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나랏말싸미>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비화를 드라마틱하게 꾸민 영화 ‘나랏말싸미’(조철현 감독)가 ‘알라딘’,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의 위세를 물리치고 개봉일 박스 오피스 1위에 올랐다. 하지만 개봉 전 상영금지가처분소송에 맞닥뜨리더니 개봉 후엔 역사 왜곡, ‘국뽕’ 등의 논란에 휩싸이는 몸살을 앓고 있다.

일반적으로 한글은 세종대왕이 집현전의 유신들과 함께 창제한 걸로 알려져 있지만 확실하진 않다. 그래서 세종이 혼자 만들었다거나, 은밀한 조력자가 있다는 등 여러 가설들이 전해져 내려온다. 조 감독은 그중에서 신미라는 실존 승려를 선택해 당시 정치 상황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완성했다.

역사 왜곡 지적은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영화라고 해도 민족적 자존감이나 국가적 명예를 훼손하거나, 지나친 국가주의의 쇼비니즘을 추구한다면 코웃음밖에 못 산다. 조선왕조실록을 무시하고 가설을 택한 건 편파적이지만 행복 균등이라는 민주주의로써 영화적으로 포장한 것까지 잘못일까?

실록은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담지만 정치적 상황 상 100퍼센트 진실이라고 단정 짓기도 쉽지 않다. 환경이 현재와 확연히 달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미의 기능은 과하다는 비난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의지의 승리’가 영화적 완성도와 나치 선전의 정체성 사이에 놓인 것과 유사하다.

▲ 영화 <나랏말싸미> 스틸 이미지

세종이 천재였고, 백성을 아끼는 지도자였다는 주장에 반대할 대한민국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 영화가 불편한 이유는 실록과 달리 세종의 명령으로 신미가 혼자서 한글을 완성했다는 플롯에 있다. 문자는 다수의 사용과 그런 긴 세월 위에 천재적 창의력이 더해져 완성된다. 비난의 근거다.

그러니 신미 혼자 불과 수년 만에 한글을 완성했다는 데 반발의 여지는 존재한다. 또한 그에겐 한글 창제에 혼신의 노력을 쏟아부을 명분도, 실리도 거의 없었다. 조선은 숭유억불이 개국의 테제다. 신미의 아버지는 역적으로 몰려 사형 당했다. 신미는 스스로 개라고 할 정도로 피해 의식이 강하다.

드라마가 늘어지는 경향이 짙다면 영화는 120분 남짓한 시간 안에 할 얘기를 다 쏟아 놓으려다 보니 놓치는 게 있기 마련이다. 역사 왜곡 지적은 청소년과 외국인을 감안해 겸허하게 수용할 필요는 있지만 시종일관 견지하는 기득권에 대한 비판과 국민 행복 추구의 이상은 숭고하게 봐줄 법하다.

‘국뽕’은 맹목적, 광신적, 호전적, 배타적 애국주의를 뜻하는 쇼비니즘이란 용어를 모르거나 알기 귀찮은 자들이 만든 비속어다. 만약 이 영화가 쇼비니즘이라면 대통령이 테러 조직과 외계인을 물리치는 등 오직 미국인이 지구를 지키는 할리우드 영화는 다 ‘국뽕’이고 ‘인천상륙작전’은 그 절정이다.

▲ 영화 <나랏말싸미> 스틸 이미지

영화의 탄착점은 흥행(배급사)과 환각(배우, 감독 및 스태프)이다. 제작에 참여한 모든 이들은 관객이 영화의 배경과 스토리가 픽션이라는 걸 눈치채지 못한 채 러닝 타임 내내 몰입하게 만드는 데 힘을 쏟는다. 그래서 SF, 판타지, 애니메이션 등 픽션이 과한 장르에 대한 호불호가 심하게 갈린다.

이 영화는 세종, 신미, 소헌왕후, 한글이란 역사적 사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드라마이기에 역사 왜곡이란 태생적 함정을 피하긴 힘들다. 그래서 그런 게 불편한 관객의 의견은 소중하다. 다만 그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관객이 몰리는 이유와 강행군한 감독이 알리고픈 메시지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세계가 인정한 한글의 우수성이다. 다른 문자들에 비해 늦게 탄생했지만 점-선-면을 활용한 외양적 간결함과 심미적 가치가 압도적이다. 뭣보다 훌륭한 건 표음문자로서 목의 울림과 입의 모양을 반영했기에 익히고 사용하기 쉽다는 점이다. 감독은 그런 실용적인 면을 부각하는 데 집중했다.

둘째, 그 실용주의와 민주주의의 결합이다. 이씨조선은 절대군주제였지만 왕이 절대적이진 않았다. 외려 당파적 우위를 점한 사대부들이 뒤에서 권력을 조정하며 실제 기득권을 이어갔다고 보는 게 사실적이다. 감독은 세종이 권력과 부와 편의가 소수 세력에 편중된 걸 못마땅하게 여겼다고 그린다.

▲ 영화 <나랏말싸미> 스틸 이미지

세종의 불교 및 신미와의 밀월관계에 대한 지적 역시 과한 면이 있다. 세종이 죽기 전 신미에게 ‘祐國利世 慧覺尊者: 나라를 위하고, 세상을 이롭게 하며, 지혜를 깨우쳐 반열에 오른 자’란 법호를 내렸고, 직접 쓴 ‘훈민정음’의 서문이 108자인 건 신미란 존재와 그를 향한 세종의 존경심의 증거다.

그가 혼자 한글을 창제했다는 설정은 무리지만 산스크리트어, 티벳어, 파스파 문자 등에 능통했다는 사실은 그의 기능의 상상력에 대한 변명의 여지는 있다. 세종이 불교에 대한 기득권의 배타를 뚫고 모든 사람의 108번뇌를 화두로 던져 붓다의 가르침을 설파하고자 했다는 상상력도 기발하다.

세종과 신미와의 각별한 관계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친불정책 등의 왜곡 논란은 과한 듯하다. 대한제국 시절 미국과 일본에 우리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들이 대한민국에서마저 기득권을 잡고 심지어 대통령이 한국전쟁 중 다리를 끊고 도망간 것조차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는 게 역사 왜곡이다.

민중이 그 파렴치한 독재자를 몰아냈더니 탱크로 독재정권을 재수립한 박정희를 영웅으로 떠받드는 게 역사 왜곡이다. 세종이 사대부들의 반대를 무릅쓴 채 은밀하고 힘들게 한글을 만든 뒤 박해를 딛고 퍼뜨리려 노력했다는 팩트를 외면하고 신미만 붙잡고 늘어지는 것보다 선행돼야 할 숙제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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