렇게 근엄한 그의 내면은 그러나 사실은 아직도 성장단계를 거치는 중인 미숙아다. 엄마에게 의지하고, 수현이 엄마에게 조금이라도 서운한 듯 대하면 과민하게 반응하는 그는 아직 어린애다. 그 직업이 변호사라는 것 역시 의미심장하다. 수현은 그의 속옷 색깔 참견에 반발해 아예 벗고 외출한다.

9시 반 태수는 다급하게 기종이 같은 영배의 휴대전화와 바꾸고 이를 계기로 모든 친구들의 휴대전화로 온 통화와 메시지를 통해 감추고 싶었던 각자의 추한 속내들이 드러나면서 걷잡을 수 없는 파국을 향해 얘기는 흘러간다. 대사가 그야말로 향연이니 눈과 귀를 모두 열어놓고 즐긴다면 115분은 짧다.

월식, 가식, 편견, 그리고 시종일관 흘러나오는 글로리아 게이너의 ‘I will survive’가 소재 겸 주제다. 달은 보름달, 상현달, 하현달, 초승달 등 다양한 존재를 갖고 있지만 그건 태양의 빛에 의한 ‘위장’일 뿐 본래적 존재는 달이다. 주인공들에게 그 빛에 의해 생기는 그림자는 위장과 이기심이다.

▲ 영화 <완벽한 타인> 스틸 이미지

그런 편협하고 안티-이타적인 심리로 인해 오해와 갈등과 분쟁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후설은 ‘대상이란 항상 의식에 의해 구성된다’고, 하이데거는 ‘무에서 존재가 시작되고 그게 충만함’이라고 한 데 비교해 사르트르는 ‘즉자(존재) 자체가 본질을 앞서는 우연’임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이 영화는 대자(의식)와 즉자의 잠재적 휴전으로 시작해 극렬한 대립으로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닫더니 이상적인 즉자대자는 없음을 시인(사르트르)한다. 그래서 엄청난 반전을 지닌 공포영화다. 막걸리와 조니 워커가 공존하는 미장센은 바로 의식의 대상화를 의미한다. 양식(良識)이냐, 가식이냐?

배우들의 조화는 놀랍다. 각 캐릭터들의 외양과 격식의 본질이 결국 불건전한 데카당스였고, 여성의 해방은 국내 여건상 요원하다는 결말은 서늘하다. 특히 자신의 선택에 의해 게이로 오해받았던 감정을 표출하는 격한 ‘분절’의 시퀀스는 압권이다. 대상화를 통해 분리된 ‘소수’의 고통에 대한 울분이다.

‘I will survive’의 여자는 자신을 버린 남자가 되돌아오자 매몰차게 뿌리친다. 그 감정은 불쾌함일까, 통쾌함일까? 거짓의 존재 중 하나는 잘못임을 알기에 스스로 은폐하는 존재자, 또 하나는 자기는 당당하지만 타인이 부당하다고 왜곡하기에 엄폐할 수밖에 없는 존재자다. 15살. 10월 31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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