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정동제일교회] 선교활동이 엄격히 금지됐던 대한제국 시절, 한국으로 파송된 외국인 선교사들이 치중했던 건 교육사업이었다. 최초의 서양식 교육기관인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이 그 산물이다. 이후 자연스럽게 학생들 사이로 선교가 이뤄졌고 배재학당의 설립자였던 미국인 선교사 아펜젤러가 1887년 10월 9일 처음 조선인의 집에 현판을 내건 벧엘예배당은 한국 최초의 개신교 교회이자 정동제일교회의 전신이 됐다. 정동은 조선 후기인 19세기 후반 서구 열강의 공사관이 밀집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낙원악기상가] 해방 후 유명 나이트클럽의 중심지였던 종로에 음악인과 연예인을 상대하는 악기점들이 입주하고 1970~80년대 밴드음악 전성기를 지나며 종로 일대의 문화 중심지로 성장한 낙원악기상가.낙원악기상가는 40여 년 한국 현대음악의 고향이자 음악인들의 낙원이었다... 1960년대 후반 서울은 급격한 인구증가와 함께 도로 수요 압박에 직면했다. 당시 율곡로와 종로를 관통하는 4차선 도로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서울시는 국유지와 시유지, 개인 땅이 섞여있는 낙원동 일대에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경동교회] 서울시 중구 장충단로, 도로에 면해 있으면서도 굳게 닫힌 고성처럼 우뚝 선 건물 하나.외부 십자가도 없이 도심 속 수도원처럼 사람들을 맞는 경동교회가 바로 그것이다. 예배당 입구도 뒤편에 있어 계단을 둘러 입구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 나오게 돼있다. 세속에서 벗어나 신성으로 가는 길을 상징한 건축적 의도이다. 경동교회는 내부 공간을 먼저 형성하고 그 공간을 둘러쌓고 있는 조형적 요소로 개체를 선택했다. 여러 개의 개체가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구세군 중앙회관] 덕수궁을 따라 이어지는 돌담길 끝자락, 그리스 신전을 연상시키는 기둥식 현관과 거대한 지붕이 인상적인 붉은색 벽돌 건물이 있다. 현재는 구세군 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옛 구세군 중앙회관. 바로 한국 구세군의 본관으로서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쳐 한국 구세군의 중흥기인 근대화 과정까지 한국 구세군의 혼과 정신이 뿌리 깊게 배어 있는 건물이다. 2층 평면 신고전주의풍의 벽돌조 건물로 좌우 대칭의 회랑, 그리고 4개의 원기둥과 박공지붕이 웅장한 중앙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길상사] 으리으리한 솟을대문의 일주문뿐... 사천왕문도 불이문도 없는 서울 도심의 절집 하나... 애틋한 창건의 사연이 전설처럼 남아있는 곳...성북동 고급 주택가 사이, 백운, 인수, 만경, 북한산의 세 봉우리를 이루는 삼각산 자락에 자리 잡은 절집 길상사는 입구부터 여느 절집과는 다른 분위기이다. 계곡과 산비탈을 따라 자연스럽게 배치돼있는 전각들이 사찰이라기보다는 왕족의 별장이나 명망 있는 사대부 집안의 종택에 가까워 보인다. 1997년 시민들의 선방(禪房)으로 거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옛 미국문화원] 1938년, 한 건축잡지에 대대적으로 소개된 근세식 건물 하나.일제강점기 조선에 진출한 일본의 재벌 기업 미쯔이 물산(三井物産)의 신사옥으로 지어진 지금의 옛 미국문화원이다. 이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4층의 규모로서 1937년 9월에 착공되어 1938년 10월에 완공되었다. 삼정물산(미쯔이물산) 경성지점이황금정 1정목에신축중인 사옥은 본월 중에 준공낙성하므로내월 상순 이전 낙성식을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주한 프랑스 대사관] 서대문구 합동(蛤洞) 충정로역, 지금은 서소문 고가 차도가 없어졌지만 끝나는 지점 인근에 한국 전통 기와지붕을 얹은 듯이 하늘을 향해 날아갈 듯 가벼운 지붕이 이색적인 특이한 건축물을 만나볼 수 있다. 