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엑스맨: 다크 피닉스>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5일 개봉된 ‘엑스맨: 다크 피닉스’(사이먼 킨버그)는 ‘엑스맨’(브라이언 싱어 감독) 이래 19년을 이어온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하는 종착역이자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매튜 본 감독, 2011)로 시작한 프리퀄 4부작의 마지막이다. 프리퀄, ‘로건’과 ‘데드풀’ 시리즈의 제작자 킨버그의 감독 데뷔작이다.

1975년. 8살의 진이 부모와 승용차를 타고 가던 중 초능력으로 사고를 유발함으로써 부모를 잃자 찰스(제임스 맥어보이)가 영재학교로 데려간다. 1992년. 임무 수행 중이던 우주 탐사선이 태양 플레어의 영향으로 표류하고 대통령의 구조 요청에 찰스는 진(소피 터너) 등 엑스맨들을 급파한다.

레이븐(제니퍼 로렌스), 스콧(타이 쉐리던), 피터(에반 피터스) 등의 활약으로 승무원들을 구출하지만 엔진룸에 남은 선장을 놓친다. 플레어 폭발 시각이 다가와 레이븐은 탈출할 것을 주장하지만 지구의 찰스는 전원 구출을 명령한다. 결국 진이 나서 선장을 구한 뒤 플레어의 폭발에 온몸이 휩싸인다.

모두 진이 산산조각이 났을 거라 절망한 순간 우주 공간을 멀쩡하게 부유하는 그녀를 발견하고 쿠르트가 재빨리 우주선 안으로 이동시킨다. 귀환한 진의 건강 상태를 점검하던 행크(니콜라스 홀트)는 깜짝 놀란다. 아무 이상이 없을 뿐 아니라 기계가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초능력이 무한대로 성장한 것.

▲ 영화 <엑스맨: 다크 피닉스> 스틸 이미지

그러나 진은 갑자기 증폭된 자신의 힘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리곤 아버지의 환청을 듣더니 그가 생존해있다며 찰스를 뿌리치고 학교를 이탈한 뒤 잔인한 살생을 저지른다. 섬에 은둔 중인 에릭(마이클 패스벤더) 일행은 제거하기 위해, 찰스 등은 지키기 위해 진을 찾아 뉴욕으로 가는데.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만큼 시리즈 중 가장 화려하고 강력한 액션에 우주로까지 확장한 스케일이 거대하다. 재생력을 잃고 사라진 울버린이 아쉽지 않을 만큼 충분한 재미와 사고의 깊이를 담보한다. 엑스맨 중 최강인 진의 초능력이 이번엔 타노스를 능가할 정도라는 게 재미와 흥미를 찾는 포인트다.

단, 분위기는 제목처럼 시종일관 어둡다. 친남매와 다름없던 찰스와 레이븐은 사사건건 부딪친다. 레이븐은 동료들에게 영재학교를 떠날 때가 됐음을 알린다. 찰스가 자신의 입신영달과 이기심으로 엑스맨을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TV를 장식하고 대통령의 표창을 받는 건 오롯이 찰스의 몫이다.

하마터면 동료를 잃을 뻔했는데. X가 자비에의 이니셜이라는 것도 분명히 확정한다. 레이븐은 “이건 우리의 삶이 아냐, 찰스의 삶이지”라고 말한다. 행크는 “진이 어릴 때 그녀의 머릿속에 들어가 트라우마를 막는 장벽을 설치했다”는 찰스에게 “아이의 고통과 분노를 틀어막으면 어떡해”라고 항의한다.

▲ 영화 <엑스맨: 다크 피닉스> 스틸 이미지

그도 그럴 것이 진과의 첫 만남에서 “저를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라는 질문에 찰스는 “아니, 넌 망가진 게 아니니까”라고 답했지만 그녀의 뇌에 침투해 조정하는 이중성을 보였으니까. 전작들과의 변별성은 진의 초능력을 이용해 왕국을 재건하려는 외계인 스미스(제시카 차스테인)와 그 부하들.

외계인들은 인류와 뮤턴트를 미개한 종족으로 볼 만큼 극강의 초능력을 갖췄다. 단 진은 예외다. 태양이 선택한 진의 능력은 전투력에 있어서만큼은 전능에 가깝다. 인류는 그녀를 피닉스라 부르지만 어릴 때 부모의 사랑을 못 받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미친 애 취급을 받은 상처로 다크 피닉스가 된다.

강렬한 주제는 자아 정립과 존재의 진화, 그리고 그걸 넘어서는 초월이라는 점에서 그리스신화의 신이 된 유일한 인간 세멜레가 도입됐다. 스미스는 종족 중에서도 가장 월등하다. 남은 목표는 초월뿐. 니체의 위버멘시(초인, 극복인)의 유물론적 해석이다. “우린 자신과의 전쟁 중”이란 대사도 그렇다.

스미스는 “말은 오래전 무지한 자들이 만들었다”라고 말할 정도로 데미갓의 경지에 올랐다. “흙이 물이 되고 물이 다시 생명을 낳는다”는 대사를 포함해 진 등의 인물들의 캐릭터에서 이원론 냄새가 풀풀 풍긴다. 만물의 근원을 물로 본 탈레스에서 나온 그리스의 4원소론에 동양 철학을 살짝 접목한 것.

▲ 영화 <엑스맨: 다크 피닉스> 스틸 이미지

찰스와 에릭은 오래된 친구지만 내내 대결과 화해를 반복해왔다. 표피적으론 찰스가 ‘좋은 나라’고 에릭이 ‘나쁜 나라’지만 깊이 파고들면 그렇지도 않다. 찰스는 세상을 이성적으로 보는 주지주의자이지만 에릭은 각자의 욕망에 대한 의지 때문에 평화는 없다고 믿는 주의주의자로서 적자생존을 택한다.

찰스는 어린 진에게 ‘펜으로 뭘 그릴 수도 누구의 눈을 찌를 수도 있듯, 지능도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라고 가르치지만 정작 뮤턴트들에겐 인류와의 화합만 강요할 뿐 자아 정립과 진화론은 외면한다. 그저 “아끼고 믿어주면 희망은 있다. 모든 이들에게 있어야 하는 건 가족”만 반복할 뿐이다.

인류와 어벤져스의 공존 대 히어로 등록제를 통한 통제로 맞선 ‘시빌워’처럼 시리즈가 인류와 뮤턴트의 공존 대 통제 혹은 전쟁으로 갈등하는 엑스맨 세계관으로 일관한 배경이다. 인트로에 등장하는 ‘우린 누구인가? 진화는 가능한가?’라는 내레이션은 마지막의 장엄한 시퀀스와 수미상관으로 관계한다.

과연 이 세상은 진화하고 있는 것일까? 선과 악은 공존할 수 있을까? 선과 악의 잣대는 무엇일까? 진정한 자유는 무엇이고, 깨달음은 어떻게 얻을까? 내내 지구라는 세계에서의 이종 간의 공존을 되물어온 대장정의 끝이라는 걸 부정하고 싶을 만큼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잘 만든 수작이다. 114분. 12살 이상.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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