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역사문화콘텐츠 전문 아카이브 단체인 문화지평은 2022년 서울시비영리민간단체공익활동지원사업으로 ‘옛 전찻길 따라 시공간을 잇는 서울 역사’를 수행했다.
도시 역사문화콘텐츠 전문 아카이브 단체인 문화지평은 2022년 서울시비영리민간단체공익활동지원사업으로 ‘옛 전찻길 따라 시공간을 잇는 서울 역사’를 수행했다.

[미디어파인 칼럼=옛 전찻길 따라 시공간을 잇는 서울역사] 문화지평이 지난해 ‘옛 물길‘에 이어 올해는 ’옛 전찻길‘을 따라 서울을 속속들이 톺아보고 있다. 그 두 번째 답사로 지난 4월 23일 두 번째로 전차가 부설된 종로서부터 용산까지 걸으면서 주변 역사문화, 수목생태, 산업관광 자원 등을 들여다봤다.

문화지평의 서울시 비영리민간단체 공익활동지원사업 ‘옛 전찻길 따라 시공간을 잇는 서울 역사’ 2차 답사는 1차를 이끌었던 전상봉 역사문화해설사가 해설을 맡았다. 전 해설사는 서울시민연대 대표와 발로품는서울협동조합 이사장으로 있다. 강남개발사를 담은 ‘강남을 읽다’ 등을 저술하고 한성백제 역사에 해박한 서울학 전문가다. 문화지평과는 2016년부터 인연을 맺고 있는 역량 있는 해설가다. 전 해설사는 이번 해설과 함께 1차 구용산선과 4차 신용산성 전찻길 해설을 담당했다.

전차 개통 전부터 논의된 용산선

지난 4월 23일 오전 9시 종각에서 시작한 답사는 남대문을 거쳐 용산 KT 용산 IDC에서 막을 내렸다. 이들 세 곳에서 찍은 2차 답사 단체사진 장면.
지난 4월 23일 오전 9시 종각에서 시작한 답사는 남대문을 거쳐 용산 KT 용산 IDC에서 막을 내렸다. 이들 세 곳에서 찍은 2차 답사 단체사진 장면.

1차 답사기에서는 전차를 통한 대한제국시기 수도 한성의 도시개조사업 중심으로 서문을 풀었다. 2차 답사기에서는 전자가 가져온 여객과 물산의 수송 혁명을 중심으로 풀어본다. 전차 두 번째 노선은 종로서부터 용산에 이르는 용산선이다.

용산선 부설은 첫 전차 개통식 이전부터 논의된 이른바 사전 준비된 계획이었다. 전차 개통식이 189년 5월 20일인데 용산선 부설 계약은 이미 4월 29일 체결됐다. 종로 보신각에서 남대문을 지나 용산 강항(江港)에 이르는 노선이다. 1899년 12월 20일 개통식을 거행하고 다음날부터 영업을 시작했지만 통상적으로 1900년에 개통했다고 이야기 한다. 종로에서 남대문 구간은 전차 개통 때 계획한 것이었지만 전자 종점이 서대문으로 바뀌면서 용산선 부설 때 이어졌다.

용산은 1884년 개항했다. 이는 1882년 체결된 한일수호조규속약(강화도조약)에 의해 양화진 대신 개항한 것이다. 개시장으로 지정된 용산에는 기선과 외국인 출입이 많아졌다. 한강 증기선 운행이 시작된 것은 1888년부터다.

삼산회사가 용산호(16톤)와 삼호호(13톤)를 항행했다. 1889년에는 세창양행이 제강호, 1891년에는 미국인 타운센트가 소유한 순명호가 뒤이어 항행을 시작했다. 원세계는 1893년 들어서 인천에 거주하던 중국 상인 동순태 등에게 한양호를 인천에서 용산까지 항행하라고 권유했다. 일본도 중국울 견제하는 차원에서 경쟁적으로 부두를 건설하고 선박을 항행했다.

