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모의 테마토크] 유재석이 전 소속사로부터 받지 못한 6억 원의 출연료 청구소송에서 패소해 향후 파장을 예고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3부는 3일 유재석과 김용만이 전 소속사 스톰이엔에프(이하 스톰)의 채권자들인 SKM인베스트먼트 등을 상대로 낸 공탁금출급청구권 확인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 것.

▲ 사진=sbs 동상이몽 화면캡처

유재석은 지상파 방송 3사가 법원에 공탁한 출연료 10억여 원 중 약 6억 원의 권리를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번 소송의 주안점은 하도급거래법과 전속계약 내용 중 어떤 게 우선하는가에 있었다. 유재석은 “연예인의 방송출연계약은 하도급계약의 일종으로 방송사가 발주자라면 소속사는 원사업자고 연예인은 수급사업자이기에 방송사는 원고들에게 출연료를 직접 줄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연예활동으로 인한 모든 수익금은 원칙적으로 소속사가 받은 뒤 사후 정산한다’는 전속계약서의 내용을 근거로 유재석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더불어 “하도급거래에 해당하지 않아 돈을 직접 지급할 의무도 없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물론 유재석의 사례는 다소 이례적이긴 하다. 한때 코스닥시장에 상장됐던 회사가 파산하면서 소속 연예인에게 이렇게 큰 경제적 피해를 끼친 전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재의 상황으로 봤을 때 하루아침에 문을 닫을 정도의 연예기획사라면 아주 작고, 그래서 유재석만큼 출연료를 많이 받는 연예인이 있을 수 없기에 비현실적이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연예인들이 불안에 떨고, 제작사나 방송사 그리고 배급사들도 조심하자는 분위기다. 현재의 연예기획사와 연예인 사이의 계약내용에 따르면 언제 자신들이 소송의 피고가 될지 모르는 여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연예인은 여러 측면에서 기획사가 필요하다. 개인사업자로 등록하고 활동해도 되지만 자신이 ‘사장’ 입장에서 해야 할 일들이 부지기수이기 때문에 정말 ‘짠물’이 아니라면 그건 꺼리기 마련. 그래서 법인사업자인 기획사에 적을 두고 모든 세무 회계 행정 등은 물론 사소한 자신의 개인사까지 처리하도록 맡긴다. 하다못해 주민등록등본 하나 떼는 것마저도 로드매니저에게 시키는 게 현실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모든 수입은 일단 회사의 법인통장으로 입금한 뒤 세금 등의 문제를 정리하고 나서 약속에 따라 회사와 연예인이 수익을 나누는 게 합리적이다. 제작사 방송사 배급사 등도 연예인의 대리인인 기획사와 모든 계약을 맺기 때문에 법에 근거해 출연료를 회사의 법인통장으로 입금하는 게 당연하다. 연예인 입장에서도 그게 편하다. 만약 구조가 자신의 통장으로 입금되도록 돼있다면 자신이 계산해서 다시 회사 쪽 지분에 따른 돈을 입금해줘야 하니 번거롭다. 연예인의 생리상 그런 걸 일일이 따져서 하는 게 매우 불편하거나 아예 할 수 없다.

▲ 사진=mbc 무한도전 방송화면 캡처

스톰과 연관된 연예인의 출연료 소송사건은 연예계 최초이고, 이제 안정된 구조를 갖추고 어엿한 ‘기업’이 된 코스닥 상장 연예기획사가 스톰 같은 풍비박산을 맞을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아예 없다고 할 수도 없으므로 분명 이 문제에 대해서는 진지한 고민을 통한 합리적인 개선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유재석은 2005년 스톰과 전속계약을 체결한 뒤 2010년을 전후한 한해 6억 원 정도의 출연료 수익을 올렸다. 하지만 그해 5월 스톰에 80억 원 상당의 채권 가압류가 발생하면서 그는 출연료를 받을 수 없게 됐다. 그러자 그는 10월 전속계약을 해지하고 각 방송사에 밀린 출연료를 자신에게 직접 줄 것을 청구했다.

그런데 여기서 묘한 일이 발생한다. 스톰 소속 다른 연예인 및 채권자들이 유재석의 출연료를 포함한 스톰의 재산에 대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고 나선 것. 그러자 방송사는 누구 손을 들어줄지 결정할 수 없게 됐고 그래서 돈을 법원에 통째로 맡겼다. 유재석도 역으로 그런 소송을 한 적이 있다. 그와 다른 연예인은 지난해 5월 스톰 소속이었던 강호동, 가수 윤종신, 탤런트 최화정 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승소한 바 있다. 강호동 등 역시 스톰으로부터 받을 돈이 있었지만 소송을 낸 유재석에 맞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은 채 순순히(?) 패소했다. 한 기획사의 파산이 평소 친했던 ‘동지’들을-동병상련의 공감대 안에 들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돈 때문에 서로에게 칼을 겨누도록 만든 셈이다.

스톰은 사업자고, 채권자들인 SKM인베스트먼트 등은 그들이 가진 가능성에 돈을 댄 투자사다. 그리고 그런 구조가 가능하게 한 ‘원인제공자’는 바로 스톰에 소속된 유명 연예인이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논란은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수익발생의 직접적 원인은 연예인의 노동에 있었다는 것 하나만큼은 확실하다. 회사가 투자를 받을 수 있었고, 코스닥시장에 상장할 수 있었던 배경이 유명 연예인을 대거 보유하고 있었다는 점이고, 그 대가로 연예인들이 거액의 계약금을 받거나 혹은 스톡옵션을 받았겠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노동의 대가는 지급되는 게 사리에 맞다.

다만 그럴 경우 다른 피해자가 구제를 못 받는 문제가 생기고, 더 나아가 현재 연예계의 구조가 하도급거래법을 적용하기에 여러 가지 난제가 많기 때문에 재판부는 이번 판결이 가장 올바르다고 판단한 듯하다.

▲ 사진=jtbc 슈가맨을 찾아서 방송화면 캡처

유재석 같은 손해를 원천봉쇄할 수 있는 ‘1인 기획사’라는 게 있다. 선진국처럼 아예 스타 자신이 주축이 돼 회사를 차리기도 한다. 유재석의 사례로 아마도 1인 기획사를 차리거나 자신이 앞장서 직접 회사를 설립하는 케이스가 늘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그 정도 규모의 몸값이 돼야 당연히 현실화되겠지만, 이번 판결로 유재석이 잃은 돈은 6억 원, 김용만의 그것은 9700만 원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유재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꾸준히 기부를 해왔지만 김용만은 불법도박으로 한동안 쉬었다. 공교롭게도 스톰을 떠난 이후 그들이 둥지를 튼 곳이 같은 기획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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