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양천수리조합 배수펌프장] 일제강점기, 산미증식계획으로 조선의 토지 확보와 수확량 증대를 목적으로 전국에 수리조합을 양산했던 조선총독부는 1923년에 비옥한 김포평야에 양천수리조합을 만들었다.양천수리조합 배수펌프장은 당시 평야에 물을 댔던 원동력이자 현존하는 근대 유일의 농업시설로 마곡리, 가양리, 염창리 일대 총 595정보 전답을 소유한 조선인과 일본인 지주들이 설립했다.펌프실과 각종 기계 설비를 갖춘 마곡 배수장은 최고 층고 12.6미터, 당시로선 상당히 큰 규모로 지어졌다.수문과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서울대 예술관]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 고등교육기관이자,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으로 손꼽히는 서울대학교. 서울대 캠퍼스가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게 된 것은 1970년대 초반 서울대학교 종합화 계획이 시행되면서부터이다.서울대학교 종합캠퍼스의 건축공사가서울 관악산 현장에서 착공됐습니다.80억 원을 들여 오는 1973년 말까지 5개 대학원을 비롯해서각 단과대학과 중앙도서관, 대학본부,기숙사, 교수 아파트 등의 시설을 갖추게 됩니다.(1972.7.29)서울 시내 곳곳에 흩어져있던 단과대학들을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김중업건축박물관] 경기도 안양시 안양예술공원 초입에 자리한 김중업건축박물관. 한국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 김중업(金重業, 1922~1988)이 설계한 ㈜유유산업 안양공장 건물을 안양시에서 매입해 현재의 박물관으로 리모델링한 것이다. 1950년대 후반 지어진 김중업의 초기 작품으로, 거장의 손에서 탄생한 건물 내부는 현대식으로 변신했지만, 외형은 설계 당시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김중업은 세계적인 건축가 프랑스의 르코르뷔지에에게 사사한 후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에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삼청각] 1972년 7월 4일 오전 10시. 분단 이후최초로 통일에 대해 합의한 남북공동성명발표. 그 후 북한 대표단과의 만찬이 열렸던 삼청동의 한 고급 식당. 이후 ‘비밀의 방’으로 통하며 1970년대 요정 정치의 주 무대였던 북악산 자락. 지금은 특별한 문화공간으로 남은 역사가 있다.경복궁의 북쪽에 솟아 서울의 주산을 이뤄온 북악산. 1972년, 6천 평 가까운 산 중턱엔 군 공병대가 투입돼 택지를 다지고 중앙정보부의 일사불란한 감독 아래 대규모 한옥 공사가 시작돼 1년여 만에
[미디어파인 칼럼= 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영락교회] 서울 중심가인 중구 저동에 자리한 영락교회. 명동성당과 더불어 한국 기독교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곳이다. 지난 70여 년 간 교세를 꾸준히 확장해오며, 현재 교인 수 5만 명에 달하는 대형교회로 성장했다.1949년에 준공된 영락교회 본전은 대한예수교장로회 교단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우리나라 1세대 근대건축가 박동진의 작품이다.전통 미학을 강조한 석조 건축물에, 중세 유럽의 건축 양식을 더해 개신교 건물로는 보기 드문 고딕 건축물을 완성시켰다.영락교회의 역사는 한국 기독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해공 신익희 가옥] 조선시대 이래 많은 예술가들이 모여 살았던 서촌. ‘서촌’은 경복궁 서쪽에 있는 마을을 일컫는 별칭으로 인왕산 동쪽과 경복궁 서쪽 사이, 청운효자동과 사직동 일대를 뜻한다. 좁은 골목골목마다 옛 정취가 살아 숨 쉬는 이곳에 소박한 한옥 한 채가 자리하고 있다.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였던 해공 신익희 선생이 1년 9개월간 거주했던 가옥이다.3․1 만세운동에 가담한 후 상해로 망명했다 서울로 돌아온 신익희 선생이 생애 처음으로 얻은 집이었다고 한다.해공 신익희 선생이 생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어린이대공원 꿈마루] 1973년 5월 5일 아시아 최대 규모의 도심 속 어린이 놀이공원이 개원했다. 어린이날의 필수 방문 코스이자 서울 초중등학교의 봄가을 단골 소풍 장소였던 어린이대공원이 그것이다.현재는 최첨단 시설의 놀이공원에 밀려난 추억의 공간이지만 어린이 대공원은 여전히 꿈으로 남아있다.1927년 서울 광진구 능동에 들어선 군자리 골프장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골프클럽인 경성구락부를 결성했던 영친왕이 순종의 비였던 순명황후의 능을 이전한 뒤 만든 국내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 선교교육원] 민주화운동의 열기가 뜨거웠던 1970년대.