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경농관] 1950년 서울농업초급대학을 설립해 대학으로서의 터전을 마련한 동대문 전농동의 서울시립대학교엔 그 시간보다 오래된 건물들이 남아있다. 96년 대학의 역사를 오롯이 담고 있는 세 개의 야트막한 벽돌 건물 경농관, 박물관, 그리고 자작마루가 그것이다. 서울시립대의 전신은 1918년에 개교한 경성공립농업학교로, 이 건물들은 1937년 캠퍼스를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면서 세워진 건물들이다. 비슷한 시기 교정에 들어섰을 교사들은 모두 사라지고 마지막 건축물로 남아 있다.
[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舊 용산철도병원] 용산역과 신용산역이 자리 잡은 한강로 3가 일대에 낡은 벽돌색 건물 한 채가 눈에 뜨인다. 현재는 ‘옛동’이란 이름 하나만 남아있는 방치된 서울의 등록문화재 舊 용산철도병원이 그것이다. 사업비 30조 원에 육박한 ‘단군 이래 최대 규모’ 용산 개발 사업이 무산되면서 2014년 1월 코레일 측은 용산부지 등 부동산 자산 매각 추진하면서 구 용산 철도병원은 매각 대상에 놓이게 된다. 1904년 만주와 한반도의 지배권을 두고 벌어진 러일전쟁을 계기로 일본의 조선 침략은 더
[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옛 광통관] 100여 년 전의 근대건축물 중 드물게 본래의 기능이 이어져 내려오는 곳이 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 점포 중의 하나로 서울 중구 남대문로에 위치한 광통관이 바로 그것이다. 1909년 신축된 이후 지금까지 은행 점포로 사용되고 있으며 근대 건축물로는 보기 드물게 본래의 기능을 변함없이 이어오고 있다. 일제강점기 시기 자국의 은행을 앞세운 일본의 경제 침략이 본격화되고 1899년 정부 관료와 조선인 실업가가 참여한 민족계 은행 대한천일은행이 설립되었다. 초대 은행장은
[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서울도서관] 2009년 4월 등록문화재 52호 구 서울시청사가 일부 철거를 완료하고 4년여의 공사를 거쳐 2012년 10월 13일 서울시청 신청사가 개청되었다. 지금은 시민들의 공간이 된 서울도서관은 광복 이후 80여 년간 대한민국의 서울시청 건물로 사용되어왔다. 조선을 완전히 지배하게 된 1910년, 일본은 조선총독부령을 발포해 한성부를 경성부로 개칭하고 경기도의 부속 도시로 격하시켰다. 서울은 더 이상 조선의 수도가 아니라 식민지의 일개 도시가 된 것이
[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탑골공원] 종각을 시작으로 이어지는 종로 한가운데엔 대한제국 초기, 공원으로 개방된 근대의 공간이 있다. 1920년 ‘파고다 공원’이라는 이름으로 개원하였으나 1992년 지금의 명칭으로 바뀐 탑골공원이다.97년 전 거국적인 만세 운동의 진원지였던 공원의 첫 얼굴은 삼일문. 탑골공원 자리는 고려시대 흥복사라는 사찰이 있었던 곳으로 불심이 컸던 조선 세조에 이르러 2천 명이 넘는 군사를 동원하고 가옥 200여 채를 사들여 도성 제일의 가람 원각사로 중건되었으나 연산군 때 이르러 폐사되었다
[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용산 신학교] 1886년 프랑스와 통상 외교 조약이 체결되면서 100년간에 걸친 조선의 천주교 박해정책이 막을 내리고 약현성당(1892년 건립된 최초의 서양식 고딕 성당) 명동성당(1898년 건립된 두 번째 고딕 성당)에 이어 1902년 세 번째 고딕 성당인 원효로 성당이 건립되었다. 용산 원효로에 자리 잡은 성심여자중고등학교 교정엔 100년을 훌쩍 넘긴 고색의 고딕 성당이 있다. 경사진 땅에 그대로 세워져 오르는 곳에선 3층처럼 보이지만 성당을 따라 돌면 어느새 2층
[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중앙탕] 오래되고 촌스러운 가게들 사이로 서울의 예전 모습이 마치 시간이 정지해버린 듯 친근하고 푸근하기까지 하다. 북촌 골목길 귀퉁이에 계동의 명소라는 별칭이 붙은 2층짜리 대중목욕탕이 있다.24시간 사우나, 찜질방이 대세인 요즘, 외지인들에겐 그야말로 골동품 같은 목욕탕이지만 이곳 주민들에게 중앙탕은 여전히 일상의 한 부분이다.인근에 위치한 중앙고등학교 운동부의 샤워장으로 사용되다가 대중목욕탕으로 문을 연건 1969년. 목욕탕은 나이가 반세기 가까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성
