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오는 27일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조민호 감독)와 ‘자전차왕 엄복동’(김유성 감독)이 나란히 개봉된다. 인터넷 신조어에 익숙하고, 빅뱅 탑이 방송에 욱일승천기가 그려진 점퍼를 입고 나오는 게 왜 비난받을 일이냐고 의아해하는 사람에겐 예외겠지만 나머지 다수에겐 의의가 크다.

그 주말은 3·1만세운동 100주년을 맞는다. 1910년 8월 국권피탈로 나라를 잃은 우리 민족이 분연히 떨쳐 일어나 독립의 용틀임을 한 결정적 계기가 된 날이다. 국회의원이 공석에서 ‘뿜빠이’를 외치는 이 한심한 사태 속에서 유관순, 엄복동, 최현배 등은 민족정신과 우리말의 소중함을 가르친다.

‘항거’는 이미 언론시사회를 통해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유관순을 모를 리 없겠지만 스크린에 구현해낸 그 지조, 절개, 용기, 신념 등을 눈으로 확인한다면 감동과 존경심, 그리고 경각심이 새삼스레 피어오를 것이다. 대중이 상세하게 알지 못하는 그녀의 투옥 1년여를 담았다.

우리는 ‘옥 속에 갇혀서도 만세 부르다’라는 가사를 통해 유관순을 기리고 있지만 그 삼엄했던 감옥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친다는 게 얼마나 큰 애국심과 용기를 필요로 했는지, 그 후에 어떤 모진 고문과 치욕에 시달려야 했는지 피부로 느끼기 힘들다. 영화는 그 장엄하고 숭고한 민족혼을 담았다.

▲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 스틸 이미지

서대문감옥에 수감된 유관순은 완벽한 일본 신민이 되겠다며 니시다로 개명한 뒤 보안과 소속 헌병 보조원이 된 정춘영에게 모진 고문을 당한다. 결국 1년 만에 그녀는 자궁 및 방광 파열로 사망한다. 사인에서 보듯 그녀는 잔인하고 처참한 성 고문을 당했다. 왜 일제 청산이 중요한지 웅변하는 이유다.

다큐멘터리 형식은 감동의 진폭을 높여준다. 유관순을 비롯한 김향화, 권애라 등 독립운동가들의 얘기를 고증에 근거해 펼쳐나가는데 모노톤을 선택한 게 현사실적 효과를 더한다. 억지로 애국심 마케팅을 하지 않겠다는 노력! 고문 전의 공포, 중의 고통, 후의 재점화하는 투쟁의 의지가 생생하다.

18살이 채 안 된 소녀다. 요즘 같으면 아이돌에 열광하고, 패션과 화장품에 집중하며, 자기애에 충실할 나이에 그녀는 비겁한 다수의 어른들과 달리 조국의 독립을 위해, 민족정신의 생기를 위해 떨쳐 일어섰다. 국치에 분노했고, 인권유린에 분개했으며, 나라를 위해 버릴 목숨이 하나인 걸 슬퍼했다.

14살 때 ‘괴물’을 통해 전 국민에게 존재감을 알린 고아성은 완벽하게 성인 배우로서 자리매김했다. 감정에 치우치지 않으려 노력한 감독의 정성도 돋보이지만 결연하게 역할을 받아들이고, 신중하게 열사를 그려내려는 고아성의 겸허한 자세는 몇 번을 칭찬하고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경건하다.

▲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 스틸 이미지

수원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기생 출신 운동가 김향화와 그 역을 맡은 김새벽도 눈여겨볼 만하다. “딱 한 놈, 왜놈에겐 술을 따르지 않았다"라는 김향화의 당당한 외침은 감동적이다. 다만 정춘영을 양심의 가책 때문에 괴로워하는 인물로 그린 것은 아쉽다. 친일 매국에 변명의 여지는 있을 수 없다.

그건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라는 원초적인 구차함의 해명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목숨, 가족, 평안함 등을 내던진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은 육체의 고통을 몰랐기 때문에,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랬던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일신의 안위보다 더 중요하고, 숭고한 데 대한 명징한 신념이었다.​

‘엄복동’에 대한 영화적 평가는 그리 긍정적이지 못하지만 역사적 가치에 근거할 땐 유관순이나 손기정 등을 더 디테일하게 알리는 것만큼 엄복동 같은 자긍심을 더 발굴해내는 것도 중요하다는 점에서 존재의 가치는 갖췄다. 일제는 우리 민족의 기를 누르기 위해 전조선자전차경기대회를 개최한다.​

당연히 우승은 매번 일본인이 차지한다. 평택에서 물장사를 하던 복동은 똑똑한 동생 귀동만 편애하고 자신을 무시하는 아버지의 구박을 견디다 못해 가출, 경성으로 간다. 우연한 기회에 자신의 자전차 경주 실력을 발견하고 한국 선수단에 입단한 뒤 대회에서 승승장구하며 조선의 자존심을 세워준다.

▲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 스틸 이미지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아이들의 꿈이다. 1945년 광복 당시 일부 우리 어린이들이 ‘우리나라가 망했다’며 울었다고 한다. 일본이 지배하는 세상에 태어난 우리 어린이들에게 그런 착시현상은 가능한 일이다. 그 이유는 그들의 부모들이 정체성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 경찰의 총에 맞은 애국단 행동대원 형신은 복동에게 “아이를 위해서라도 계속 이겨줘”라고 유언을 남긴다. 이 시퀀스 하나에 이 영화의 모든 게 담겨있다. 모든 생명은 자신이 유한하다는 걸 안다. 그러나 번식을 함으로써 개체는 사라져도 종은 영속한다는 걸 믿고 경험의 유전자를 전달한다.​

이렇게 전달된 DNA는 진화론적 ‘후성 규칙’을 후손에게 남기고, 그 ‘후성 규칙’은 대대손손 이어지면서 거듭된 진화를 통해 보다 더 확장된 문화를 발전시킴으로써 종의 경쟁력을 강화시킨다. 엄복동은 바로 그 ‘후성 규칙’의 중심이었던 것이다. 유관순, ‘말모이’의 모델로 추정되는 최현배 등이 그렇다.​

‘항거’와 ‘엄복동’은 영화적 측면에선 고증과 과장의 문제, 픽션의 농도를 조절하는 연출력 등에서 대비는 된다. 하지만 역사 바로 세우기와 한류열풍 속의 대중문화 콘텐츠 활용 방안을 놓고 볼 땐 분명히 두 작품 모두 거울임이 분명하기에 역사적 경험론과 민족적 관념론의 관점에선 동근원적이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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