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마담 싸이코>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소설가 출신 감독 닐 조던의 대표작은 ‘크라잉 게임’(1992)과 ‘뱀파이어와의 인터뷰’(1994)다. 전혀 다른 듯한 외형의 두 작품은 그러나 결국 자연법이라는 조던의 철학을 뿌리로 한 이복형제다. 오는 26일 개봉되는 ‘마담 싸이코’는 조금 더 인간의 심리 속으로 깊숙하게 침투한 서스펜스 스릴러다.

소도시에서 뉴욕으로 이주, 친구 에리카의 아파트에 얹혀살며 고급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는 20대 프랜시스(클로이 모레츠)는 어느 날 지하철에서 주인을 잃은 핸드백을 발견하고 집으로 가져온다. 에리카는 가방 안의 돈을 쓰자고 하지만 프랜시스는 신분증을 보고 다음날 주인의 집을 찾아간다.

주인은 혼자 살고 있는 프랑스 출신 중장년 여인 그레타(이자벨 위페르). 프랜시스는 1년 전 어머니를 잃고 상실감에 빠져있었고, 새 인생을 사는 아버지와의 관계는 서먹서먹해졌다. 그레타 역시 남편을 잃고 하나뿐인 딸을 파리로 유학 보낸 뒤 빈 둥지 증후군 때문에 외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던 터.

동병상련의 두 사람은 급격하게 가까워진다. 에리카는 뉴욕은 무시무시한 곳이라고 경고를 하지만 프랜시스의 열린 마음은 빠른 속도로 그레타를 받아들여 외로운 그녀를 위해 유기견을 입양하는 데 앞장선다. 프랜시스는 클럽에 놀러 가자는 에리카의 제안을 무시한 채 그레타의 저녁 초대에 응한다.

▲ 영화 <마담 싸이코> 스틸 이미지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저녁 식사를 준비하던 프랜시스는 양초를 찾던 중 벽장 안에 자신이 주웠던 것과 똑같은 핸드백이 여러 개 든 걸 발견하고 경악한다. 그레타는 일부러 지하철에 가방을 흘린 뒤 그걸 가져온 젊은 여자들에게 호의를 베풂으로써 가까워진 뒤 집착하는 사이코패스란 진실을 본 것.

몸이 안 좋다는 핑계로 뛰쳐나온 프랜시스는 그레타의 전화를 피하지만 그녀의 집착과 스토킹은 날로 심해지고 급기야는 극강의 공포심을 조장하는데. 많은 관객들은 ‘크라잉 게임’은 액션물인 줄,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는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1992) 수준의 웰메이드 흡혈귀 장르인 줄 착각했다.

이 영화는 두 작품에 비하면 비교적 쉬운 편이다. 스릴러와 호러의 경계 즈음에 위치한 서스펜스 심리극이다. 원제가 ‘Greta’다. 관객들은 ‘킥 애스’ 시리즈, ‘캐리’, ‘다크 섀도우’ 등에 출연한 친한국적 슈퍼스타 모레츠가 친숙하겠지만 사실은 그레타의 복잡하게 뒤엉킨 내면세계에 집중한 심리 스릴러다.

조던의 작품에서 동성애는 단골 메뉴다. 그걸 옹호하자는 의도가 아니라 자연법과 인과론을 믿기 때문이다. 동성애자는 의지로써 억지로 그 성향을 만드는 게 아니라 본성일 따름이다. 조던의 ‘크라잉 게임’을 통한 주장은 아이들의 뮌히하우젠 증후군은 본능이고, 아일랜드의 독립 역시 자연법이라는 것.

▲ 영화 <마담 싸이코> 스틸 이미지

헝가리 출신의 천재 피아니스트 프란츠 리스트의 ‘사랑의 꿈’이 메인 OST로 전진 배치됐다. 그레타는 헝가리 출신 미국 이민자로 간호사로 근무하다 특정 약물 남용으로 해고됐다. 그의 남편이 크리스토프인지, 니콜라가 딸인지는 불분명하다. 단 니콜라가 흑인 알렉사와 동성 연인 관계였던 건 맞다.

그레타의 젊은 여성에 대한 집착이 동성애인지, 단지 정에의 굶주림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하나 여기서 섹슈얼한 코드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이미 조던은 ‘크라잉 게임’과 ‘뱀파이어~’에서 그런 건 천박한 쓰레기들이나 집착, 집중하는 것이란 메시지를 충분히 준 바 있지 않은가? 그레타는 그냥 외롭다.

영화 ‘피아노’를 통해 피아노 솜씨를 갈고닦은 위페르는 능숙하게 ‘사랑의 꿈’을 연주한다. 그레타는 프랜시스에게 피아노 교습까지 한다. 그레타는 그리 부유하거나 혈통을 알아주는 집안 출신은 아닌 듯하다. 교양이 깊어 보이지도 않는다. 그런 이민자가 뉴욕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가식적이어야 한다.

금요일마다 교회에 나가고, 입양한 유기견과 산책을 하며, 지적인 이미지를 지키려 애쓰는 그레타는 뉴욕의 이면이자 미국의 근원이다. 프로테스탄트들이 주축이 돼 개척한 그 땅에는 유럽의 범죄자들도 숱하게 유입되지 않았는가? “맨해튼에선 가방을 주우면 폭탄 처리반을 부르지”라는 에리카의 대사!

▲ 영화 <마담 싸이코> 스틸 이미지

‘일정 기간 안에 입양되지 못한 유기견은 재운다’며 안락사를 미화하는 건 내정간섭을 세계 평화와 국제 질서 유지의 노력이라고 핑계를 대는 미국을 비꼬는 것. 그레타는 프랜시스의 마음을 돌리려 흰 백합을 보낸다. 순결의 상징이자 영국과 미국의 장례식용 꽃이라는 이중적 의미도 같은 맥락.

어쩌면 그레타와 프랜시스는 ‘다른 닮은꼴’일 수도 있다. 알렉사는 니콜라가 ‘상자’에 갇혀 살았다고 한다. 그레타와 프랜시스의 공간은 조금 넓을 뿐 대동소이하다. 프랜시스가 싸구려 영화는 꼭 엄마랑 본 것도 동의반복. 영화 ‘Let me in’의 주인공이었던 모레츠에게 ‘Let me out’이란 대사를 준 센스!

“벤자민 프랭클린이 ‘인생에 확실한 건 세금과 죽음뿐’이라고 말했다”는 대사는 미국 우의의 절정이다. 미국의 주인은 프로테스탄트도, 현지에서 태어난 신세대도 아닌 자본주의라는 뜻. 그럼에도 “어떻게든(one way or another) 살아‘진다’”라는 게 인생이다. “사랑이 남긴 꿈과 추억이 있기 때문”에.

프랜시스의 의상이 에리카, 그레타와 각각 톤을 맞추는 건 심리상태의 변화다. 모레츠는 전반에 성숙한 미모를 뽐낸다면 후반엔 아역 시절의 매력을 소환한다. 위페르는 그야말로 사이코패스 캐릭터를 제대로 소화하며 왜 대배우인지 입증한다. 조던의 페르소나 스티븐 레아도 있다. 98분. 15살 이상.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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