교통발달로 공기관·공장지대로 가속화 한 용산

용산 평식원 부근 전차 선로와 경의선 철도가 교행하는 지점의 사진으로 용산선 부설계획이 세워지자 일본은 용산선이 경의선 철도 확정노선을 침범한다는 이유로 전차 노선을 바꿀 것을 요구했다. 이후 미국공사 알렌의 교섭으로 교차로 유지비용을 상호분담하기로 하고 교행구간을 만들었다.[사진=서울역사박물관]
용산 평식원 부근 전차 선로와 경의선 철도가 교행하는 지점의 사진으로 용산선 부설계획이 세워지자 일본은 용산선이 경의선 철도 확정노선을 침범한다는 이유로 전차 노선을 바꿀 것을 요구했다. 이후 미국공사 알렌의 교섭으로 교차로 유지비용을 상호분담하기로 하고 교행구간을 만들었다.[사진=서울역사박물관]

1900년 전후 용산 일대에는 각종 정부 기관과 공장이 활발하게 들어섰다. 1897년 벽돌(연와조)공장을 비롯해 1898년에는 인천에 있던 전환국이 이전 계획 2년 만에 건물을 신축했다. 1900년 농상부 인쇄국이 폐지되면서 전환국 내로 흡수됐다. 전환국은 근대 화폐를 주조할 상설조폐기관이다. 같은 해 세납곡과 군량미를 도정하는 기관인 정미소가 들어섰다.

1902년에는 평식원과 양잠소가 들어섰다. 평식원은 도량형을 통일하기 위해 설치한 궁내부 산하 관청이다. 양잠소는 견직 생산물 보급을 위한 직조소다. 1903년에는 총기제조소, 연초공장, 용산발전소(한성전기 제2발전소) 등 정부 공장이 들어서면서 용산 일대는 공장지대로 변해갔다.

이에 앞서 1899년 9월 철도 경인선이 인천에서 노량진까지 가(假)영업을 시작하면서 교통체계에 큰 변화가 왔다. 영등포에서 여의도, 여의도에서 용산으로 여객과 화물이 운송되는 체계가 마련되면서 용산 일대 발전을 가져왔다. 경인철도가 전차와 결합하면서 용산은 외곽과 도성을 연결하는 거점도시가 됐다. 전차 증설에 필요한 부자재도 인천에서 도성으로 편리하게 들어왔다. 이는 도성 내 전차 증성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여건이 됐다.

지금의 서울시 시정일지와 같은 경성부사에 따르면 당시 오카자키쵸(岡崎町) 일대는 논밭만 있고 인가가 드물었기 때문에 남대문에서 경성역(현 서울역) 뒷길로 해서 선린상고(현 선린인터넷고) 앞을 지나 강항에 이르도록 부설됐다. 여객보다는 물자 운송에 방점을 찍었다. 오카자키초는 당시 갈월리의 일제강점기 명칭이다. 러일전쟁 후 서울에 주둔했던 일본군 사단장 강기생삼(岡崎生三)의 성을 따서 붙인 데서 유래되었다. 광복 후 1946년 10월 1일 일제식 동명을 우리 동명으로 바꿀 때 용산구 갈월동이 됐다.

주요 코스는 남대문 5정목에서 서계동, 청엽정(현 청파동), 원정(현 원효로)로 이어졌다. 군자감 강감 터(현 KT 용산IDC)로 이전한 전환국이 위치한 원정4정목에까지 기계와 재료를 운반하기 위해 용산선 종점과 경인선이 접속했다. 당시 전환국장 이용익은 전환국에 갈 때마다 2~3명과 함께 전차 용산선을 이용해 왕래했다는 기록이 있다.

