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남영동 대공분실] 남영역 너머, 용산구 갈월동 98-8번지 암울한 시대의 상처로 기억되는 공간이 있다.

1980년대 군부독재 시절의 대공수사 기관이었던 ‘남영동 대공분실’이다.

1976년 건축가 김수근의 설계로 완성
1976년 건축가 김수근의 설계로 완성

1980년대 남영동 대공분실은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숨겨진 세계였다.
이곳에서 잔인한 고문들이 벌어졌고...

어느 날 한 청년의 죽음으로부터 남영동 대공분실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5층 창문만 유독 작고 좁은 직사각형 모양
5층 창문만 유독 작고 좁은 직사각형 모양
5층에 자리한 15개의 취조실(좌측 사진) / 좁은 창문은 고문을 은폐하기 위한 수단(우측 사진)
5층에 자리한 15개의 취조실(좌측 사진) / 좁은 창문은 고문을 은폐하기 위한 수단(우측 사진)

당시 남영동 대공분실은 민주화운동 인사에 대한 고문이 자행되던 곳이었다.
피의자들은 정문이 아닌, 건물 뒤편 출입구를 통해 아무도 모르게 취조실로 끌려갔는데.

이 나선형 계단은 5층 취조실로 곧장 연결되는 비밀 통로였다.

“이 원형 계단이 참 묘한 것이 뭐냐면
층을 구분하기에 참 쉽지가 않습니다.
몇 바퀴만 돌게 되면,
예를 들어서 롤러코스터의 경우도 그렇잖아요.

몇 바퀴가 돌면 어디가 아래위인지 알 수 없는 것처럼
방향감을 상실하게 되고

그런 와중에 5층의 취조실까지 올라오게 되는 거죠.
그 상황이 굉장히 공포스러울 수밖에 없고“

- 조한(홍익대 교수) int

방향감을 알 수 없는 원형 계단, 공포를 조장하기 위한 심리적 장치
방향감을 알 수 없는 원형 계단, 공포를 조장하기 위한 심리적 장치
피의자들이 서로 마주치지 않도록 어긋나게 배치된 독방 취조실, 비명소리를 차단하기 위한 방음벽이다
피의자들이 서로 마주치지 않도록 어긋나게 배치된 독방 취조실, 비명소리를 차단하기 위한 방음벽이다

1987년 1월 14일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온 서울대생 박종철.

1987년 1월 14일 박종철이 끌려온 남영동 대공분실(당시 509호)
1987년 1월 14일 박종철이 끌려온 남영동 대공분실(당시 509호)
당시 509호 취조실 내부(좌측 사진) / 고문의 도구로 사용됐던 욕조(우측 사진)
당시 509호 취조실 내부(좌측 사진) / 고문의 도구로 사용됐던 욕조(우측 사진)

당시 경찰의 수배를 받던 박종철의 선배, 박종운의 행방을 대라고 강요받았지만, 박종철은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그리고 밤새 자행된 물고문

‘욕조에 물을 가득 채우고
양손 양발을 묶은 채
머리를 욕조에 집어넣었다’

박종철은 결국 숨을 거둔다.

당시 박종철 군 사망진단서(사체검안서)
당시 박종철 군 사망진단서(사체검안서)

이대로 묻힐 뻔했던 박종철 군 죽음의 진실은 중앙일보 기자의 보도로 세상에 처음 알려지게 된다.

“그날 10시가 조금 안 되었을 때
대검찰청 공안과장 방에 취재하러 들렀습니다.
기자들이 아침마다 취재를 위해서
중요 간부들 방을 죽 돌아다니거든요.

그 일환이었습니다.
그 방에 들어가서 앉자마자
이분이 ‘경찰 큰일 났어’라고 한마디 던지는 거예요.

”그 친구 서울대생이라며?“
‘경찰 큰일?, 서울대생? 아, 경찰에서 조사를 받던
서울대생이 사고를 당했구나’ 하고
추리가 되는 거예요.

그러자 그 방에서 몇 마디 더 취재했는데
크게 사건 개요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어요.
즉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받던 서울대생 한 명이
조사 과정에서 숨졌다...

- 신성호 교수(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당시 박종철 사망 첫 보도 기자

중알일보 특종 보도(1987.1.15.)
중알일보 특종 보도(1987.1.15.)

그러나 경찰의 발표

책상을 ‘탁’하고 치니 ‘억’하고 쓰러졌다

언론 보도에 이어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에서 박종철 군 죽음의 실체를 밝힘으로써,독재 정권을 향한 시민들의 분노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에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범인이 조작됐다는 내용의 성명서 발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에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범인이 조작됐다는 내용의 성명서 발표

그리고 얼마 후, 또 한 젊은이의 억울한 죽음이 있었다.
경찰이 쏜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대학생 이한열

박종철에 이은 이한열의 죽음으로 시민들의 분노는 폭발했고, 이는 독재 정권 타도를 요구하는 6월 항쟁의 뜨거운 불씨가 되었다.

독재 정권을 향한 시민들의 분노는 6월 항쟁의 뜨거운 불씨가 되었다
독재 정권을 향한 시민들의 분노는 6월 항쟁의 뜨거운 불씨가 되었다

1987년 6월 10일 거리로 쏟아져 나온 학생, 직장인, 종교인, 재야운동가...

시민들의 요구

‘호헌 철폐’
‘독재 타도’

이후 서울, 부산, 광주 등 전국 30여 개 도시에서 매일같이 벌어진 대규모 가두시위가 이어졌다.

전국 곳곳에서 20여 일 간 계속된 시민들의 투쟁은 결국 전두환 정권의 막을 내렸다.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골자로 하는 6․29선언을 이끌어내면서, ‘민주주의의 승리’라는 값진 역사를 만들어낸 것이다.

6․29 선언과 당시 기사(경향신문)
6․29 선언과 당시 기사(경향신문)

여야 합의하에 조속히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하고
새 헌법에 의한 대통령 선거를 통해서
88년 2월 평화적인 정부 이양을
실현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 당시 노태우 민정당 대통령 후보의 6․ 29선언-
-대한뉴스 제1651호-

고통의 역사로 기억되는 남영동 대공분실은 현재 경찰청 인권보호센터로 새롭게 탈바꿈했다. 지난 과오를 딛고 이제는 진정한 인권 수호의 역사를 써 내려가야 할 때다.

- <남영동 대공분실 편> 프로그램 다시보기 -

☞ 네이버TV : https://tv.naver.com/v/1744259
유튜브 : https://youtu.be/tI7vxeVkS4c

TBS TV에서는 서울 일대에 남았거나 변형된 근현대문화유산을 주제로 서울의 역사․문화적 의미와 가치를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으로 제작하고 있으며, 프로그램은 네이버 TV(http://tv.naver.com/seoultime),유튜브(검색어: 영상기록 시간을 품다) 또는 tbs 홈페이지에서 다시 볼 수 있다.

tbs 백남우 영상콘텐츠부장
tbs 백남우 영상콘텐츠부장

[수상 약력]
2013 미디어어워드 유료방송콘텐츠 다큐멘터리 부문 우수상 수상
2014 케이블TV협회 방송대상 PP작품상 수상
2015 한국방송촬영감독연합회 그리메상 지역부문 우수작품상 수상
2016 케이블TV협회 방송대상 기획부문 대상 수상
2019 한국방송촬영감독연합회 그리메상 다큐멘터리부문 우수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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