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기묘한 가족>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충청도 한적한 마을 도로변의 폐업한 한 주유소. 아내와 사별한 뒤 유일한 희망이 하와이 여행인 만덕(박인환), 그의 아들 준걸(정재영)과 남주(엄지원) 부부, 그리고 막내딸 해걸(이수경)이 살고 있다. 남주는 10년 만에 임신했고, 그래서 준걸은 조작한 교통사고 수리비에 바가지를 씌워 생활비를 번다.

가족 중 유일하게 대학을 나와 대기업에 취업한 둘째 민걸(김남길)은 휴대전화 문자로 해고를 통보받은 뒤 짐을 싸 집으로 낙향하는 중이다. 그런데 마치 자신을 마중 나온 듯한 해걸을 보고 반갑게 다가서지만 그녀는 노숙자 같은 한 괴한(정가람)의 위협에 도주하는 중이다. 귀향의 시작이 소란스럽다.

동네 마을회관에서 노인들과 화투를 치던 만덕은 돈을 잃고 기분이 상해 화장실에 갔다가 괴한과 마주치고 그에게 머리를 물린다. 간단하게 치료를 받고 집에 돌아오니 괴한이 있다. 걸신들린 듯 양배추에 집착하는 괴한을 보고 민걸은 좀비라고 주의를 주지만 해걸은 왠지 그가 안쓰러워 챙겨준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던 만덕은 몸이 달라진 데 깜짝 놀란다. 거울을 보니 훨씬 젊어졌다. 괴한에게 물린 덕분이란 걸 깨닫고 그를 막내아들로 입양한다. 동생이 생긴 해걸은 쫑비라는 이름까지 붙여준다. 만덕은 동네 노인들에게 소문을 내고, 노인들은 회춘을 위해 쫑비에게 물리는 대가로 거액을 지불한다.

▲ 영화 <기묘한 가족> 스틸 이미지

집안 살림을 하는 남주는 그 돈을 차곡차곡 금고에 보관하지만 이내 경악한다. 금고가 텅텅 비고 ‘나 하와이 간다’라는 만덕의 메모 한 장만 달랑 남은 것. 그러나 소문은 바람을 타고 흘러가 주유소 앞에는 장사진이 펼쳐지고 큰돈을 번 준걸은 주유소를 새롭게 단장해 영업을 다시 시작한다.

쫑비에게 남다른 감정을 품게 된 해걸은 그렇게 가족들의 욕심에 희생되는 그가 안쓰러워 배낭에 양배추를 채워준 뒤 멀리 떠나라고 애원한다. 그러나 서울에서 회춘약 관련 사업을 하는 친구와 전화 통화를 한 민걸은 더 큰돈을 벌고자 가족 몰래 쫑비를 데리고 고속버스 터미널로 도망치는데.

코미디는 전통적인 마임이나 슬랩스틱부터 블랙코미디까지 하위 장르가 다양하게 산개하고 있는데 장르적 특성상 자극이 클수록 잊히거나 질리기 쉽다. 한때 전성기를 구가했던 지상파 방송사의 개그 프로그램들이 시들해진 이유 중의 하나다. 시청자는 제작진의 무성의를 탓하지만 그만큼 개발이 어렵다.

‘극한 직업’에서 보듯 진지함과 가벼움을 오가는 아이러니컬한 대비나 화장실 유머 등이 결론일 수밖에 없는 결과이기도 하다. ‘기묘한 가족’(이민재 감독)은 클리셰를 따르면서도 나름대로 품격과 차별성을 갖추려는 노력을 보인다. 나름대로 메시지와 교훈도 장착하기 위해 공을 들인 흔적도 역력하다.

▲ 영화 <기묘한 가족> 스틸 이미지

그림은 마치 연작 회화를 보는 듯한 평면적 구도를 다양한 샷으로 담아내 좌 혹은 우로 진행하는 듯한 속도감을 준다. 슬로모션도 자주 도입해 아날로그적인 정서로 웃음을 주는가 하면 심지어 대사를 소리가 아닌 글자로 대신하면서 촌스러움을 신선함으로 승화시킨다. 추억 소환의 코미디다.

해걸과 쫑비의 너른 양배추 밭에서의 유일한 러브 신은 윤종신의 ‘환생’을 삽입해 20세기의 ‘나 잡아봐라’ 스타일로 펼쳐지는데 젊은이들에겐 새롭고, 기성세대에겐 모처럼 흐뭇할 시퀀스다. 여기에 배우들은 작정한 듯 연극 톤의 연기와 대사를 펼치는데 엄지원이 특히 강한 캐릭터를 구축한다.

이런 매끄럽거나 세련되진 못했지만 비주류적이고 시니컬하며 연극적인 톤이 오히려 미덕으로 작용한다. 또한 패러디 혹은 오마주도 재미를 더한다. 좀비에 뜯긴 패딩의 솜이 공간에 휘날리는 ‘웰컴 투 동막골’의, 순식간에 주유소가 아수라장과 나이트클럽이 되는 ‘주유소 습격 사건’의 패러디 등이다.

인간의 탐욕을 준엄하게 꾸짖는 주제가 분명해 아주 쉽게 즐기고, 입장료가 아깝지 않았다는 상쾌함을 줄 만하다. 대기업이 지난 10년간 암암리에 노숙자를 대상으로 임상실험을 했는데 그들이 모두 행방불명이라는 설정, 그로 인해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하게 됐다는 ‘괴물’의 차용은 사회에 대한 경고다.

▲ 영화 <기묘한 가족> 스틸 이미지

사람들이 젊음 혹은 정력에 얼마나 유치하게 집착하고 욕심을 부리는지에 대한 준엄한 심판과 그 동기가 되는 화장실 유머도 담겼다. 좀비가 대기업의 과욕과 횡포에 의해 탄생됐지만 결국 그 희생자의 다수도 재벌과 다름없는 그릇되거나 과한 욕망을 지닌 채 집단 광기에 휩싸여있다는 교훈이다.

좀비에게 물리는 시술이 가족들에 의해 팩토리의 구조로 구축된다는 설정과 만덕에 이어 쫑비가 숙소로 이용하는 트레일러는 고도의 산업화가 인간관계와 인간성을 황폐화, 시스템화한다는 메시지다. 그래서 돋보이는 인물은 토끼를 정성스레 키우고, 유일하게 쫑비를 가족으로 대하는 해걸이다.

오직 돈밖에 몰라 아직 좀비 증세가 안 보이는 아버지를 빨리 해치워야 한다는 민걸과 그와 달리 인간미 넘치면서도 천박한 준걸에 비해 해걸은 매우 청명한 정신세계와 의지를 지녔다. 어머니가 자신을 낳다 죽은 데 대해 어머니는 물론 가족에 대해 내내 죄책감을 갖고 사는 양심이다.

영화의 중반 이후를 책임지는 이수경은 의외의 발견이다. 어딘가 모자란 듯한 정재영과 모든 걸 내려놓은 듯 작정하고 웃기는 김남길도 눈에 띄지만 이수경과 시종일관 서늘한 얼음장 같은 엄지원의 활약이 돋보인다. 내내 넘치는 코미디는 마지막 시퀀스에서 절정을 이룬다. 112분. 12살. 2월 13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