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 선교교육원은 안병무, 서남동, 문익환 등 진보적 개신교계 학자들의 활동 중심지였다. 이곳에서 탄생한 민중신학이 민주화운동의 큰 동력이 되었다.서대문구 충정로2가에 위치한 경기대학교 정문을 거쳐 북아현동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을 걷다 보면 붉은색 벽돌 건물 하나와 마주치게 된다. 바로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 선교교육원이 그것이다. 1923년 신축된 선교교육원은 당시 개화기 전통건축과 양식건축이 어우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경향신문 사옥] 서울 정동길 끝자락에 자리한 경향신문 사옥. 경향신문은 1946년 10월 6일 국내 최초로 탄생한 종합일간지이다.▲“거짓말 아니하는 것만으로도혼란기의 고덕이 되려니와정말 하기를 향산천업으로 할 것”- 초대사장 양기섭 신부의 창간사진실만을 보도하겠다는 경향신문의 창간 결의와 다르게 굴곡진 역사 속에서 경향신문의 운명은 순탄치 않았다.그런데 경향신문은 신문사 사옥이라기엔 건물의 외관이 좀 특별해 보인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옥상에 있는 송신탑이다.현재 경향신문 사옥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춘곡 고희동 가옥] 서울 종로구 원서동 16번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로 기록된 고희동이 1918년부터 40년간 살았던 집이다. 조선조 명문 역관 출신 개화관료 집에서 태어난 고희동은 관립한성법어학교에서 프랑스어를 전공, 역시 개화관료의 길을 걸었다. 1909년 일본에 간 고희동은 1915년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 과정을 마치고 귀국해 ‘조선인 서양화가 1호’가 됐다. 고희동은 신미술 운동의 기수로서 근대 화단의 형성과 전개에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가옥은 고희동 화백이 일본 유학을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인천 관동갤러리] 개항기 역사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는 인천. 현재의 중구청 앞 거리는 개항기 시절 인천으로 건너온 중국인과 일본인들이 모여 살았던 곳이다. 돌계단을 중심으로 왼쪽이 당시의 중국 조계지, 오른쪽이 일본 조계지였다. 지금도 계단을 사이에 두고 중국식 건물과 일본식 건물이 뚜렷이 나뉘어 있어, 130년 전 역사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일본과 중국의 이색적인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장소가 바로 이곳이다.당시 조계지의 일본인들은 격자 모양으로 도로를 배치하고, 구역마다 일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남서울생활미술관] 경기도 과천으로 넘어가는 남태령길과 남부순환도로가 교차하는 사당동 네거리 모퉁이엔 사적 제254호로 지정된 옛 건물이 있다. 지금은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생활미술관이 된 옛 벨기에 영사관이다. 1876년 일본과의 강화도 조약을 시작으로 미국 영국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 프랑스 등 개항기부터 대한제국에 이르기까지 조선과 통상조약을 체결한 나라는 모두 11개국 그중 1901년 대한제국의 열 번 째 수교국이 된 벨기에.고종의 정궁이었던 경운궁, 즉 지금의 덕수궁을 중심으로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유네스코회관] 서울에서 가장 바쁘고 번화한 거리, 명동. 외국인 관광객들이 즐겨 찾으며 대한민국의 관광명소로도 자리 잡았는데 이 명동 거리에 또 다른 특별함이 있다. 바로 유네스코 길이다. 지난 2010년, 우리나라의 유네스코 가입 60주년을 기념해 붙여진 도로명이다.그리고 길을 걷다 마주치게 되는 유네스코회관. 1967년 완공된 후 50여 년째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6.25 전쟁 후 폐허가 된 이 땅에 한국유네스코위원회는 희망의 불씨가 되었다. 교육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다양한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봉황각] 서울 우이동 도선사 입구에서 천도교종학대학원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대학원 뒤편의 단아한 한옥 건물과 마주하게 된다. 1912년, 천도교 3대 교조 의암 손병희 선생이 건립한 봉황각이다.