종각서 구 용산 용문시장까지 전찻길 따라 답사

1900년 또는 1901년의 남대문정거장 모습. 서대문정거장과 남대문정거장 사이 전차가 연결되자 남대문 일대 상권이 발달했다. 당시 선혜청 내에 있던 시장 창내장은 졸오에서 쫓겨난 상인들이 장을 열었던 곳이다. 이후 남대문시장으로 발전하게 된다.[사진=한국전력 전기박물관]
1900년 또는 1901년의 남대문정거장 모습. 서대문정거장과 남대문정거장 사이 전차가 연결되자 남대문 일대 상권이 발달했다. 당시 선혜청 내에 있던 시장 창내장은 졸오에서 쫓겨난 상인들이 장을 열었던 곳이다. 이후 남대문시장으로 발전하게 된다.[사진=한국전력 전기박물관]

이번 답사기는 이제부터 1인칭 시점이다. 출발 지점이 종각이다. 아마도 1호선 종각역이 맞을 테지. 검색을 하니 종각역, 보신각종 등만이 튀어나왔기에 살짝 불안했지만 딱히 떠오르는 장소가 없는 만큼 믿기로 했다. 늦는 것보단 차라리 이른 편이 낫다며 일찍 집을 나섰더니 지나치게 일찍 도착했다. 한산한 나머지 그러잖아도 넓은 공간이 더욱 드넓게 느껴졌다. 조금씩 따사로워지는 태양의 기운 아래 노릇노릇 익어가며 잠을 주무시고 계신 노숙인 분들이 몇 계셨다. 모두가 속했으나 아무도 속할 수 없는 서울 한복판에 발을 딛고 있음을 비로소 실감했다.

​얼마 전에도 지금은 사라진 전차의 흔적을 따르는 답사를 했다. 예전처럼 세세하게 기록해가며 듣지 않는 것도 있는데다 이동거리가 상당한 나머지 이동하며 들은 내용을 바닥에 줄줄 흘리고야 말았다. 오늘은 그날보다 시간 자체는 짧았다. 종각에서 출발해 용산역 부근까지 걸었으니 거리 또한 그 때만큼 부담스럽진 않았다. 그래도 일부는 잊었다. 어쩌면 기억한 내용이 망각의 늪으로 흘려보낸 내용보다 훨씬 적을 수도 있다. 또 다른 내용을 채워 넣기 위해서는 비워야만 한다. 나름 현명함을 발휘하고 있는 거라며 나를 다독여 보지만 아무래도 아쉬운 건 사실이다.

​1898년 처음 등장해 1968년 운행을 멈춘 전차다. 1970년대 이후 출생자들은 이를 경험했을 리 만무하다. 서울 한복판을 오갔다는 것도 설명 등을 통해 막연히 상상할 뿐이다. 아마 전차 세대 이후 태어난 이들은 전차가 무언지, 존재 자체를 모를 거 같기도 하다.

때는 일제가 야금야금 조선을 잠식해 들어가던 시절이었고, 우리 자본으로 무언가를 해보려던 시도는 이번에도 역시나 성공치 못했다. 고종이 적잖은 비용 부담을 하였으나 한미전기회사 자체가 미국 자본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설립됐다 할 수 있고, 나중에는 이마저도 일본 측(일한가스회사)으로 넘어가고야 말았으니 서서히 기울어 가는 국운과 닮은꼴이었지 싶다.

오늘 걸은 길은 금융 자본 등이 밀집해 있던 곳이자 현재도 각종 증권 회사들이 터를 잡고 있는 곳이었다. 식민지에 발을 디딘 이들에게 명동은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공간이었다. 부지런히 토지조사사업을 행함으로써 수탈의 역사를 써 내려간 동양척식주식회사를 비롯한 다양한 기관들 역시 명동에 자리를 잡았다. 이에 저항하는 다양한 운동이 이 일대에서 벌어진 건 당연한 결과였다. 나석주 열사 동상을 비롯하여 3.1운동과 연관된 장소임을 알리는 표지석을 마주할 때마다 뭐라 설명이 쉽지 않은 헛헛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감정은 서울중앙우체국 앞에서 홍영식 동상을 만났을 때 더욱 진해졌다. 우정국총판이었던 그는 갑신정변 이후 국내에 남아 있다 청국에 의해 무참히 살해됐다. 더는 어떠한 기회도 부여받지 못한 홍영식과 달리, 같은 경험을 나눈 서재필은 향후 근대화 및 독립운동 등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는 평을 오늘날까지도 듣고 있다.

