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뺑반>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영화 ‘뺑반’(한준희 감독)을 선택하려면 주인공이 도미닉 같은 폭주족(‘분노의 질주’)이 아니라 그들을 잡아들이는 뺑소니전담반 경찰이고, 독일처럼 아우토반이 있는 것도 아니며 미국처럼 국토가 넓은 것도 아닌 한국이 무대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감독은 ‘차이나타운’ 이후 두 번째 연출이다.

F1 레이서 출신 JC모터스 정재철(조정석) 회장은 경찰 수뇌부를 비롯해 정관계 곳곳에 줄을 댄 채 불법을 자행하며 부를 축적한 사업가다. 경찰 내사과장 윤지현(염정아)은 은시연(공효진) 경위와 함께 그 커넥션을 쫓아 JC의 최경준 이사를 취조하던 중 강압수사 오해를 받고 팀 해체의 쓴맛을 본다.

뺑소니 전담반으로 좌천된 시연이 마주한 반장은 만삭의 우선영(전혜진) 계장. 나머지 팀원이래 봐야 서민재(류준열) 순경뿐이다. 뺑소니 사고가 접수되고 현장에 출동한 시연은 프로세스도 없이 감으로만 수사를 하는 민재에게 크게 실망하지만 의외로 육감이 뛰어나고 차에 대해 해박한 데 놀란다.

시연은 큰 뺑소니 사고의 유력한 혐의자가 재철인 사건을 접하고 그와 안면이 있는 친구 기태호(손석구) 검사에게 부탁해 JC모터스 주최 파티에 참석한다. 재철의 주머니에 도청장치를 집어넣는 데 성공하지만 이내 드러나 위기에 처하고 때마침 나타난 민재의 기지에 도움받아 그 자리를 피하게 된다.

▲ 영화 <뺑반> 스틸 이미지

뺑반이 노리는 건 재철의 ‘애마’ 버스터다. 거기에 장착된 블랙박스엔 재철이 뺑소니를 저지르고, 경찰 수뇌부에 뇌물을 건네는 장면 등이 담겨있기 때문. 이를 위해 뺑반이 전력을 쏟아붓고, 윤 과장도 힘을 보탠다. 그러나 국회의원이 목표인 경찰 수뇌부 인물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데.

'차이나타운’을 통해 생존의 절실함은 남자나 여자나 다를 바 없다는 걸 보여줬던 감독은 이번에도 여성 캐릭터에 많은 정성을 쏟긴 했지만 재철과 민재의 캐릭터가 워낙 강하다 보니 그런 노력은 별로 두드러지지 않는다. 수차례의 맥거핀 장치가 겹쳐지는 건 아마 그걸 충분히 의식한 결과인 듯하다.

그런 반전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꽤 집중해야 하는 영화다. 조금만 한눈팔면 일행에게 “방금 대사 뭐였지?”라고 귀찮게 만들어야 할 판이다. 재철과 민재는 겉으론 전혀 다르지만 인격적인 형성은 닮은꼴이기도 하다. 재철은 가난에 좌절해 차례로 자살한 부모를 보며 돈에 한을 품고 성장했다.

이탈리아 마피아 등과 어울릴 정도로 거친 삶을 산 그에게 모든 가치관의 종점은 돈(권력)이었다. 그걸 잡기 위해선 그 어떤 수단과 과정도 중요하지 않았다. ‘어떻게 갖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빼앗느냐, 빼앗기느냐’의 문제였다. 스피드는 그런 삶의 스트레스와 소유에 의한 중압감의 탈출구였던 것.

▲ 영화 <뺑반> 스틸 이미지

그래서 그는 말을 더듬는다. 당황하거나 분노를 주체할 수 없을 땐 더 심해진다. 속에서 갈등이 일 땐 한쪽 눈을 심하게 깜빡이기도 한다. 독선적이고, 자존감이 지나치며, 모든 게 자기중심적이기에 도덕도 정의도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 그래서 외롭다. 민재를 향한 그의 눈빛에선 동병상련의 애증이 엿보인다.

고아로 자란 김민재는 마약을 판매하고 도로를 폭주하는 등 범죄자로 살았다. 그러나 뺑소니 사고 때 한 경찰의 생명을 구한 인연으로 그의 양아들 서민재가 된 후 인생이 바뀌어 경찰로 거듭났다. 그런 탓에 항상 정체성의 고민을 겪지만 천성적으로 선하기에 자아는 고뇌하고 내면은 괴로울 따름이다.

선영이 만삭으로 설정된 건 올곧고 정직한 공무원이 이 나라에서 살기 얼마나 힘든지에 대한 풍유다. 적지 않은 공직자의 겉모습은 멀쩡하지만 그 실상은 부패했다는 은유다. “대한민국 다 썩었잖니”라는 대사가 뒷받침한다. 민재의 옷차림이 허름하고, 언행이 어수룩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지현과 선영, 시연과 민재는 심리적 양가성이자 사회적 의미망의 이항대립이다. 형식과 실천, 이기심과 이타심, 매뉴얼과 행동, 이념과 이상의 충돌이다. 민재는 범죄자 시절 자신을 잡으려던 경찰을 구했다. 인류애 앞에는 법도 규칙도 상식도 불필요하다는 도덕률과 최고선이 전반에 걸쳐 흐른다.

▲ 영화 <뺑반> 스틸 이미지

그래서 시연은 “큰 사건을 그따위로 처리하냐?”라고 핀잔을 주고, 민재는 “사건에 크고 작은 게 있어요?”라고 반박한다. 시연은 전 범죄자, 현 후배인 민재에게 경찰로서의 본분과 사람으로서의 본연을 배워 “괴물을 잡기 위해서일지라도 괴물이 돼선 안 된다”라는 정의의 법칙을 새삼 깨닫게 된다.

민재와 재철은 유물론으로 상충한다. 철저하게 자신의 범죄를 은폐, 엄폐, 조작하는 재철은 사사건건 자신의 목을 죄는 민재에게 “눈에 보이는 게 전부”라고 주장한다. 그는 물욕주의자고, 물신숭배자다. 그의 페티시즘은 슈퍼카로, 그 욕망의 성적 배출은 스피드로 형성된다. 애정결핍으로 자랐기 때문이다.

민재는 유사한 성장과정을 거쳤지만 양아버지를 만남으로써 재철과 다른 쪽으로 내달릴 수 있었다. 그의 주변에 있는 견인차 기사, 보험 브로커 등은 불법과 탈법이 일상이지만 그저 먹고살기 위해 법망을 살짝살짝 피해갈 따름이다.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의 적당한 타협이다.

후반 민재가 재철의 폭주를 용납하는 시퀀스는 캐스린 비글로우의 ‘폭풍 속으로’(1991)를 연상케 한다. 우정 출연한 이성민의 존재감이 돋보이고, 마지막 쿠키영상에서 ‘빵’ 터질 수 있다. “임신한 경찰 처음 봐?”라며 첫 임무로 영수증 붙이는 걸 지시하는 유머도 있다. 133분. 15살. 1월 30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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