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복수심과 양심 중 더 괴로운 건? [유진모 칼럼]

유진모 칼럼니스트l승인2018.11.08l수정2018.11.08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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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영주>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영주’(차성덕 감독)는 외견상 지난여름 개봉된 문제작 ‘살아남은 아이’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함무라비 법전이냐, 보원이덕의 공자냐’라는 질문이 오버랩 된다. 그런데 주체와 객체가 바뀜으로서 새로 정립된 주제의식이 다분히 독보적이어서 보는 이를 더 고통스러운 슬픔에 빠뜨린다.

19살 영주(김향기)는 5년 전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은 뒤 고교를 중퇴하고 유일한 가족인 중학생 동생 영인(탕준상)의 뒷바라지에 온갖 정성을 쏟고 있다. 고모와 고모부는 남매의 전 재산인 연립주택을 빼앗지 못해 안달이지만 남매는 부모와의 추억이 담긴 집을 안간힘을 써 지킨다.

그러나 이 집의 평온은 영인이 친구들과 범죄를 저질러 구속되면서 무너진다. 실직 상태인 영주는 피해자와의 합의금 300만 원을 고모에게 빌려달라고 했다가 상처만 받은 뒤 불법대부업체에 전화했다가 오히려 수수료만 떼인다. 그녀는 장롱을 뒤져 부모 사망 때의 법정 판결문을 꺼낸다.

시장에서 직접 두부를 만들어 파는 평범한 중장년 부부 상문(유재명)과 향숙(김호정). 트럭을 운전하던 상문은 부주의로 영주의 부모를 사망케 한 뒤 지금까지 죄책감에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신이 벌을 내린 것인지 외아들 승일이 코마 상태에 빠짐으로써 부부의 삶은 더욱 피폐해졌다.

▲ 영화 <영주> 스틸 이미지

가해자의 주소로 찾아간 영주는 집을 나서는 향숙의 뒤를 쫓는다. 두부가게에서 남편과 식사를 하는 두 사람을 지켜보던 영주는 ‘알바 구함’이란 광고문을 보고 상문에게 다가간다. 그렇게 취업이 된 영주는 며칠 뒤 늦은 밤 가게에 몰래 잠입해 금고를 털고 때마침 만취한 상문이 나타나는데.

모든 걸 떠나 한 편의 영화를 주도하는 김향기의 연기력과 존재감을 칭찬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유재명과 김호정이란 탄탄한 연기력의 소유자들이 조력하기에 가능할 수 있었지만 클라이맥스의 후회, 절망, 원망, 자포자기, 혼돈 등의 복잡한 감정으로 오열하는 영주를 소화한 표현력은 압권이다.

인트로에서 영인에게 “만약 부모 중 한 명이 돌아올 수 있다면 누구를 선택할래?”라고 묻고 자신은 아빠라고 했던 영주는 끝 무렵의 오열 시퀀스에선 “엄마”라고 되뇐다. 감독이 바라보는 친척은 그저 친척일 뿐 친구는 아니라는 것과 아버지와 엄마의 ‘존재냐 존재자냐’에 대한 시선에 눈이 간다.

상문은 죄책감에 하루하루가 고통이다. 의도한 살인이라면 달랐겠지만 절대 그럴 생각이 없었는데 부주의와 실수로 저도 모르게 그런 짓을 벌였기에, 그는 원래 선한 심성의 소유자이기에 괴로워 손목을 긋고 자살도 시도했었다. 뭣보다 아들이 채 피지도 못하고 뇌사상태에 빠진 게 제 탓인 듯하다.

▲ 영화 <영주> 스틸 이미지

그런 상문과 아들을 바라보는 향숙 역시 일상이 무너진 건 마찬가지. 어쩌면 가장이 무기력해진 상황에서 중심을 잡아야 할 주인공은 자신이란 걸 매우 잘 알기에 더욱더 강한 척해야만 하는 그녀로서는 속이 더 타들어갈 것이다. 그들이 모르는 사이 남매는 한 번 더 상처를 입는다.

영주는 한없이 선한 인간미와 자신의 허물마저도 감싸주며 친딸처럼 대해주는 자상하고 포근한 상문과 향숙에게 가족의 정을 느끼게 된다.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영인은 ‘원수에게 그럴 수 있냐’며 분노를 터뜨리고 주체 못 할 울분을 폭력으로 분출하며 영주의 가슴을 아프게 만든다.

그리스신화의 복수와 저주의 여신 에리니에스 3자매를 다룬 아이스킬로스의 비극 3부작 ‘오레스티에’는 에리니에스가 힘을 잃게 만들며 복수의 불합리성을 잘 보여준다. 영주가 에리니에스라면 영인은 아버지인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을 살해한 엄마 클리타임네스트라에게 복수한 오레스테스 남매다.

이 영화는 그리스신화와 더불어 헤겔의 상호인정론과 양심을 전면에 부각한다. 오레스테스 남매는 신들의 법정에서 무죄 판결을 받는데 이는 복수의 주도권이 개인 혹은 가족 중심으로부터 국가기관으로 이첩되는 인간 사회의 전화를 의미한다. 영주가 상문 부부의 양심과 고통에 동화되는 것도 그렇다.

▲ 영화 <영주> 스틸 이미지

암전으로 시작돼 블랙아웃으로 자주 컷을 전환하는 등 시종일관 어둡다. 영주의 버스 이동 시퀀스 등에서 핸드헬드 카메라가 자꾸 흔들리는 건 내적 갈등의 소용돌이다. 특히 향숙에게 마음을 연 그녀가 퇴근 후 언덕에서 바라보는 집이 매우 어둡고 낯설게 투영되는 시퀀스는 공포감마저 준다.

향숙과 영주의 관계를 안 영인이 “엄마 아빠에게 미안하지도 않아?”라고 다그치자 영주가 “내가 왜 미안해야 돼? 미안해야 될 사람은 (우릴 이렇게 불행하게 만든) 엄마 아빠야”라고 자신을 정당화하는 시퀀스는 참으로 아프다. 이 사회는 어린애들을 이용하고 사육하는 고모 같은 존재가 아닐까?

향숙이 간절히 기독교의 기본 교의인 삼위일체를 기도하는 건 남편, 아내, 자식으로 구성된 가족의 삼위일체이자 진실, 거짓, 비밀의 적소성이다. 영주가 피해자의 자식이란 게 상문과 향숙에게 밝혀지지 않았다면 그들은 모처럼 되찾은 행복을 오래 누리고,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줄 수 있었을 텐데.

거짓은 무조건 나쁜 것이지만 때론 굳이 진실을 밝히지 않을 필요도 있다는 용재성. 그렇게 헤겔의 상호인정론이 통용되던 새로운 가족관계에 개입한 영인은 과연 오레스테스의 법정에 변호사로 나선 아폴론일까? 마지막 시퀀스는 ‘파이란’의 강재의 오열이 연상된다. 100분. 12살. 11월 22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유진모 칼럼니스트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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