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제공: ㈜프레인글로벌, CGV아트하우스
사진 제공: ㈜프레인글로벌, CGV아트하우스

[미디어파인 칼럼=정분임 작가의 아무튼 영화&글쟁이 엿보기] 트라이애슬론 최숙현 선수는 훈련 생활 중에 일어난 폭력과 가혹 행위에 저항하고 이겨내 보려 했으나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말았다. (2020년 6월) 최 선수가 공공기관과 책임 단체에 여러 차례 신고했으나 가해자에 대한 조사나 처벌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를 폭행한 조재범 전 코치를 엄벌해 달라는 국민청원에 청와대는 “체육 단체의 자정 기능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성적 지상주의, 엘리트 체육 육성방식, 폐쇄적이고 수직적인 조직문화 등이 체육계의 고질적 병폐가 반복되는 원인”임을 밝혔다(2019년 2월 13일 한국일보).

심 선수가 소치올림픽과 평창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순간의 환희와 기쁨을 우리에게 주었지만, 충격도 주었다. 그 숱한 폭행을 참으며 운동을 해왔던 그 환난의 시간들, 불안과 공포의 훈련 과정을 딛고 얼음 트랙을 돌아야 했던 한 소녀의 상처들, 최 선수도 마찬가지다. 그 선수들의 상처 때문에 우리도 울었다. 특히 자식을 둔 부모의 입장에서 더구나 딸을 가진 엄마로서는 더더욱 괴로웠고 아팠다. 심 선수와 최 선수가 1등을 향해 꿈을 키우고 훈련 받아온 과정은 영화 <4등>에 등장하는 준호가 겪은 모습과 유사했을 것 같다. 감독이 선수를 학대한 것처럼 준호의 수영 코치도 어린 제자에게 욕을 하고 때렸다.

초등학생 준호는 수영대회에서 매번 4등을 한다. 준호 엄마는 수영으로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이 인생의 목표이자 희망이다. 아들의 수영대회 1등을 위해서라면 교회에 가고 불당에도 간다. 준호 엄마는 전 국가대표였던 김광수 코치를 소개받는다. 코치 때문에 준호가 상처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우려에도 그녀는 메달로 상처를 가릴 수 있다고 장담한다.

사진 제공: ㈜프레인글로벌, CGV아트하우스
사진 제공: ㈜프레인글로벌, CGV아트하우스

“어머님, 전적으로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 모든 걸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인기 드라마에서 나온 대사처럼 1등만 한다면 아들이 코치에게 얻어맞아도, 피멍이 든 아들의 허리와 등짝을 보고도, 준호 엄마는 모든 것을 감수하려 한다.

“준호가 맞는 것보다 4등 하는 게 더 무서워.”

엄마는 아들이 1등만 한다면 몸에 난 상처쯤은 감당할 수 있었다. 서울대 의대 합격이라면 수십억원을 들여서라도 모든 것을 감수하겠다던 상류층 엄마도,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서라면 아들이 입은 폭력에도 눈감는 중산층 준호 엄마도 성적 지상주의에 빠져 있었다.

영화 <4등>이 나온 시기가 2016년이다. 지금도 영화 속의 현실과 달라진 점은 별로 없다. 드라마에 나온 코디 선생, 영화의 수영 코치, 또 현실에서의 코치나 감독 모두가 목표를 위해서라면 부정을 일삼았고, 폭력은 과정일 뿐이었다. 우리도 결백하지 못하다. 피해자가 쌓아 올린 영예만 보았을 뿐, 가해자들의 행위를 방관하거나 은닉했으니까.

아이가 거짓된 언행을 일삼았을 때, 누군가를 고의적으로 협박하고 위협했을 때, 아이의 행실이 불량할 때 훈계해야 한다. 시험 문제를 틀렸다고, 수영 기록이 나아지지 않았다고, 집중하지 않았다고 매를 들어서는 안 된다. 성적 때문에 아이를 때린다면 아이의 영혼은 내상을 입고 결국 파괴될지 모른다.

수영 코치는 준호를 때리고 나면 먹을 것을 사주거나 마사지를 해주며 준호를 타이른다.

