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기생충>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한국 영화로서 처음으로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기생충’(봉준호 감독)의 국내 흥행이 심상치 않다. 지금까지 이 상 수상작은 국내에서 ‘흥행필패’였지만 봉 감독은 보란 듯이 징크스를 깼고, CJ엔터테인먼트는 ‘설국열차’ 흥행의 재현 혹은 ‘괴물’(쇼박스)의 추월도 노려봄직한 상황이다.

영화의 갖가지 상징성과 메타포 등은 감독의 의도지만 관객 저마다의 해석도 용인이 허가된다. 예술은 작가의 상상력과 광기에서 나오지만 관객은 돈을 지불하는 만큼 자기만의 방식대로 즐길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제목은 사실상 민주주의를 지배하는 자본주의의 경제 논리가 만연된 현실의 반영이다.

민주주의는 서로 도우며 함께 사는 상생과 공생을 기치로 내걸지만 그 깃발 뒤에 건설된 진영에선 돈이 계급을 형성한다. 그래서 ‘꼬리칸’ 사람들이 생활수준을 높이려면 ‘머리칸’을 점령하거나(‘설국열차’), 최소한 그들에게 아부하거나, 또는 벌레처럼 몰래 그들의 자양분을 훔치는 기생을 해야 한다는 것.

기택 가족들은 대화에서 바퀴벌레를 거론한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어려운 존재가 들이닥치자 그들은 바퀴벌레처럼 후다닥 탁자 밑으로, 어둠 속으로 기어들어가 숨는다. 표피적으론 빈자가 기생충이지만 감독의 의도는 포괄적이다. 피자집 사장이 운운하는 ‘브랜드 이미지’는 사실 노동자와 소비자가 만든다.

▲ 영화 <기생충> 스틸 이미지

재벌이 재벌일 수 있는 건 노동력 덕분이다. ‘파업전야’처럼 노동자들이 자신의 업무에 대한 책임감과 사명감과 자부심을 갖고 피땀 흘려 일한 결과 상품성이 형성되고, 그게 자본가의 지갑을 부풀려준 것이다. 마르크스는 옳았지만 혁명의 수단이 폭력이고, 그 목적이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라 실패했다.

칸트가 ‘직관 없는 사유는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라며 관념론과 유물론의 결함을 비판해 근대의 대표적인 철학자가 됐듯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저마다의 맹점이 있다. 완벽주의 자체가 세상에 완벽한 게 없어 생긴 이념이듯,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생각이 영원한 평행선이듯, 인간사가 그렇다.

그래서 감독은 겉으론 사기꾼 집단인 기택의 가족을 박 사장에게 기생하는 존재로 그리지만 사실 그보다 더한 기생충이 반전을 제공한다. 그뿐만 아니라 박 사장 기업의 노동자들은 임원들을 기생충으로 볼 수도 있다. 기택은 아들 기우에게 “아들아, 너는 계획이 있구나”라고 감탄하는데 그건 반어법이다.

궁지에 몰렸을 때 기택은 가족에게 “다 계획이 있다”라고 큰소리를 치지만 기우가 그 내용을 묻자 “없다”고 한다. 계획대로 되는 게 없기 때문에 계획은 무의미하다는 지론. 그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건 대만 카스텔라 사업이었다. 나름의 탄탄한 계획도 자본주의의 돈의 논리 앞에선 무용지물이 된다는 호러.

▲ 영화 <기생충> 스틸 이미지

기우가 친구로부터 선물로 받은 수석은 자본주의의 전시성을 말한다. 돌은 자연의 일부이므로 제 있던 곳, 혹은 자연이 이동시키는 대로 위치하는 게 순리다. 그러나 인간이 채취해 받침대라는 조형물에 가둬놓는 순간 정체성은 사라지고 인간 사회의 일부가 된다. 자본주의가 만드는 노동자의 노예화다.

박 사장의 10살 아들 다송은 천재인지 별물인지 헷갈린다. 또 인디언 코스프레에 푹 빠져있다. 그런데 여고생 누나 다혜는 기우에게 다송의 천재적 엉뚱함은 연출이라고 귀띔한다. 미국은 마치 세계 평화의 중재자인 듯 행동하고, ‘아메리칸드림’을 외치지만 사실 원주민의 피와 뼈로 제국을 건설했다.

다송이 앞마당에 티피를 세우고 인디언 놀이를 하는 것, 박 사장 가족이 캠핑을 갔다가 폭우를 만나 철수한 것 등은 부자들의 여유 있는 빈자 코스프레다. 마치 검소한 듯, 평범한 듯 보이려는 위장, 즉 미국의 내면을 감춘 겉포장이다. 지하의 비밀 벙커는 그리스신화의 미노타우로스의 미로의 지하다.

기우는 테세우스고 그를 사랑하기에 돕는 다혜는 아리아드네다. 결국 그녀는 아리아드네처럼 기우에게 외면당한다. 봉 감독의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의 소독 연기는 아내가 퇴직금에서 처음 자신을 위해 돈을 써 구매한 애완견 순자를 산책시키던 남편 윤주가 순자를 잃어버리는 도구적 장치로 작용한다.

▲ 영화 <기생충> 스틸 이미지

동시에 그건 교수 임용을 꿈꾸지만 요원하기만 한, 가난한 윤주, 아파트 경리에서 해고되는 고졸 소녀 현남 등 빈자들의 앞날이 오리무중이라는, 안개가 걷히고 나도 하나도 나아질 게 없다는 절망의 메타포다. ‘기생충’의 연기는 거기에 더해 부자들의 경멸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빈자의 가난 냄새 지우개다.

집안 가득 소독 연기를 받아들이면 벌레들을 퇴치하고, 반지하의 케케묵은 곰팡이 냄새는 일시 제거할 수 있겠지만 가난의 냄새는 지워지지 않는다. 부자는 소독을 잘 해서(청결해서)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는 게 아니라 경제적 여유 때문에 그렇다. ‘짜파구리’조차 박 사장의 식탁에선 고급이 되는 것처럼.

단연 돋보이는 캐릭터라면 기정(박소담)이다. 영화 ‘차이나타운’과 드라마 ‘도깨비’로 정상을 찍은 김고은과 비교되면서도 살짝 열세였던 박소담은 ‘기생충’을 계기로 지금까지 저평가됐음을 웅변하고 있다. 그만큼 기정을 잘 소화해낸 것이고, 기정의 존재감이 매우 강렬했으며, 그 결말은 매우 놀랍다.

조여정은 겉으론 지적이고, 럭셔리한 스타일을 자랑하지만 실상은 남편의 돈에 의지하는 유물론적 천박성이 극에 달한 외모 지상주의 연교를 정말 천연덕스럽게 소화해냈다. 기택을 거침없이 ‘야’라고 부르고 폭력도 마다않는 아내 역의 장혜진은 이정은이란 의외의 복병의 맹활약 때문에 살짝 빛바랬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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