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프로디지>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영화 ‘프로디지’(니콜라스 매카시 감독)는 무서운 캐릭터나 잔인한 비주얼보다 분위기와 설정으로 공포를 극대화하는 요즘 호러의 문법을 따른다. ‘엑소시스트’와 ‘오멘’의 오컬트에 동양의 환생 혹은 빙의를 섞어 악마는 죽지 않고 사회 곳곳을 자유롭게 누비며 악행을 저지른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8년 전 한적한 시골 마을. 마거릿(브리타니 엘렌)이 한쪽 손이 잘린 채 외딴집에서 탈출한다. 잔뜩 공포에 질린 그녀는 때마침 그곳을 지나던 주민에게 발견되고, 신고를 받은 경찰은 범행 장소에 출동해 그곳에 은둔 중이던 한 남자를 사살한다. 그는 지난 5년간 9명을 죽인 연쇄 살인마 스카르카였다.​

연인 새라(테일러 쉴링)와 존(피터 무니)은 안정된 생활을 위해 결혼을 하고 아들 마일스(잭슨 로버트 스캇)를 낳는다. 오드 아이로 태어난 마일스는 아기 때부터 천재적인 지능을 보인다. 현재. 8살이 된 마일스는 어느 날 영재 교육 학교에서 한 친구에게 이유 없이 잔인한 폭력을 휘두른다.​

마일스가 매우 폭력적으로 변하고, 손에 집착하며, 밤에 이상한 잠꼬대를 하자 새라는 정신병이 발병한 것이라 생각해 일레인 박사(폴라 보드류)에게 데려간다. 그러나 증세는 나아지지 않고, 박사는 퇴행 최면사 아서(콜므 포어)를 소개해준다. 잠꼬대는 고작 40만 명이 사용하는 헝가리 사투리였다.

▲ 영화 <프로디지> 스틸 이미지

아서는 퇴행 최면을 통해 부부에게 충격적인 사실을 고지한다. 스카르카가 죽던 바로 그 시각 동시에 마일스가 태어났는데 스카르카가 마일스에 빙의한 것이라고. 즉 마일스의 내면엔 그와 스카르카가 번갈아 존재한다는 것. 반신반의했던 부부는 증세가 더 심해지자 아서에게 본격적인 치료를 맡기는데.

영화는 드러내놓고 이원론의 교과서적 방향을 지향한다. 영혼이 자꾸 육체를 벗어나려 한다는 플라톤보다는 영혼의 이성적인 부분과 육체적인 부분이 이원론적으로 존재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 쪽에 가깝다. 세계적 기본 구성 원리를 선과 악, 명과 암 등의 이항대립 관계로 본 조로아스터교 색채도 띤다.

오드 아이 스타 데이빗 보위를 거론하며 마일스와 스카르카를 그렇게 설정한 게 대표적이다. 마일스가 갓난아기 때 주사를 맞아도 눈 하나 깜빡거리지 않고, 20주 만에 말을 하는 건 태어날 때부터 이미 그 안에 스카르카가 공존했다는 것. 아이가 천재거나 성장이 빠르다고 절대 기뻐하지 말라?

인식론적으로는 환생과 윤회를 믿는 동양적 사상과 더불어 현상 세계와 물자체의 존재를 동시에 인정하는 임마누엘 칸트를, 심리적으로는 심신이원론의 르네 데카르트를 따른다. 마일스를 살리느냐, 스카르카에게 마일스의 몸과 영혼을 빼앗기느냐의 다툼은 대립과 배제라는 이원론의 원칙이다.

▲ 영화 <프로디지> 스틸 이미지

여기에 개입하는 건 가족 문제다. 알고 보니 존은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며 자란 트라우마가 있어 한때 폭력적인 성향이 강했다. 폭력의 대물림이라는 가정폭력에 대한 경고다. 처음에 새라가 마일스의 폭력성을 유전으로 의심하는 이유. 또한 새라는 결혼 전 매우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다.

존의 어깨에 기댄 채 “교외에서 아이를 키우며 (평화롭게) 사는 삶이 안 믿겨, 예전엔 매일 술 마셨는데”라고 매우 행복한 표정을 짓는 그녀에게서 자유와 방종의 차이를 구분하는 주지주의적 깨달음이 엿보인다. 마일스가 천재적인 뇌 구조를 갖고 태어났다는 건 스카르카가 천재라는 암시다.

새라와 존 대 스카르카의 치열한 전쟁이 진행될수록 스카르카의 영혼이 마일스의 영혼을 밀어내는 시간과 횟수가 점점 더 늘어나는 긴박한 상황으로 전개된다. 퇴행 최면을 통한 빙의 영혼 퇴치에 남다른 능력을 지닌 아서를 만난 건 천군만마를 얻은 것. 그런데 스카르카는 의외로 똑똑하고 치밀하다.

그 즈음에서 영화가 집중하는 곳은 영혼이 되돌아온 이유다. 귀신이 나타나는 이유, 즉 사람의 눈에 귀신이 보이는 이유는 그 귀신이 한을 풀기 위해서다. 그래서 자신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고, 바라는 바도 이뤄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 현현하는 것이다. 과연 스카르카의 환생의 이유와 목적은 무엇일까?

▲ 영화 <프로디지> 스틸 이미지

마일스 가족의 애완견 이름이 ‘대화 중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의 가족을 욕되게 한 화자가 상황을 재치 있게 무마하는 변명’인 탈룰라인 것은 중의적이다. 주인공은 마일스의 가족을 포함해 고작 7명. 과연 남의 가족을 욕되게 하는 이는? 그가 위기를 벗어나는 방법은? 벗어나기는 할 수 있을까?

마일스의 심리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데칼코마니를 사용하는 시퀀스는 다분히 ‘왓치맨’의 주인공 로어셰크를 연상케 한다. 로어셰크는 이제 정부에 의해 활동이 중단된 슈퍼 히어로 자경단 왓치맨 멤버 중 가장 어두운 인물이다. 매춘부의 사생아란 트라우마 탓에 오히려 범죄에 대한 혐오가 가장 크다.

그는 타이트한 마스크를 생명처럼 아낀다. 그런데 그 하얀 마스크 전면은 그의 심리상태에 따라 데칼코마니 문양으로 수시로 바뀐다. 마일스는 핼러윈데이에 의상은 물론 얼굴까지 해골로 분장을 한다. 그 후 화장의 반만 지운다. 내면 속 두 인격은 각자일까, 데칼코마니일까? 로어셰크와 유사하다.

우회한 페티시즘으로 우상 숭배를 비판하는 재치! 언어와 의식, 에너지와 영혼은 대립 관계일까, 배제 사이일까? 마일스는 자신의 몸에서 스카르카를 몰아낼 수 있을까? 이미 ‘그것’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스캇의 천사와 악마의 두 얼굴의 연기는 놀라울 따름이다. 92분. 15살 이상. 4월 4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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