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산에서 만초천(蔓草川) 따라 효창원(孝昌園)까지 시간여행 떠나볼까요 [최철호 칼럼]

최철호 성곽길 역사문화연구소 소장l승인2019.10.02l수정2019.10.02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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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범 김구선생 묘

[미디어파인 칼럼=최철호의 한양도성 옛길] 인왕산 정상의 물은 어디로 흘러갈까? 가을비를 맞으며 수성동계곡에서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간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추분이 지나니 낮이 짧아진다. 아침 저녁으로 제법 쌀쌀한 바람도 분다. 계곡을 향하는 길목에는 꽃무릇이 활짝 피어 절기를 실감케 한다. 추분이 지나니 추어지는 날씨밖에 없다. 찬 이슬이 내리면 단풍이 들고 한로 지나 은행잎이 노랗게 되면 서리가 내린다. 자연의 섭리다. 인왕산도 가을을 준비한다. 물줄기를 거슬러 오르니 순환도로다. 횡단보도를 건너 또다시 계곡를 만난다. 가파른 계단 위에 숨소리가 목구멍까지 찬다. 다행히 산길 위에 데크가 조성되어 한결 수월하다. 오르고 또 오르니 바위가 나온다. 잠시 땀을 식히고 하늘을 본다. 비 먹은 구름이 바람결에 사라지고, 도성 안 경복궁과 창덕궁 그리고 종묘와 사직단까지 한눈에 펼쳐져 있다. 이곳이 과연 어디인가? 그야말로 도성 안 별유천지다.

인왕산에 석굴암이 있다

▲ 백범 김구선생 묘_탑1

발길을 재촉하여 숲과 숲을 지나니 바위 속 암자가 보인다. 큰 바위와 바위 사이에 부처가 있다. 석굴암(石窟庵)이다. 머릿속 석굴암은 경주 토함산에 있었는데, 서울 한복판 인왕산 정상 가는 길 위에 석굴암이 있다. 잠시 들어가 밝은 미소를 띤 부처님께 절을 한다. 진짜 석굴암이다. 석굴암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을 한 모금 마신다. 물맛이 청량하고 깔끔하다. 난생처음 맛보는 맛이다. 바위틈에서, 나무숲에서 내려 온 천연 약수다. 화강암 바위틈에서 솔잎을 타고 내려 온 빗물이 흘러 계곡물이 되었다. 가재와 쉬리가 사는 계곡물은 옥류동천이 되고, 도성 안 청계천으로 흘러간다.

인왕상 정상에 오른다. 인왕산 세 봉우리 중 곡성과 정상 사이엔 닭벼슬처럼 성곽이 놓여있다. 도성 안으로 흐르는 계곡물은 수성동계곡에 모여 옥구슬 구르듯 맑은 물소리만 들린다. 도성 밖으로 흐르는 물은 어디로 갔을까? 해 저무는 안산(鞍山)이 붉게 물든다. 안산과 인왕산 곡성 사이가 무악재다. 무악재는 작고 좁은 고갯길이었다. 의주로 가는 중요한 길목이다. 이름도 다양하다. 모래재, 사현(沙峴)이라고 불리었다. 또 말안장처럼 편안한 산을 넘는 고개라 하여 길마재, 안현(鞍峴)이라고도 하였다. 어머니 산으로 무악(毋岳)에서 나온 말이 무악재다. 무악재는 의주로 가는 1번 국도이다. 서울 시내와 사대문 밖 한강을 너머 수원까지 연결하는 주요한 고개이자 도로다.

무악재에서 발원한 물이 만초천이다

▲ 백범 김구선생 묘_가는 길1

인왕산 빗물이 도성 밖으로 가는 물길, 바로 이곳이 만초천의 시작점이다. 무악재에서 발원한 만초천은 독립문을 지나 돈의문 사거리에서 서부역 청파로로 굽이굽이 흘렀다. 만초천은 원효로 따라 한강으로 흘러가며 큰 냇가 주변에 넝쿨이 무성한 풀로 이루어져 있었다. 청파동에는 배다리터도 있다. 한강으로 내려가며 호리병처럼 넓게 용산일대를 흘렀다. 무악재에서 내려오는 물줄기는 무악천이라 불리었다. 인왕산에서 한강까지 맑고 깨끗한 물이 내가 되어 7.7km 길이니 엄청길다. 또 다른 발원지인 목멱산에서 도성 밖으로 내려오는 물은 미군기지가 있는 둔지산을 따라 삼각지 인근에서 모여 한강으로 흘렀다. 만초천은 칡나무가 많아 갈월천,넝쿨이 많은 풀이 있어 덩쿨내라고도 불리며 용산팔경(龍山八景) 중 하나였다. 복개되어 사라진 만초천을 다시 한번 용산에서 보고 싶다.