[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2013년 11월, 종로구 소격동에는 미술계 최대의 화제였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개관을 했다. 서울관의 화두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 둘을 잇는 근대의 공존이다. 그중 미술관의 주출입 구인 붉은색 벽돌 건물은 1928년 개원한 경성의학전문학교 부속의원의 외래 진찰소 건물로 1932년 일부 준공 후 1933년 증축으로 40년 가까이, 보안과 통제로 불가침 영역이었던 국군 기무사령부이자 일제강점기엔 서울대 의대의 전신이 된 경성의전 외래진료소가 있었다. 기무사가
[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건국대 상허기념관] 서울 광진구 화양동의 건국대학교. 교정으로 들어서면 2만여 평의 호수 일감호를 시작으로 여느 대학처럼 최신식 건물들이 즐비하다. 그 교정 한가운데로 들어서 있는 붉은색 고풍스러운 벽돌 건물 하나, 건국대학교의 모태이자 지금은 상허기념관이라는 이름의 대학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 옛 서북학회 회관이다. 서북학회 회관(西北學會 會館)으로 불렸던 이 건물은 건립 당시만 해도 민족애국계몽단체인 서북학회의 회관으로 종로구 낙원동 282번지에 그 터를 잡았던 건물이다.이어 중등과
[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낙원동 떡전골목] 순수와 장수를 뜻하는 떡국으로 새해를 열고... 명절마다 생일마다 제사마다 먹었던 떡... 그리고 우리 떡의 명맥을 잇고 있는 서울의 한 거리가 있다. 창덕궁과 창경궁이 가까운 낙원동 일대엔 한국전쟁을 전후해 터를 잡은 옛 떡전골목이 바로 그곳이다. 이곳 떡집 대부분은 짧게는 3~40년에서 길게는 100년 가까이 이 골목을 지키고 있다. 한때 수 십 곳에 달했던 떡집들이 지금은 열 곳 남짓으로 줄었고 궁중 떡으로 유명한 이곳의 맛과 멋은 여전히 서울시민들에게 명물로
[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부민관] 일제 강점기, 동양극장, 단성사, 명치좌 등의 여러 극장들은 영화 상영으로 인기가 높았던 경성부민들의 문화공간이었다. 하지만 많은 연극단체와 악극단을 위한 대규모 공연장으론 적합하지 않았다. 그러던 1935년, 태평로를 사이에 두고 지금의 서울시 청사인 경성부청 맞은편에 국내 최초의 다목적 공연장이 들어섰다. 현재 서울 시의회 건물로 사용되고 있는 부민관은 1,800명을 수용했던 대강당 외에도 중강당과 소강당, 조명과 냉난방 시설 등 새로운 기술을 도입해 지어진 당시로선 최신
[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정관헌] 광해군의 경운궁에서 대한제국의 본궁이 된 덕수궁. 궁의 대표적인 서양식 건물인 석조전과 덕수궁 미술관 그리고 덕수궁의 가장 높은 곳엔, 덕수궁 건물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지어진 양식 건축물이 하나 있다. 정관헌. 이름 그대로 고요하게 내려다본다는 뜻의 이 회랑은 대한제국의 황제였던 고종이 다과를 즐기던 휴식공간이자 외교사절을 접대하는 등 행사와 만찬을 즐겼던 연회장이었다. 명성황후가 시해된 뒤 아관파천으로 러시아 공관에 피신해 있던 고종은 환궁
[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뚝섬수원지] 서울에서 시민들이 수돗물을 먹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구한말, 함경남도 북청 출신을 중심으로 생겨나 서울 골목길을 누비며 우물물을 길어다 판매하고 방대한 조직으로 성장했던 물장수. 새벽마다 고요히 꿈길을 밟고 와서머리맡에 찬 물을 솨아 퍼붓고는그만 가슴을 디디면서 멀리 사라지는북청 물장수물에 젖은 꿈이북청 물장수를 부르면그는 삐걱삐걱 소리를 치며온 자취도 없이 다시 사라진다날마다 아침마다 기다려지는북청 물장수- 북청 물장수(김동환 1924년)구한말과 개항을 거치면서 근대
[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서울기상관측소] 경희궁 서쪽 언덕 위, 종로구 송월동 1번지엔 흰색의 고풍스러운 건물이 하나 있다. 지난 80여 년간 서울의 날씨를 공식 기록해온 서울기상관측소. 1933년, 낙원동에 있던 경성측후소를 옮겨온 것이다. 서울의 모든 기상 기록은 이곳 송월동 기상관측소에서 관측된 것이 공식 기록이 된다. 예를 들면, 이곳에 비와 눈이 와야 서울에 눈비가 온 것으로 발표되고 이곳 벚나무에서 세 송이 이상 꽃이 펴야 서울 벚꽃 개화가 알려지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근대적인 기상관측이
