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제공:메가박스㈜플러스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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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 칼럼=정분임 작가의 아무튼 영화&글쟁이 엿보기]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뿐이네….”

20세기에 이 노래를 부른 청춘들은 삼등 완행열차를 타고 동해로 가자 했다. 바다는 청춘들의 시름과 역경을 위로받는 곳이자 피난처였다. 그곳에서 고래 한 마리를 잡는 꿈. 그렇게 청춘들은 꿈을 꾸었다.

현재 전공의 사표와 이탈로 의료계는 멘붕 상태다. 몸과 마음과 시간을 다 바쳐 대학병원에서 환자를 돌보았던 그 젊은 전공의들은 사표를 내고 지금 어디에 있을까? 취업 준비로 청춘을 갈아 애쓰는 청년들에게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은 어쩌면 떼를 쓰는 어린애들의 치기로 비쳐지지 않을까? 아니면 백화점에서 명품을 고르는 사치 행위로 보이지는 않을까? 오늘날 청춘들은 진로와 취업 때문에 제대로 노래하고 춤을 추려나. 그들은 무엇을 위해 노래하고 춤을 출까? 청춘들은 돌아갈 고향이나 가보고 싶은 바다 같은 것이 있을까? 특히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청춘들은 어디로 향할까?

임용고시에 떨어진 혜원(김태리)은 고향으로 간다. 그곳은 쌀과 사과가 유명한 시골이다. 겨울에는 멧돼지가 출몰하며, 고라니 울음소리가 무서운 동네다. 혜원은 배추 밑동을 잘라다 배춧국을 끓여먹고 배추전을 구워 맛나게 먹는다. 장작을 패고 막걸리를 담근다. 고사리를 캐어서 말린다. 혜원은 토마토가 비에 약한 것을 알면서도 야생에서 키운다. 햇볕을 받아 잘 자라던 토마토는 비를 맞고 시들어 버렸다. 그러나 비를 맞고도 성한 토마토가 있었다. 어린 시절 엄마가 만들어준 떡을 기억해내어 친구들과 나눠 먹는다. 고향에는 친구들이 있었다. 도시에서 직장을 다니다 내려온 재하는 아버지 가업을 이어 농사를 짓는 게 마음 편하다. 지역 농협을 다니는 친구 은숙은 대도시로 나가는 게 꿈이다.

사진 제공:메가박스㈜플러스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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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은 지금의 청년들에게 이렇게 말해 줄 것 같다. “나도 서울에서 너무나 힘들었어. 학비를 벌고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편의점 알바를 했어. 컵밥도 자주 먹었지. 더 이상 견디지 못 하고 떠나왔어.” 라고. 혜원도 고달픈 청춘이었는데, 폭우에 쓰러진 벼들을 세운다. 벼처럼 쓰러졌던 혜원도 일어서서 나아갔다.

대자연이 주는 결과물들. 먹던 토마토를 아무렇게나 던져두어도 그 녀석은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뻗어 열매를 맺는다. 모든 것이 싱그럽다. 바람도 싱그럽고 “시험은 어떻게 되었냐? 니네 엄마는 연락 오냐?” 관심을 넘어선 이웃들의 간섭도 싱그럽다. 날개를 퍼덕이는 생닭을 던져주고서 혜원에게 잡아먹으라는 이웃 아저씨의 온정도 싱그럽다. 어릴 적 혜원의 엄마는 “요리는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야” 라며 정성껏 음식을 만들어주었다. 혜원은 엄마를 떠올리며 음식을 만들었다. 혜원이 음식을 먹는 소리마저 싱그럽다.

혜원을 둘러싼 고향의 환경은 그녀를 위로해주었고, 예쁜 추억들을 상기시켰고, 다시 나아갈 힘과 용기를 주었다. 그리고 혜원에게는 그 추억들을 함께 꺼내볼 친구들이 있었다. 혜원이가 스스로 해 먹는 음식들도 큰 몫을 했다. 그 음식들은 모두 엄마에게서 배웠다. 그런데 엄마는 도대체 혜원을 두고 어디에 가 있을까? 엄마는 어디선가 여행을 하는지 모른다. 어쩌면 엄마는 혜원이 비닐하우스에서 잘 자란 토마토가 되기보다는 야생에서 살아남는 토마토가 되기를 바랐던 것일까?

사진 제공:메가박스㈜플러스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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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청춘들은 해보고 싶은 일, 가보고 싶은 곳이 많을 게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그들이 하려는 일과 가려는 곳에 자주 옐로우 카드를 내밀고 있지는 않을까? 비전과 성공에 어긋나는 길은 당장 끊어내라며, 더욱 노력하는 청년이 되어달라고 우격다짐을 하는 건 아닐까?

청춘들에게 이 말은 분명히 해야겠다. 고래를 잡으러 동해를 가든, 춤을 추러 클럽에 가든, 도서관에서 밤을 새우든, 비닐하우스에서 곱게 자란 토마토이건, 야생에서 어렵게 자라는 토마토이건, 비를 피하거나 비를 맞아도 혼자 하지 말라고. 멘토를 만들고 친구와 함께하라고, 무엇이 되고 싶었던 그 마음을 지키며 자신만의 안위와 영달을 위해서 아픈 사람의 손을 놓지 말라고. 도시에서 태어난 청년이거나 시골에서 태어나 자란 청년이거나 헬조선에서 다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친구가 되라고 말이다.

정분임 작가
정분임 작가

[정분임 작가]
전) 극동방송 작가
시립강북노인복지관 문학 및 글쓰기 강사
저서 : 영화로 보는 신앙, 꿈꾸는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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