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가 주도한 1988년 서울올림픽 유치 극비작전 [김문 작가 칼럼]

김문 작가l승인2019.02.01l수정2019.02.21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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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김문 작가가 쓰는 격동의 현대사를 주도한 군장성들의 이야기]

▲ 사진=ktv 화면 캡처

안기부가 주도한 1988년 서울올림픽 유치 극비작전

결국 이렇게 해서 유 장군은 1980년 8월 18일 전역과 함께 제 11대 중정부장에 취임, 전두환 전임부장서리와 인수인계를 하게 되었다. 중정부장에 취임하자마자 그는 대대적인 조직개편에 들어갔는데 정보기관이 국가원수를 시해했다는 이미지를 씻기 위해 우선 명칭부터 바꿨다. 그리고 새로 국가안전기획부법을 국회에 상정했으며 이에 따라서 1981년 1월 1일 중앙정보부는 안전기획부로 거듭나게 됐다. 사실상 그가 초대 안기부장이 된 셈이었다.

전 대통령 취임 후 1981년 3월 어느 날 아침 총리실로부터 급한 전갈이 왔다. 총리주재 각 부처 장관회의에 참석해 달라는 것이었는데 회의내용은 올림픽 유치와 관련된 사항이었다. 유 부장은 즉각 안기부내에서 국제통으로 알려진 이상열(李相悦 92년~94년 주 이란대사)제 5국장을 불렀다. 회의에 같이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중앙청 대회의실에는 남덕우(南悳祐) 국무총리를 비롯한 각부처 장관 외에 김택수(金澤壽) IOC위원, 박종규(朴鍾圭) 대한체육회장 등의 체육계 인사들도 참석해 있었다. 그런데 남 총리의 안색이 영 좋지 않아 보였다. 회의장 분위기도 어딘가 모르게 침울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잠시 후 남 총리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회의 내용에 대해 간략히 설명했다.

“그동안 우리는 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해 왔습니다. 그러나 가는 곳마다 물량공세로 나오는 일본의 벽에 부딪치고 특히 남북이 대치하는 불안한 국내 정세와 부족한 경기시설, 그리고 체육 후진국이라는 점 등이 매우 어렵게 작용되고 있습니다. 더욱이 대부분의 IOC중앙집행위원들조차도 이미 일본의 나고야 쪽으로 기울어 더 이상의 노력은 국력의 낭비라는 분석이며 또한 대한체육회에서 일본측에 제시한 마지막 조건, 즉 나고야올림픽 유치를 밀어주는 대신 86아시안게임 서울개최를 밀어달라는 제의마저 일본측으로부터 거절당하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오늘의 회의는 일본과의 올림픽 유치경쟁을 포기한다는 결론을 짓기 위해서 연 것입니다.”

남 총리는 사뭇 떨리는 음성으로 회의의 안건을 알렸다. 회의장 안은 침묵만 흐를 뿐 아무런 의견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김택수 위원이 일어서더니 “현재로선 올림픽 유치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만약 표경쟁을 벌인다면 단지 내 한 표만 나올 뿐입니다.”라는 짤막한 말로 유치불가의 어려운 현실을 대변했다. 김 위원의 이같은 비관론에 다른 참석자들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따라서 올림픽 유치가 한낱 물거품으로 끝나게 된다는 것이 뻔한 순간이었다.

“올림픽 유치는 우리 민족의 생존에 달려 있습니다.”

▲ 사진=ktv 화면 캡처

그런데 이 때 잠자코 회의 분위기를 지켜보던 유 부장이 일어서더니 “(이규호 문교부장관을 가리키며) 이 장관, 올림픽 유치공문을 볼 수 있소?”하고 말을 꺼내자, 참석자들의 시선이 일시에 유 부장에게로 쏠렸다. 유 부장은 이 장관으로부터 건네받은 올림픽 유치신청서 공문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전두환 대통령이 직접 쓴 친서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유 부장은 갑자기 강렬한 ‘어떤 것’을 느낄 수 있었다. 6·25와 월남전 참전, 그리고 33년 동안의 군생활을 통해 몸에 밴 특유의 애국심이랄까, 그는 순간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서 “국가를 위해서 올림픽 유치를 결정한 이상 중도포기는 있을 수 없습니다. 특히 대통령의 친서까지 담겨진 국가의 중대사항을 단지 현실적인 어려움을 내세워 그만 둘 수 있겠습니까?”라며 비장한 어조로 서두를 꺼냈다. 평소 말이 없을 정도로 과묵한 성격이 그가 한번 말문이 트이자 굵직굵직한 그의 목소리는 회의장 안을 울리며 계속 이어졌다.

“…우리의 올림픽 유치는 민족의 생존권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올림픽 유치는 앞으로 8년동안 한국이 국제적인 상승무드를 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수출증대 등 경제적 이익은 물론, 안보에도 상당한 기여를 할 수 있습니다. 일본은 패전의식에 사로잡혀 있을 때 동경올림픽 유치로 선진국 대열에 올라섰습니다. 우리도 선진국 한번 되어봅시다. 그럴려면 우리 국민들에게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아무런 비전이 없습니다. 여기 문공부장관과 외무부장관이 있지만 외국사람들은 한국을 잘 모릅니다. 그러나 올림픽을 유치하게 되면 이러한 모든 문제점들이 일시에 해결되고 또한 20억달러 정도의 홍보효과도 거둘 수 있습니다. 특히 북한과의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의 경쟁에서 압도적인 위치에 올라설 수 있습니다.”