“하기 싫고 도망가고 싶을 때 잡아주고 때려주는 선생이 진짜다. 옛날에 시합 끝나고 나면 선배들은 매 맞고 기합 받을 때 나는 사무실에서 떡볶이 순대를 먹고 있었다. 그때 나도 때려주고 기록 더 내라고 강압했더라면 성공했을텐데….”

폭력 이후에 위로하는 일종의 그루밍(다듬다, 길들이다)을 하는 수영 코치에게 준호도 길들여진다. 형의 물안경을 건드린 동생(기호)을 준호가 때린다. 수영 코치가 했던 그대로의 말투로 준호는 동생에게 “몇 대 맞을래?” 한다. 이렇게 그루밍 폭력은 대물림된다.

수영 코치가 예전 잘 나가던 시절 은메달을 받고 떡볶이를 먹을 때, 기록을 못 낸 선배들도 기합이나 체벌을 받지 않고 함께 먹으며 함께 격려받았더라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기록을 잘 내든 못 내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다음 대회를 기다리는 마음이 조금은 설레지 않았을까? 욕심을 품은, 독하디독한 눈을 가지라는 폭언과 폭행 대신에 수영 코치가 느껴보았던 그 설렘을 준호에게 전해주지 않았을까? 매 맞는 선배들을 보지 않았더라면 수영 코치는 초등학생에 불과한 준호에게 매를 들지 않았을 것이다. 잘하는 놈 더 잘하게 하려면 어쩔 수 없이 매를 드는 게 아니라 함께해서 좋았고 함께해서 편안했다. 시너지 효과로 인해 기록이 더 잘 나왔다며 고백하지 않았을까?

지난 카타르 축구 아시안컵 4강을 앞두고 국가대표 선·후배 간의 불화와 갈등이 있었다. 만약 4강에서 이기고 결승까지 가서 우승을 했더라면 그 사건이 그냥 묻혔을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가 성적 지상주의에 결과만 좋다면 그 과정이야 덮어두는 분위기니까. 밤을 새워 국민들은 응원하고 기대했는데 경기 결과 뿐만 아니라 유효슈팅 하나 제대로 내지 못 하는 선수들을 지켜보면서 많은 비판이 쏟아졌다. 결국 한 선수가 사과하고 선배들이 용서하며 사건은 봉합되었지만 훈련 과정 자체를 즐기고 화합하며 서로를 챙기는 조직이 된다면 결과도 달라지리라 믿는다.

사진 제공: ㈜프레인글로벌, CGV아트하우스
사진 제공: ㈜프레인글로벌, CGV아트하우스

준호가 수영대회에서 1등을 해낸다. 엄마의 극성스런 응원과 지원 없이도 준호 혼자 버스를 타고 대회에 가서 이뤄낸 결실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준호가 락커룸으로 들어가기 전 청소도구들이 클로즈업된다. 그 도구들은 폭력의 도구였었다. 이제 준호가 하기에 달렸다. 폭력을 청산할 청소도구이거나 새 기록을 만들기 위해 악용되는 채찍이 되거나.

빛을 따라 자유롭게 헤엄치던 준호는 다시 4등을 하더라도 여유롭고 배가 부를 것이다. 그러나 1등을 해본 기분을 고집하며 앞으로만 나아가는 준호가 된다면 언제든지 허기지고 불안할지 모른다. 연습하고 또 연습해도 기록이 나오지 않으면 실망하다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길을 찾을지 모른다. 그 길이 어둠의 골짜기인 줄도 모르고 나아가기만 할 테니까.

우리의 갈망과 포만도는 어떠한가?

다음 올림픽에서 우리 쇼트트랙 선수들이 노메달로 돌아온다 해도 잘했다고 격려할 수 있을까? 이제 안 맞고 하니 정신을 못 차린다고, 폭력을 되려 부추기는 사람은 없을까? 1등을 예찬하는 태도와 SKY대를 숭상하는 마음도 버릴 수 있을까? 성적 지상주의, 엘리트주의, 폐쇄적이고 수직적인 조직문화 등 고질적 병폐를 청산할 수 있을까?

아직도 배가 고픈가?
이제 그만 욕심내고 ‘배부르다’ 만족하고 자족해보자. 제발!

정분임 작가
정분임 작가

[정분임 작가]
전) 극동방송 작가
시립강북노인복지관 문학 및 글쓰기 강사
저서 : 영화로 보는 신앙, 꿈꾸는 글쓰기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