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 PMC: 더 벙커 >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PMC: 더 벙커’(김병우 감독)는 군말이 필요 없는 할리우드식 팝콘 액션 무비다. 124분의 러닝타임 내내 영화에 몰입돼 잡생각이 개입할 틈이 없고, 마치 현장의 요원이 된 듯 생사의 기로에 서서 게임인지 전쟁인지 모를 액션에 심취하게 된다. 하정우의, 에 의한, 를 위한 원맨쇼다.

남과 북의 화해모드가 무르익는 중인 가까운 미래의 미국 대통령 선거 당일. 맥그리거는 재선을 위해 발악하지만 떨어진 지지율 회복이 만만치 않은 가운데 북한 인민무력부장이 망명을 요청한다. CIA 팀장 맥켄지는 일급 글로벌 민간군사기업(PMC)의 핵심팀 블랙리저드에게 그의 신병 인도를 맡긴다.

DMZ 내 지하 벙커. 북측이 남침을 위해 만들었지만 이젠 남북회담 장소로 개조된 호화시설이다. 블랙리저드 캡틴 에이햅(하정우)은 베테랑 마쿠스, 인턴 로건 등 12명의 요원을 이끌고 이곳에 투입됐다. 벙커 전역을 살펴볼 수 있는 CCTV 모니터 앞에서 작전을 지휘하던 에이햅은 뜻밖의 인물을 본다.

그는 펜타곤이 거액의 현상금을 내건 북측 지도자 킹. 웬일인지 12명의 경호원 및 소수 의료진만 대동한 채 쫓기는 듯한 모양새다. 그렇잖아도 이 임무에 배정된 액수가 서운하고 이제 이 일이 지겹던 에이햅은 킹을 잡아 한몫 단단히 챙긴 뒤 은퇴하려 마음먹고 팀원들에게 킹 체포를 명령한다.

▲ 영화 < PMC: 더 벙커 > 스틸 이미지

블랙리저드는 팀원 한 명만 희생된 채 작전에 성공하지만 킹이 총상을 입어 위독하다. 다행히 북측 주치의 윤지의(이선균)가 살아남았기에 그의 도움을 받아 킹의 목숨을 유지시키는 데 성공한다. 그런데 맥그리거는 역전 기미가 안 보이자 맥켄지에게 킹과 블랙리저드를 제거할 것을 명령한다.

맥켄지와 에이햅이 이를 두고 갈등하는 사이 갑자기 다른 군사 기업 퍼스트서비스의 다수의 용병들이 나타나 공격하는가 하면 미군의 폭격이 시작되는데. 요즘 다수의 청소년 및 청년들에겐 컴퓨터게임이 일상화돼있다. 영화는 철저하게 그들의 롤플레잉 혹은 아케이드 게임의 취향에 맞게 설계돼있다.

일반적으로 고정 시점에서 촬영되는 것과 달리 메인카메라는 쉴 새 없이 흔들리며 사면초가에 몰린 인물들의 긴박한 상황을 생생하게 체험하도록 만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시점에서 환경을 바라보는 1인칭 게임의 형식을 따른다. 지하 30m를 무대로 진짜 오락영화란 이런 것이라고 우쭐대는 듯하다.

별다른 사유가 필요하지 않은 매우 ‘단순명쾌’한 액션이지만 나름의 메시지도 갖췄다. 먼저 국제정세. 맥그리거는 공화당 소속이고 중국과 군사적, 외교적으로 대치상태다. 남과 북의 화해모드가 급물살을 타고 있지만 미국과 중국의 ‘허가’가 있어야 뜻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 딱 현재의 상황이다.

▲ 영화 < PMC: 더 벙커 > 스틸 이미지

미국이 북측을 끌어안을 것인가, 중국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의 외교는 대통령선거라는 내치와 완벽하게 맞물려있다. 북측이 남측에 미사일을 쏴 전쟁 분위기를 조성했지만 다행히 미국 대통령이 그것을 안전하게 제거하는 신속한 대응으로 평화를 유지했다는 조작으로 표심을 얻겠다는 정치 선전.

블랙리저드는 로건을 제외하면 모두 미국 내 불법체류자다. 첫아이가 태어나는 날 지하에서 전쟁 중인 에이햅의 소원은 인턴 로건의 전 직업인 마트 직원이다. 전 세계를 주름잡으며 용맹을 떨친 용병 대장이! 영화는 대놓고 미국의 이민자에 대한 정책을, 어쩌면 은유적으로 세계의 현실을 조롱한다.

에이햅은 예명이고 그가 입고 있는 점퍼엔 마하리시란 글자가 새겨져있다. 아합은 구약성서 열왕기의 부패한 왕들 중에서도 정도가 가장 심했다. 바알을 섬겨 북이스라엘 국민을 도탄에 빠뜨렸다. 마하리시 마헤시 요기는 힌두교의 명상법에서 종교성을 제거한 초월명상을 세계에 펼친 구루(스승)다.

초월명상은 무한한 에너지와 창조적 지성의 원천을 열 수 있다는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얻고 있다. 1967년 비틀즈가 그와 만난 게 알려진 뒤 세계적인 현자로 우뚝 섰다. 비틀즈의 기타리스트 조지 해리슨은 그에 영향을 받아 인도의 현악기 시타르를 사랑했다. 에이햅은 현대적 역설의 아이콘이다.

▲ 영화 < PMC: 더 벙커 > 스틸 이미지

그는 수년 전 낙하산이 펴지지 않는 팀원을 살리려다 자신의 한쪽 다리를 잃었다. 생사의 갈림길에 선 용병은 항상 ‘나만 사느냐, 죽음을 무릅쓰고 동료를 챙기느냐’의 갈림길에서 고민을 하기 마련이다. 그의 지론은 개개인이 제 살 길을 찾는다는 각자도생. 하지만 현실에 그렇게 쉬운 답은 없다.

"전쟁이란 전부 제 혼자 살겠다고 몸부림치는 것”이라는 대사에 단순한 생존법이 담겨있지만 “사람 살리는 데 특별한 이유가 필요해?”라는 대사의 이항대립적 선택압이 공존한다. 생명과학의 선택압은 생존경쟁에 유리한 형질을 가진 개체군의 증식을 재촉하는 생물적, 화학적, 물리적 요인이다.

인간관계‘학’적 선택압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나만이라도 사느냐,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전우를 챙기느냐’를 선택해야 하는 내면의 갈등의 압력이다. 이기심과 이타심은 동물 중에서 인간만의 영원한 숙제다. 그래서 에이햅은 의족을 했고, 하필 그날 아내는 난산 기미를 보인다. 현실은 절뚝이는 혼돈.

“적이 아니라 사냥감”이란 한 마디는 전쟁마저도 비즈니스가 된 현대사회의 콘크리트 같은 무기적 성질을 말한다. 모든 가치관이 돈 하나로 귀결된 자본주의의 삭막함 속에서 이타심과 희생정신은 사치이고 낭비일까? 모든 기승전결이 박진감 넘치고 상쾌한 진정한 오락영화다. 15살. 12월 26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