[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정동제일교회] 선교활동이 엄격히 금지됐던 대한제국 시절, 한국으로 파송된 외국인 선교사들이 치중했던 건 교육사업이었다.최초의 서양식 교육기관인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이 그 산물이다. 이후 자연스럽게 학생들 사이로 선교가 이뤄졌고 배재학당의 설립자였던 미국인 선교사 아펜젤러가 1887년 10월 9일 처음 조선인의 집에 현판을 내건 벧엘예배당은 한국 최초의 개신교 교회이자 정동제일교회의 전신이 됐다. 정동은 조선 후기인 19세기 후반 서구 열강의 공사관이 밀집해 있던 곳으로 흔히 정동교회라고
[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낙원악기상가] 해방 후 유명 나이트클럽의 중심지였던 종로에 음악인과 연예인을 상대하는 악기점들이 입주하고 1970~80년대 밴드음악 전성기를 지나며 종로 일대의 문화 중심지로 성장한 낙원악기상가.낙원악기상가는 40여 년 한국 현대음악의 고향이자 음악인들의 낙원이었다...1960년대 후반 서울은 급격한 인구증가와 함께 도로 수요 압박에 직면했다. 당시 율곡로와 종로를 관통하는 4차선 도로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서울시는 국유지와 시유지, 개인 땅이 섞여있는 낙원동 일대에 도로를 내기로 했고 사유지 주민들
[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구세군 중앙회관] 덕수궁을 따라 이어지는 돌담길 끝자락, 그리스 신전을 연상시키는 기둥식 현관과 거대한 지붕이 인상적인 붉은색 벽돌 건물이 있다. 현재는 구세군 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옛 구세군 중앙회관. 바로 한국 구세군의 본관으로서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쳐 한국 구세군의 중흥기인 근대화 과정까지 한국 구세군의 혼과 정신이 뿌리 깊게 배어 있는 건물이다.2층 평면 신고전주의풍의 벽돌조 건물로 좌우 대칭의 회랑, 그리고 4개의 원기둥과 박공지붕이 웅장한 중앙 현관이 당당한 인상을 주는 건물
[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주한 프랑스 대사관] 서대문구 합동(蛤洞) 충정로역, 지금은 서소문 고가 차도가 없어졌지만 끝나는 지점 인근에 한국 전통 기와지붕을 얹은 듯이 하늘을 향해 날아갈 듯 가벼운 지붕이 이색적인 특이한 건축물을 만나볼 수 있다. 한국 현대건축사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물 중의 하나로 한국현대건축의 원점이라고 평가받고 있는 주한 프랑스 대사관이 바로 그것이다.1959년 봄, 당시 주한 프랑스 대사였던 로제 샹바르가 대사관 설계 공모를 냈다. 그때 프랑스 건축가 여섯 명 외에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공모에 참여
[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길상사] 으리으리한 솟을대문의 일주문뿐... 사천왕문도 불이문도 없는 서울 도심의 절집 하나... 애틋한 창건의 사연이 전설처럼 남아있는 곳...성북동 고급 주택가 사이, 백운, 인수, 만경, 북한산의 세 봉우리를 이루는 삼각산 자락에 자리 잡은 절집 길상사는 입구부터 여느 절집과는 다른 분위기이다. 계곡과 산비탈을 따라 자연스럽게 배치돼있는 전각들이 사찰이라기보다는 왕족의 별장이나 명망 있는 사대부 집안의 종택에 가까워 보인다. 1997년 시민들의 선방(禪房)으로 거듭난 길상사는,
[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권진규 아뜰리에] 성북구 동선동의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따라 오르면 유난히 지붕이 높은 건물이 있다. 동선동 권진규 아뜰리에. 근대 조각을 완성하고 현대 조각의 산파 역할을 했던 조각가. 불필요한 장식을 극도로 배제하고 명상과 구도의 자세를 추구한 작품들... 그러나 52세 봄, 스스로 세상에서 물러난 천재 조각가 권진규(1922~1973), 그의 예술혼이 깃든 곳이다. 1959년 일본에서 귀국한 조각가 권진규는 어머니와 살기 위해 이곳 동선동 언덕배기에 작은 집을 장만하고 손수 설계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