한국 현대건축사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물 중의 하나로 한국현대건축의 원점이라고 평가받고 있는 주한 프랑스 대사관이 바로 그것이다. 1959년 봄, 당시 주한 프랑스 대사였던 로제 샹바르가 대사관 설계 공모를 냈다. 그때 프랑스 건축가 여섯 명 외에 한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세실극장] 덕수궁에서 서울시의회 건물 쪽으로 조금만 오르면 덕수궁을 둘러싼 돌담길 초입에 소극장 세실극장이 있다.애초 성공회 서울대성당의 부속건물로 지어진 극장은 7,80년대를 대표하던 연극의 메카였을 뿐 아니라 덕수궁 인근의 이름난 데이트 코스였다.세실극장이 건립된 1970년대 중반은 정부의 문예진흥정책이 시작된 시기. 세실극장이 들어선 성공회 회관은 처음엔 회의장으로 구상됐다가 명동의 국립극장이 옮겨가면서 문화공간으로 변경됐다.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권진규 아뜰리에] 성북구 동선동의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따라 오르면 유난히 지붕이 높은 건물이 있다. 동선동 권진규 아뜰리에. 근대 조각을 완성하고 현대 조각의 산파 역할을 했던 조각가. 불필요한 장식을 극도로 배제하고 명상과 구도의 자세를 추구한 작품들... 그러나 52세 봄, 스스로 세상에서 물러난 천재 조각가 권진규(1922~1973), 그의 예술혼이 깃든 곳이다. 1959년 일본에서 귀국한 조각가 권진규는 어머니와 살기 위해 이곳 동선동 언덕배기에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미리내성지] 은하수를 일컫는 순우리말 미리내. 미리내성지가 있는 안성시 미산리의 깊고 깊은 오지, 박해를 피해 숨어들어온 천주교 신자들이 한 줌도 되지 않는 불빛에 의지해 신앙을 이어가던 그 장면이 마치 은하수처럼 보여 붙여진 별칭이다. 1846년 한강 새남터에서 순교한 한국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의 유해가 안치됐던 미리내성지는 성역화 작업 이전의 건축 유물과 새로 생긴 종교시설이 어우러져 200년이 넘는 천주교 역사의 현장이 됐다.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박노수 미술관] 해방 후 한국화단이 일본색을 배제하고 정체성을 되찾고자 했던 시기 선명하고 투명한 색채와 대담한 구도로 여백의 미로 한국화의 새 경지를 연 인물이 있다. 바로 ‘여운이 담긴 격조의 예술가’로 불리는 남정 박노수 화백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2013년 9월, 인왕산 끝자락 옥인동 언덕배기엔 40년 가까이 ‘서촌의 비밀정원’으로 불리던 신비로운 집이 세상의 발걸음을 허락했다. 해방 후 한국화 1세대로 꼽히는 거장, 남정 박노수 화백의 집이 구립 미술관으로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윤극영 가옥] 서울 강북구 수유동, 국립 4.19묘지 인근엔 동요 작곡가 윤극영 선생(1903∼1988. 동요작가·동요작곡가·아동문화운동가. 세칭 ‘반달 할아버지’)이 지내던 단층 주택이 있다. ‘윤극영 가옥(강북구 수유동 인수봉로 84길 5번지)’은 1977년부터 1988년 윤극영 선생이 작고할 때까지 산 집으로, 말년을 함께 보낸 장남 윤봉섭 씨가 2013년까지 거주하였다. 이후 서울시가 사들여 유품을 기증 받아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보전하고, 2014년 10월 윤극영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불광대장간] 서울 은평구 대조동의 한 골목. “탕! 탕! 탕!” 쇠를 두드리는 망치소리가 아침부터 골목길에 경쾌하게 울려 퍼진다.간판은 물론 그 존재를 보는 것도 하늘의 별 따기라는 대장간. 불광대장간, 지붕에 올려진 번듯한 간판은 서울시에서 전통 점포로 인증한 표시라고 한다. 대장장이 박경원(77)씨와 아들 상범(47)씨 부자(父子)의 일터인 `불광대장간’의 아침 풍경이다. 이곳에선 화덕에서 시뻘겋게 달궈진 쇳덩어리를 모루 위에 올려놓고 매질하는 전통방식을 고수하고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김포국제공항] 국내 최초의 공항인 김포국제공항은 1942년 준공되어 1957년까지는 군용비행장으로 사용되었으나, 1958년 국제공항으로 지정됐다. 