용산의 시작은 어디일까

▲ 효창원 의열사 내 독립의사 7인위1

만초천에 청파동 주교가 있던 배다리터에서 만리재를 바라보면 야트막한 산이 보인다. 빌딩과 빌딩 사이에 가까스로 숲이 보인다. 이곳이 산이다. 인왕산과 안산 기슭에서 만리재까지 이어지는 산자락이다. 한강을 향해 용머리가 이어지는 형국이다. 용이 살아 한강으로 들어가니 이곳이 용문동이고,여기가 바로 용산(龍山)이다. 이 양지바른 산마루에 능 같은 묘를 썼다. 정조대왕은 어린 왕자를 22개월 만에 세자에 책봉한 후 개혁의 고삐를 움켜주었을 것이다. 수원화성을 짓고 새 도읍지를 설계한 정조대왕은 아버지 사도세자를 현륭원에 묻었듯, 맏아들 문효세자를 효창원에 묻었다. 슬픈 역사가 바로 용산에서 시작한다.

역사의 공간 효창원을 다시 본다

▲ 효창원 의열사 뒷뜰1

정조대왕은 창덕궁에서 도성 밖 가장 가까운 곳에 묘를 조성하였다. 수원화성을 가는 길목, 한강에서 배다리를 건너기 전 용산에 문효세자를 묻었다. 만초천을 건너는 청파동 배다리를 넘으면 만리재 가기 전 효창원이다. 이곳에 문효세자의 생모인 의빈 성씨도 같은 해 같은 곳에 묻었다. 슬픈 정조의 이야기다. 맏아들 세자와 후궁을 효창원에 묻었다. 아니 정조의 가슴에 묻었을 것이다. 꿈인가, 참인가 정조의 이야기가 신도비에 새겨져 있다. 효창원은 그런 곳이다. 역사가 깊이 담겨진 곳이다. 왕가의 무덤이자 도성 밖 가장 가까운 추모공간이 효창원이다.

▲ 효창원 의열사_의열문

하지만 효창원은 1894년 청일전쟁에 일본군의 야영지이자 숙영지가 된다. 강화도를 통해 서울로 향하는 유일한 뱃길이다. 배를 타고 와 정박하기 가장 좋은 나루터가 마포진,노량진이었다. 삼국시대 이후 수운과 군사의 요충지이었던 곳이 용산 한강변이다. 서울 도성 안으로 들어가는 수운의 최적지이다. 일본군은 효창원을 병참기지로 만들고 효창원을 구용산고지(舊龍山高地)로 하여 목멱산에서 둔지산까지 군영지로 바꾸어 버렸다. 일제강점기에 효창원 왕가의 묘를 고양 서삼릉으로 이장한 후 순환도로와 공용화장실을 만들고 공원화하였다. 사직단을 사직공원으로,삼청단을 삼청공원으로 만들었듯이 효창원도 어느새 효창공원이 되었다.

독립운동가의 묘역,효창원

▲ 효창원내 삼의사묘_윤봉길_이봉창_백정기의사묘

해방 후 이곳은 또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다. 백범 김구는 독립운동가의 묘역으로 조성하기 위해 일본에 있던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의 유해를 송환하여 이곳에 모셨다. 삼의사 묘를 만들었다. 몸과 맘을 바친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되찾는 작업을 하였다. 안중근 의사의 가묘까지 만들어 110여 년 전 그의 정신을 이곳에 함께 세웠다. 기쁜 역사가 다시 용산에서 출발하였다. 이곳이 바로 효창원이다. 또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요인들의 유해도 함께 이장하여 묘역을 조성하였다. 이동녕, 조성환, 차리석 선생의 묘소도 양지바른 효창원 입구 동쪽 언덕에 마련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1949년 6월 26일 돈의문 밖 경교장 2층에서 김구 선생이 암살 당한다. 누가 쏘았을까? 모든 국민이 슬퍼한다. 국민장을 마친 후 독립운동가 묻힌 효창원 북쪽 언덕에 김구선생도 함께 잠든다. 가슴 아픈 현시이다. 이곳은 독립운동가의 묘역이 있는 국립묘역이다. 효창공원이 아니라 효창원이다. 독립운동가 1만 5천명을 대표하는 7인를 기리는 의열사도 만날 수 있는 추모의 공간이다.

▲ 효창원내 안중근의사가묘

이곳은 인왕산에서 목멱산을 돌아 한강을 가기전 기억의 공간 효창원이다. 인왕산 무악재에서 맑고 약수같은 물이 만초천이 되어 한강에 모였다. 목멱산에서 둔지산까지 오염되지 않은 청정한 넝쿨내가 흐르는 역사적 공간이다. 빌딩과 빌딩으로 가려진 용산, 기차소리와 차소리에 감추어진 묘역이 있는 여기는 바로 효창원이다. 100여 년 전 독립운동 만세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효창원 묘역에서 독립운동가를 만나 100년 후 미래를 설계하는 시간여행 함께 떠나볼까요?

여기는 미래의 도시,
꿈과 희망을 그리는 용산,
역사와 문화를 설계하는 효창원이다.

▲ 효창원내 삼의사묘와 저자 최철호

[최철호 소장]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
‘한양도성에 얽힌 인문학’ 강연 전문가
한국생산성본부 지도교수
지리산관광아카데미 지도교수
남서울예술실용전문학교 외래교수

저서 :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최철호 성곽길 역사문화연구소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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