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모털 엔진>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피터 잭슨 각본, 제작의 ‘모털 엔진’(크리스찬 리버스 감독)은 ‘터미네이터’보다 밝고, ‘매트릭스’보다 쉬우며, ‘A.I.’보다 희망적인 전형적인 할리우드식 판타지 액션 블록버스터다. 미래의 암울한 지구에서 벌어지는 생존경쟁을 외형으로 한, 의외로 따뜻한 그리스신화의 재구성이다.

야욕에 물든 고대인(21세기 인류)이 메두사라는 양자 무기로 지구의 지도를 바꾼 뒤 각 도시는 거대한 기관에 의해 이동하면서 서로 약탈하며 살고 있다. 가장 규모가 큰 런던이 소도시들을 삼키며 세력을 키우는 가운데 그에 대응하는 샨 구오를 지도자로 한 반견인도시주의자들이 동쪽에 정착해있다.

런던이 중간지역의 아웃랜드에 나타나 소도시 살자칸을 집어삼킨다. 인구 대비 식량과 연료가 부족하기 때문에 시민들은 환호한다. 런던은 시장의 후원을 등에 업은 고고학자 테데우스(휴고 위빙)가 2인자로서 실권을 휘두르고 있다. 그는 나포된 살자칸 시민들에게 호의를 베풀며 인기몰이를 한다.

그런데 살자칸 중 헤스터(헤라 힐마)가 뛰쳐나와 칼로 그를 찌르고 이를 본 테데우스의 딸 캐서린(레일라 조지)의 친구 톰(로버트 시한)이 재공격을 막은 뒤 달아나는 헤스터의 뒤를 쫓는다. 헤스터는 쓰레기 배출구를 통해 탈출하면서 테데우스가 자신의 어머니 판도라를 살해한 원수라고 폭로한다.

▲ 영화 <모털 엔진> 스틸 이미지

뒤늦게 나타난 테데우스에게 톰이 이 말을 전하자 갑자기 테데우스는 톰을 배출구로 밀어 넣는다. 두 사람은 인신매매범에게 잡혀 노예 경매시장에 세워진다. 이때 반견인도시주의자 집단의 히로인 안나(지혜)가 나타나 시장을 쑥대밭으로 만든 뒤 캐서린과 톰을 구해 그들의 아지트로 달아난다.

오래전 테데우스와 판도라는 고고학자로서 각별한 사이였다. 그런데 판도라가 세상을 뒤바꿀 수 있는 엄청난 고대 무기를 발견했고, 어긋난 욕망을 지닌 테데우스가 판도라를 죽이고 그걸 탈취했다. 이를 목격한 뒤 도망친 헤스터는 부활군 전사 슈라이크의 품에서 안전하게 자라며 복수심을 불태웠다.

부활군은 로봇을 넘어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터미네이터 개념의 전사다. 헤스터가 부활군이 되겠다는 슈라이크와의 약속을 깼기에 슈라이크는 이제 그녀를 죽이겠다고 나선다. 슈라이크를 잡은 테데우스는 그로부터 헤스터를 죽이겠다는 확언을 들은 뒤 풀어주고 세계정복의 음모를 꾸민다.

비주얼만 놓고 본다면 흠잡을 데가 거의 없다. 잭슨이 신화와 역사를 거대한 서사시적 비주얼로 풀었다면 리버스는 거기에 동양의 신비로움과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을 더 확장시켰고, 결과는 매우 장대하다. 여기에 ‘매트릭스’와 ‘터미네이터’의 철학과 ‘와호장룡’의 낙하 신(환생, 영원회귀)을 보탰다.

▲ 영화 <모털 엔진> 스틸 이미지

런던이 소도시를 집어삼키는 건 ‘매트릭스’의 시뮬라크르를 넘어선 사물의 비약적인 변화와 발전인 정력설(精力說 에너지론)이나 역본설(力本說 다이너미즘)이다. 시뮬라시옹의 자기동일성이 없는 복제를 넘어선 확대와 성장을 꾀한다는 데서 데카르트의 동물기계론을 대놓고 주창한다(테데우스).

그래서 테데우스는 과거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시장에 반기를 들고 “넌 (과거에 집착하는) 공룡이고 난 공룡을 멸종시킨 운석”이라는 테제를 내세운다. 런던 시민은 테데우스의 약탈 과정을 마치 올림픽 경기를 관전하듯 즐기며 환호한다. 인간과 도시의 생명력이 물질화 혹은 기계화된 것.

런던의 박물관에선 미국 ‘신상’이라는 ‘미니언즈’ 캐릭터가 희귀 골동품으로 추대되고 토스터가 명품으로 취급받는다. 슈라이크는 불사에 가까운 살생기계라는 점에서 ‘터미네이터’고, 심장이 없지만 자체적 인지와 이념과 의식이 정립됐으며 인간으로서의 전생의 기억이 있기에 ‘블레이드 러너’다.

더 나아가 사람의 감정까지 읽을 수 있어 헤스터가 어렸을 때 “넌 언제나 슬프구나. 네 영혼은 상처를 입었다. 그 아픔을 치유해주마”라며 그녀를 또 다른 블레이드 러너로 만들 시뮬라시옹을 준비했다. 그는 기억이자 추억이며 다른 편으로는 망각이다. 그의 존재는 오랫동안 관객의 뇌리에 남을 것이다.

▲ 영화 <모털 엔진> 스틸 이미지

테데우스의 음모는 일명 ‘세인트 폴 에너지 프로젝트’다. ‘이방인의 사도’로 불리는 성 바오로는 3회의 대전도여행을 통해 전 세계에 그리스교를 전파한 최대의 전도자다. 테데우스는 마치 자신이 재림한 예수이거나, 최소한 새로운 세상의 영도자 혹은 현자라는 착각에 빠진 몽상가인 것이다.

그 근거가 되는 신앙은 도시진화론이다. 다윈의 진화론은 환경에 적응해 생명체가 스스로 진화하지만 테데우스는 도시가 도시를 집어삼키는 에너지론적 약육강식으로써 생존과 군림을 확보하려 한다. 이에 저항하는 전사 안나의 별명은 바람꽃. 누구에게도 구속받고 싶지 않은 자유의 의지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아바타’ 등을 연상케 하는 신비롭고 화려하며 웅장한 그림은 시력의 호강이다. 유머와 권선징악의 흥행코드 등 팝콘무비로서의 가치는 충분한데 우라노스-크로노스-제우스 등에 이어 인간 사회까지 이어지는 골육상쟁의 그리스신화를 빌려 비극을 담은 서사는 훌륭하다.

보는 사람을 돌로 만들어 죽이는 마녀 메두사가 인류에 재앙을 가져온 양자 폭탄이란 것과 그렇게 지옥이 된 지구를 구할 열쇠를 발견하는 인물이 그리스신화의 인간에게 불행과 희망을 동시에 가져온 최초의 여성 판도라라는 설정은 참으로 간단명료하다. 128분. 12살 이상. 12월 5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