태평양 전쟁 직전인 1939년, 일본군은 이미 김포에 활주로를 만들어 가미카제 특공대의 훈련장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6.25가 터지면서는 유엔사령부에서 군사적 목적으로 김포 비행장을 징발해 오랫동안 미 공군이 소유하게 됐다.1948년 최초의 민간항공사 대한국민항공사(KNA)를 설립하고 서울-부산 취항을 시작으로 서울과 주요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충정아파트] 충정로를 걷다 보면 마치 앞면이 잘려나간 듯 보이는 낡고 오래된 녹색건물이 도로변에 자리하고 있다. 1층에 상가가 조성되어 있는 이곳은 입구부터 3개의 서로 다른 재질로 ‘충정아파트’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곳. 건축가이자 건축주였던 일본인 도요타 다네오의 이름을 따서 도요타 아파트, 또는 한자 음대로 풍전아파트로 불렸던 충정아파트. 구 건축물대장엔 1937년 8월 준공으로 기재돼있지만 ‘등기에 의한 등재’라는 대목으로 봐서 그 이전에 준공된 것으로 보인다.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보안여관] 겸재 정선과 추사 김정희, 천재 시인 이상, 그리고 문학청년들의 시인부락까지. 오랫동안 수많은 예술가들이 머물고 떠나며 문화촌의 명맥을 이어온 서촌 통의동 일대. 그 통의동 길, 경복궁 영추문과 마주한 거리에 흑갈색 2층의 보안여관이 있다. 영업이 종료된 2004년까지 70년 넘게, 오가는 나그네들의 보금자리였다. 새하얀 간판에 파란 고딕체의 ‘보안여관’ 이름은 그대로지만 이제 여관은 뜨내기손님 대신 이른바 문화 투숙객을 받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바뀌었다. “우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KIST] 국책연구기관이 속속 들어서며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과학기술과 경제 발전의 요람이었던 홍릉 일대. 1969년, 홍릉 임업시험장 구내 8만 평이 넘는 너른 부지를 확보하며 완공된 한국과학기술연구원, KIST는 한국 최초 국가 출연으로 설립된 종합연구기관이다. 본관과 연구동, 공작동, 연구원 주거시설 등 3년에 걸친 건설은 기본적인 국가산업인프라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던 시기, 정부가 강력하게 주도한 초특급 프로젝트였다.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러사아 공사관] 덕수궁과 경향신문사 사이, 정동길을 걷다 보면 아담하고 호젓한 정동공원을 만날 수 있다. 한국 가톨릭의 첫 수도공동체였던 정동수녀원이 있던 곳으로 지금은 시민공원으로 조성돼 있다. 그리고, 당시 수녀들이 머물던 한옥과 담을 맞대고 있던 옛 러시아 공사관. 통상을 요구하는 서구 열강의 침략이 잦아지던 19세기 말 정동 일대는 열강의 각축장이 되었고 서구 열강의 공사관 중 동 가장 높은 곳에, 가장 크고 화려한 모습으로 러시아공사관이 들어섰다.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삼일빌딩] 수도 서울에 최근 3, 4년간 고층빌딩이우후죽순으로 솟는다. 금년 11월29일 현재서울시내의 10층이상 고층건물은 모두 59동.중구 남대문로 2가 118, 지하2층 지상23층으로날씬하게 들어선 한진상사의 KAL빌딩이28일 현재 전국 기성건물로선 한국 최고층 건물...이밖에 27층의 정부청사도 최고 최대를 향해 계속 작업중.서울은 평면에서 입체로 탈바꿈하고 있다 - 동아일보 1969.11.29.탑골공원에서 남산 쪽으로 향하는 청계천 변에 이르면 오른쪽으로 장방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학림다방] 뮌헨 슈바빙, 가스등을 못 잊어하던 전혜린의 우울이, 민주화 거사를 모의하던 학생운동가들의 비밀스러운 밀담은 물론 음악, 미술, 연극, 문학 등 예술계 인사들의 단골 다방으로 사랑받았으며 갑론을박이 펼쳐졌던 곳, 지금도 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는 곳 바로 대학로의 “학림다방”이다. 대학로가 생기기 훨씬 오래전인 1956년, 옛 서울대 문리대 건너편엔 다방 하나가 문을 열었다. 당시엔 이곳에 개천이 흐르고 개천 위로 작은 다리가 있어 학생들은 2층 다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