유 부장의 신념과 패기에 찬 이러한 발언은 분위기를 급반전시키기에 충분했다. 비록 박수를 치는 등의 즉각적인 반응은 없었지만 여기저기에서 고개를 끄덕거리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회의분위기는 ‘개최포기’에서 ‘개최노력’으로 일거에 뒤바뀌게 되었다. 유 부장은 회의가 끝난 뒤 남 총리에게 다가가 귀엣말로 뭔가 주고받고는 서둘러 회의장을 빠져나왔다. 정보기관의 책임자로서 결정적인 ‘계획’은 극비리에 진행될 것임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 유 부장을 태운 전용 승용차가 중앙청을 벗어나 막 세종로를 접어드는 순간, 옆에 탔던 이상열 국장이 “부장님, 유치가 불가능하다는데 무슨 수로 유치시킨다는 말입니까?”라고 다소 걱정스럽게 말을 건넸다. 그러나 유 부장은 차창 밖을 응시할 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다만 상큼한 봄바람이 그의 코끝을 스쳤다. 승용차가 신세계 앞에서 남산쪽으로 막 좌회전할 즈음 이 국장이 다시 “부장님, 안되는 올림픽 유치를 어떻게 하실 작정입니까?”하고 재차 물었다. 회의분위기를 지켜 본 그로서는 ‘뒷일’이 매우 불안했던 것이었다. 그러자 유 부장은 구두 뒷꿈치로 이 국장의 구둣발을 밟으며 “한번만 더 거론 하면 목이 달아날 줄 알아라.”하고 으름장을 놓았다. 남산 집무실에 도착한 유 부장은 즉시 비서실장을 불러 내일 오전 10시 청와대에 긴급보고가 있으니 면회신청을 하라고 지시했다.

남산에 올림픽 유치를 위한 극비 사령탑 만들어져

▲ 사진=ktv 화면 캡처

이튿날 오전 10시 유 부장은 전 대통령과 단독으로 만났다. 먼저 전 날의 회의내용을 보고한 다음, 올림픽 유치라는 지상목표를 반드시 달성해야 한다는 불가피론을 피력했다. 전 대통령으로서도 올림픽유치의 이점을 그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터였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보고를 받아 이미 체념한 상태였다. 그러나 약 30분 동안 유 부장의 진지한 보고를 가만히 듣고만 있던 전 대통령이 “좋소. 유 부장 책임하에 유치토록 해보시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유 부장은 전 대통령과 굳은 악수를 나눈 뒤 남산으로 돌아왔다. 그는 비서실장을 불러 해외에 나가 있는 기업체 현황자료를 긴급히 뽑아오도록 지시했다. 아울러 투표권을 가진 각국 IOC위원들의 회유방안 등 국가별로 치밀한 ‘로비작전’계획을 수립한 다음 이 국장을 실무책임자로 임명했다. 드디어 남산 깊숙이에서 올림픽 유치를 위한 극비 ‘사령탑’이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며칠 뒤 유 부장은 로비전의 일환으로 현대그룹 정주영(鄭周永)회장을 비롯, 동아그룹 최원석(崔元碩)회장 등 기업인들과 신라호텔에서 비밀회의동을 가졌다.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일상적인 점심식사 모임인 것처럼 위장했다. 이 자리에서 유 부장은 참석한 기업인들에게 로비대상과 방법 등을 일일이 기록한 체크리스트를 배포하면서 또 몇 가지 반드시 지켜야 할 준수사항을 다음과 같이 일러두었다.

첫째, 지금부터 이루어지는 모든 것은 절대 비밀로 할 것, 둘째, 포섭과정에서 ‘이미 일본은 동경올림픽을 개최했지 않았느냐’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일본 개최불가론과 함께 개발도상국 개최의의를 집중적으로 내세울 것, 셋째, 최근 일본이 국제적으로 경제동물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만큼, 이러한 점을 가급적 주입시켜 도덕적으로 고립시킬 것, 넷째, IOC위원 본인은 물론 가족들까지 생일 등 모든 기념일을 챙길 것, 다섯째, 접촉과정에서 들어가는 일체의 경비는 청구하는 즉시 지불될 것이며 제반 애로사항은 안기부에서 책임지고 해결하겠다는 것 등이었다.

참석한 기업인들도 유 부장의 우국충정이 담긴 비밀지령(?)에 적극 지지를 보냈다. 차제에 국가를 위해 ‘멋 있는 일’을 한번 해본다는 점에서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88서울올림픽 유치를 위한 ‘로비팀’은 돛을 달게 되었다.

▲ 김문 작가

[김문 작가]
전 서울신문  문화부장, 편집국 부국장
현) 제주일보 논설위원

김문 작가  gamsam10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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