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살인마 잭의 집>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라스 폰 트리에의 신작 ‘살인마 잭의 집’은 제71회 칸국제영화제에서 20분 만에 100여 명을 퇴장케 했지만 종영 후 기립박수를 받은 것처럼 기호와 인식에 따라 자아 고취의 교묘한 변전, 혹은 도그마 선언의 극단을 이루는 궁극의 예술작품으로 해석될 수 있다. 152분. 청소년 불가. 2월 21일 개봉.

전설적인 살인마 ‘잭 더 리퍼’를 재구성한 잭(맷 딜런)이 신비의 인물 버지(브루노 강쯔)와 여행하며 지난 12년간 60명 이상의 사람과 숱한 동물을 예술이라는 미명 하에 무차별 살해한 ‘고해성사’를 하는 게 기둥 줄거리. 기술공인 그는 원래 꿈인 건축가로서의 예술을 추구한다는 궤변을 펼친다.

“옛 성당엔 신만 볼 수 있는 예술품들이 숨겨있고, 그 뒤엔 위대한 건축가가 있다. 살인도 마찬가지”라는 살인에 대한 억지 주장. ‘교양 연쇄살인자’라 자칭하는 그는 주로 여자가 표적이지만 아이는 물론 군인 등 남자도 가리지 않는다. 그가 버지에게 펼치는 논리는 소크라테스가 혐오한 수사학이다.

영화의 큰 틀은 단테의 ‘신곡’ 중 ‘지옥’ 편이다. 13세기의 시성이 된 단테가 평소 존경했던 고대 로마의 시성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로 지옥을 여행한다면 잭은 버지를 따라 지옥으로 가는데 그의 충고를 무시했다 9번째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면에서 단테와 정반대지만 트리에는 살짝 반어법을 구사한다.

▲ 영화 <살인마 잭의 집> 스틸 이미지

즉 살인을 예술이라 우기는 잭과 이를 말리거나 설교하지는 않지만 우회적으로 잘못을 지적하는 버지를 통해 은연중에 잭에게 면죄부를 주는 한편 교묘하게 권선징악을 표상화해 의심의 싹을 자른다. 잭은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호랑이’에서 호랑이와 양의 이론을 추출해 내 합리화의 도구로 쓴다.

그는 신이 포식자 호랑이와 피식자 양을 동시에 이 땅에 창조했듯 살인자인 자신도 그 존재의 이유를 지닌다고 오역한 해석을 적용한다. 다음은 천재적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 잭은 그를 최고의 예술가로 여기는데 사실 자신의 강박장애를 굴드도 가졌기 때문이다. 굴드와 자신의 특성을 동일시하는 오류.

이렇게 왜곡과 결점과 변칙투성이인 잭이 지나칠 정도의 결벽증을 가진 것 역시 아이러니컬한 세상을 비웃는 환유다. 잭이 유일한 여자친구였던 재클린을 살해하려 할 때 그녀가 비명을 질러도 아파트 단지 안의 그 누구도 도우려 하지 않는 걸 들어 “망할 놈의 세상이기 때문”이라 해석하는 것까지.

잭은 재클린을 심플이라 부른다. 그가 세상, 인간, 생명, 의식, 예술 등의 삼라만상을 얼마나 우습게 여기는지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스릴러와 판타지가 결합된 컬트라 할 수 있는 이 영화가 한편으론 블랙코미디로 평가받는 건 첫 번째 사건의 피해자가 잭의 파괴본능을 자극했기 때문일 것이다.

▲ 영화 <살인마 잭의 집> 스틸 이미지

트리에는 그렇게 여자의 천박한 가벼움을 비웃은 뒤 잭의 입을 빌려 “남자로 태어나는 것 자체가 범죄자로 태어나는 것. 언제나 여자는 피해자, 남자는 가해자”라고 웅변한다. 매우 불편한 언명이지만 어딘가 존재할 잭이라는 뒤틀리고 비뚤어진 인격을 설명하는 시퀀스로서는 매우 적절하거나 적확하다.

잭은 인간의 의식을 구성하는 요소와 그 구조를 분석하고자 하는 심리학적 구성주의와 한 존재의 의미는 개별로서가 아닌 전체 체계 안에서 다른 존재들과의 관계에 따라 규정된다는 철학적 구조주의가 반영된 캐릭터다. 그가 사는 동네는 Prospect(가망, 예상)인데 거리 간판의 절반이 떨어져 나갔다.

당연히 외지인들은 동네 이름을 모른다. 예상 없는 가망. 즉 불투명한 이 세상이다. 그는 시골 외진 곳에 새 집을 직접 짓는다. 몇 번을 허물고 다시 짓는 이유는 ‘자재가 건축을 만든다’는 지론 때문. 그래서 그는 신성한 자재를 쓰려 노력하지만 번번이 실패한 채 결국 뼈대만 세운 채 건축을 중단한다.

버지는 은유와 비유는 물론 나중에 “넌 적그리스도”라는 직유로 잭이 구성주의의 내성법을 사용할 것을 강력히 권유하지만 잭은 자신의 전체를 연쇄살인 혹은 숱한 시신들이란 요소로 구성하려는 어긋난 구조주의를 펼친다. 진짜 구조주의는 주변인들과의 관계로 인해 자신이 완성된다는 걸 모른 채.

▲ 영화 <살인마 잭의 집> 스틸 이미지

감독이 히틀러, 무솔리니, 스탈린 등의 독재자 사진을 인서트로 넣고, 제2차 세계대전 때의 독일군의 급강하 폭격기 슈투카와 ‘일당백’의 풀메탈재킷 등을 거론한 건 잭의 뒤틀린 세계와의 관계를 적나라하게 표현하려는 것. 무모하고, 맹목적이며, 자기기만적으로 악에 대한 길항성을 주창하는 혼돈계의 인물.

잭의 부조리를 설명하기 위해 가로등 아래의 그림자를 애니메이션으로 삽입해 드러내놓고 칼 융의 ‘그림자이론’을 웅변한다. 융의 주장대로 잭의 내면에는 자신이 의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충동(살인)을 담고 있는 어두운 내면, 즉 그림자가 있는데 그는 강박장애 해소가 이유라는 생떼를 쓴다.

융은 그걸 콤플렉스라고 표현했지만 잭은 예술이고, 그래서 자신은 교양을 갖춘 예술가라 우긴다. 독아론이자 유아론이다. 한 크레타 사람이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라고 말한 크레타인의 역설이다. 철학과 심리학을 놓고 볼 땐 트리에의 최고 역작이고, 예술성까지 더하면 비교불가의 걸작이다.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슈페어의 ‘폐허가치이론’, ‘예리코의 나팔’ 등은 의미심장하고, 들라크루아의 ‘단테의 작은 배’를 차용한 시퀀스는 충격적이다. 잭을 사용한 첫 살인과 끝의 레이 찰스의 ‘Hit the road Jack’이란 수미상관의 센스! 몽환적 효과를 위해 데이빗 보위의 ‘Fame’을 배경에 깔았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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