봉황각은 당시 천도교 지도자를 양성하고 훈련시키기 위한, 천도교 수도원이었다.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된 봉황각은 역사적 의미뿐 아니라, 건축학적으로도 가치가 큰 건축물이다. 민가풍의 외관에, 실내에는 궁궐의 부속건물 양식이 가미돼 있어 독특한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건물 평면을 ‘궁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문래동 예술촌] 쇳소리로 시작하는 하루, 그리고 철공소 장인들의 분주한 손길... ‘대한민국의 철재는 문래동을 통한다’고 할 만큼 70~80년대 우리나라를 대표한 철공 단지. 빼곡히 늘어선 낮은 지붕들 너머로 고층 빌딩들이 마치 병풍처럼 에워싼 이곳은 문래동 철공소 단지이다.문래동의 특별한 풍경인 이 단층 건물들은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것인데. 1940년대 일본이 문래동을 개발하면서 건설한 영단주택으로, 현재 그 일부가 철공소로 개조돼 사용되고 있다.또 1980년대에는 철공소 근로자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일민미술관] 주말이면 관광객이 넘쳐나는 세종대로 일대. 고층빌딩으로 둘러싸인 그 가운데 고풍적인 느낌마저 들게 하는 건물 하나가 있다. 바로 구 동아일보 사옥이다.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 131호로 건립은 1920년이고 준공당시 지하1층 지상3층의 건물이었다. 건립 당시 장안의 화제가 외었던 건물로 지금 보아도 견고하게 그 위용을 자랑한다.1920년 봄, 민족지를 표방하며 김성수를 주축으로 옛 중앙학교 교사에 창간 터를 마련한 동아일보가 당시의 경성부 광화문통에 건물을 신축해 옮겨온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국립중앙의료원] 국립중앙의료원은 서울시 중구 을지로 6가에 있는 보건복지부 산하의 국립 종합병원이다. 한국전쟁 직후 전상병(戰傷兵)을 비롯한 환자 진료 및 의료요원의 교육과 훈련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당시 한국전쟁 기간 동안, 국내 의료진들은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의료 구호에 힘입어 한결 수월하게 군 부상자와 민간인들을 돌볼 수 있었다. 그리고 휴전과 함께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스칸디나비아 3국은 의료단 철수를 준비하게 되었다. 하지만 폐허가 된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서소문아파트] 서울 도심 속 고층 건물들 사이로 시간이 멈춘 듯 서 있는 낡은 아파트가 지나는 이들의 눈길을 끈다.1970년대 당시엔 최고급 아파트로... 이제는 서민들의 보금자리로...40여 년 세월을 지켜온 서울에 남아있는 몇 안 되는 1970년대 아파트.서대문구 미근동에 자리한 서소문아파트다.그런데 이 아파트의 주소가 좀 특별한데. 서소문아파트는 원래 이 자리를 흐르던 하천을 복개하고 그 위에 지어진 아파트이다.하천의 굽은 모양을 따라 아파트도 곡선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인천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길 언덕 위에 자리한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화려한 단청이 돋보이는 전통 목조건물로, 겉모습은 성당이라기보다 오히려 불교사찰에 가까워 보인다.강화성당은 오늘날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한옥 성당이다. 조선시대 말, 영국성공회 출신의 코프 신부(Corfe, C. J.)가 제물포항에 도착했다코프 신부를 중심으로 시작된 강화도에서의 선교활동 그리고 1900년, 마침내 강화도의 첫 성공회성당이 건립되었다.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경농관] 1950년 서울농업초급대학을 설립해 대학으로서의 터전을 마련한 동대문 전농동의 서울시립대학교엔 그 시간보다 오래된 건물들이 남아있다. 96년 대학의 역사를 오롯이 담고 있는 세 개의 야트막한 벽돌 건물 경농관, 박물관, 그리고 자작마루가 그것이다. 서울시립대의 전신은 1918년에 개교한 경성공립농업학교로, 이 건물들은 1937년 캠퍼스를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면서 세워진 건물들이다. 비슷한 시기 교정에 들어섰을 교사들은 모두 사라지고 마지막 건축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