무엇이 두 인물의 운명을 이토록 극명히 가른 것일지.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든 인간은 시간의 굴레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대륙을 호령할 거라 장담했을 이토 히로부미의 생도 어느 시점에선 멎었다. 주인의 뒤를 따르지 못한 그의 글씨는 여전히 한국은행 머릿돌은 선명히 남아 있지만.

금융자본 밀집지 지나 물산 가교 용산으로

이번 답사는 노선도 2번 코스를 따라 걸으면서 주변 역사문화자원을 두루 살폈다.
이번 답사는 노선도 2번 코스를 따라 걸으면서 주변 역사문화자원을 두루 살폈다.

일부 구간은 전차가 달렸을 큰길에서 약간은 벗어난 골목을 따라 걷기도 하였다. 많은 부분 재개발로 분위기가 확 달라진 와중에도 여전히 나지막한 높이의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바로 위로 고가가 뻗어서, 인근에 철로가 놓여 있어서 등의 이유로 개발로부터 소외된 이들은 일종의 박탈감을 느끼고 있을지도.

오히려 시간이 멎은 듯한 모습으로 인해 일명 '레트로 감성'이라며 젊은이들이 찾는 장소로 변모한 골목길도 있었다.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바라보는 이의 시선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낳기도 한다는 걸, 그다지 멀지 아니한 공간 간에 빚어진 차이점이 증명해 보이고 있었다.

​천주교가 퍼져 나가면서 숱한 순교자들을 낳았던 장소 중 하나인 당고개 순교성지를 지나 전차의 종점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용문시장 부근까지 알차게 걸었다. 서울 한복판답게 옛 모습이 고이 간직된 곳은 거의 없었다. 일부 적산 가옥이 남아 있어 일본의 흔적을 엿볼 수는 있었으나 대개가 건물의 끝을 확인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개를 치켜들어야 했다. 그 덕에 평소 땅만 보고 걷던 나로서는 하늘을 맘껏 우러러 볼 수 있었다.

열 분의 순교자들을 모신 당고개 순교성지의 경우, 오늘날의 시선에서는 공원의 느낌이 강했다. 여전히 사이비와 정통 사이의 구분은 있지만, 누가 무엇을 믿느냐를 두고 국가가 재단하는 시기는 지났다. 자신의 정통성을 위협한다는 해석이, 나라의 근간을 뒤흔든다는 불안이 과거에는 보다 광범위하게 적용됐다 건 그만큼 조선이 위태로웠다는 뜻이려나 싶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인간이 손수 만든 것들의 생명력도 그다지 길진 못하다. 한 때 신문명이라며 받들었을 전차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지 반 세기나 됐다. 그러나 역사에 대한 평가는 100여년의 시간이 흘러도 쉽지가 않은 모양이다.

민족문제연구소에 보관돼 있는 반민특위 표지석이 옛 국민은행 본점 자리로 되돌아가기 위해선 앞으로 얼마의 시간이 더 필요할까. 항상 앞으로 나아가곤 있는데, 옳은 방향인지는 틈틈이 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망의 대상이던 전차와 달리 역사는 그리 쉽게 사라질 수 없는 것이요, 사라져서도 아니 되는 것이기에.

<참고문헌>
- 서울지역 전차교통의 변화양상과 의미(1899~1968), 최인영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박사학위 논문, 2014
-서울의 전차, 서울역사박물관, 2019
-한국전력공사 전기박물관 홈페이지
-한민족백과사전 홈페이지
-네이버 지식백과사전

[문화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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