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헌터 킬러> 잠수함 액션 스틸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전쟁 스릴러 ‘헌터 킬러’(도노반 마시 감독)는 적지 않은 영화 등 창작물들이 단골 소재로 상상력을 더하는 제3차 세계대전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하지만 내용은 꽤 충실하고, 뭣보다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긴장의 장치가 썩 훌륭하다. 특히 사람 사이의 신뢰를 부각하는 메시지는 따뜻하다.

러시아 영역 심해. 미군 잠수함 템파베이가 러시아군 잠수함을 쫓아 작전을 수행 중이다. 그런데 갑자기 러시아 잠수함이 폭발해 침몰하고 템파베이는 외부에서 날아온 어뢰에 의해 파괴된다. 미국은 합참의장 도네건(게리 올드만)을 책임자로 한 대책팀을 꾸리고 피스크(커먼) 제독을 호출한다.

피스크는 사건 조사를 위해 공격형 잠수함 ‘헌터 킬러’ 아칸소를 현장에 투입하기로 결정하고 사관학교 출신이 아닌, 해군 생활 내내 밑바닥부터 체득한 실전형 장교 글래스(제라드 버틀러)를 함장으로 선임한다. 또 사막에서 훈련 중이던 육군 특수부대원 4명을 러시아 폴랴르니 해군기지로 급파한다.

폴랴르니에서 러시아 자카린 대통령과 국방장관 겸 해군 제독 듀로프가 회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고 해역에 도착한 아칸소는 템파베이 승조원 전원이 사망했음을 확인한다. 글래스는 러시아 잠수함이 내부 폭발로 침몰했음을 목격한 뒤 구사일생으로 생존한 안드로포프 함장 등을 구출한다.

▲ 영화 <헌터 킬러> 잠수함 액션 스틸

자카린은 이번 사고를 보고받고 미국 대통령과의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하려고 하지만 비뚤어진 야망을 지닌 듀로프가 경호원들을 사살한 뒤 자카린을 감금한다. 대책팀은 NSA(미국 국가안전보장국)의 정보를 통해 러시아의 긴박한 상황을 접수하지만 듀로프의 꿍꿍이는 알 수가 없다.

도네건과 피스크는 갑론을박 끝에 어쨌든 제3차 세계대전은 막아야 한다는 데 뜻을 모으고 중동지역에서 훈련 중이던 육군 특수팀과 아칸소에게 자카린 구출 명령을 내린다. 육군 팀도 힘들지만 첨단 센서와 수중 폭탄이 즐비하고 해협이 좁은 폴랴르니까지 접근하는 아칸소 역시 만만치 않다.

이에 글래스는 러시아 해군의 대부 격인 안드로포프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애국심 강한 그가 이를 흔쾌히 받아들일 리 없다. 글래스는 상부의 명령에 따라 승률이 희박한 도박과도 같은 작전을 강행하고, 참모 격인 부장의 강력한 반발과 맞서는 가운데 러시아군의 파상공격을 맞이하는데.

냉전 이후 비현실적인 대규모 미-소 전쟁 영화이기에 희귀성의 가치를 지닌다.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후반부의 해전 시퀀스의 규모를 조금 더 키운 뒤 매우 현사실적으로 그린 수중전이라고 묘사해도 될 만큼 손에 땀이 흥건하게 배게 만든다. 해군 경험이 풍부한 작가의 원작을 잘 살렸다.

▲ 영화 <헌터 킬러> 잠수함 액션 스틸

대표적인 연기파 올드만의 활약이 그리 두드러지지 않는 건 살짝 서운하지만 현명하고 지혜로우며 인간미 넘치는 지도자 역할을 해내는 버틀러의 맹활약은 ‘300’의 근육질 전사와는 사뭇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글래스가 사관학교 출신이 아닌, 사병으로서 함장 자리에 올랐다는 건 각별한 의미다.

그건 등장인물들이 내내 갈등하고 고뇌하는 사명(使命)과 소명(昭明)의 경계고, 정치인과 군인의 차이다. 육군 특수부대의 팀장은 작전 내용에 대한 팀원의 질문에 “나한테 묻지 마, 정치는 개뿔도 몰라”라고 답한다. 군인은 정치적 목적에 이용당하면 안 되고 단지 국민 안전과 국가 안보만 보면 된다.

글래스는 ‘연줄’이 없으므로 군인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기에 적합하다. 게다가 어쭙잖은 엘리트 의식 탓에 판단 능력이 결여될 여지도 없다. 사병 때부터 쌓은 풍부한 현장 경험의-학벌이 아닌 오로지-실력으로 함장 자리에 오른 철저한 ‘현장형’이므로 예측 불가능한 돌발 상황의 대응능력이 탁월하다.

그가 부장과 내내 갈등하는 건 명분과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도리에 대한 대립이다. 부장은 장교 교육을 통해 이론으로 정립한 원리원칙대로만 행동하는 형식주의로 엘리트 코스를 밟고 싶지만 글래스는 상황에 따른 융통성과 탄력성으로 부하의 안전과 국적을 떠난 인류애를 발휘하고자 한다.

▲ 영화 <헌터 킬러> 잠수함 액션 스틸

그건 권력을 유지하거나 잡기 위해 형식뿐인 명분만 내세우는 정치와 실전에서 생존하고 승전함으로써 국가와 가족을 지켜야 하는 군대는 확연히 다름을 뜻한다. 그래서 글래스는 “원칙이 중요한가, 목숨이 중요한가? 내 편, 네 편 따지지 말고 미래를 위한 일을 하자”라고 웅변한다.

사르트르의 무신론적 실존주의가 엿보인다. 생의 대부분을 고립되고 밀폐된 심해의 잠수함 속에서 생활해야 하는 주인공들이 느끼는 감정은 다양한 이유의 고독과, 죽음과 미지의 공간에 대한 공포가 압도적이다. 그들이 믿는 건 기계인 무기와 잠수함이고, 정신적 지주인 함장일 뿐이다.

진리는 개인의 주체성이므로(키르케고르) 인류는 자기와 타인으로 형성돼있다(포이어바흐). 여기까진 부장의 주장이다. 그러나 실존은 고립된 게 아니라 다른 실존과의 연관구조 속에서 존재한다(야스퍼스)고 글래스는 믿는다. 킬링타임용으로 스토리와 비주얼 모두 합격점이다. 121분. 15살. 12월 6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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