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문래동 영단주택] 커다란 아파트 너머 낮게 자리하고, 넓은 도로 너머 낡은 집들이 좁게 붙어있는 곳이 있다. 대한민국 발전의 초석을 다진 근대화의 현장, 문래동 영단주택이 그것이다.도면만 가져오면 비행기도 만들 수 있다고 자부했던 1970, 80년대 대한민국 대표 철공소 단지, 문래동. 최근에는 예술가들이 모여 조성된 예술촌으로 더 유명해졌다..이곳 철공소도... 예술가들의 갤러리도 1941년에 계획된 공간, 영단주택에서 시작됐다. 1937년 중일전쟁 등 전시체제에 있던 일제는 조선
[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정부서울청사] 일제 치하의 암흑기에서 벗어나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새 나라의 행정을 이끌어갈 기관들이 만들어졌다.하지만 새 사무공간을 만들기에 공간이 여의치 않았던 까닭에 대통령 관저는 과거 조선총독부 관저에, 대통령 집무실 등 각 기관 또한 조선총독부 청사였던 중앙청을 중심으로 경복궁 주변 곳곳으로 배치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 그렇게 대한민국 행정은 흩어지고 말았다.“청사가 부족해 민간 소유 건물을 임차해 사용하는 기관이 많았고시설이 낡은 데다 곳곳에 흩어져있어 행정능률이 떨어진다.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제기동 성당] 조선 시대 때부터 풍년을 기원하며 왕이 제사를 지내던 자리 제기(祭基: 제터). 잡신을 위한 무당의 굿판은 물론 때마다 남사당패들의 놀음이 한판 벌어지던 이곳에 기도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1942년. 서울 내 늘어난 천주교인들을 위해 동대문 밖에 자리했던 한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했다. 서울에서 일곱 번째로 설립된 성전, 제기동 성당이 바로 그것이다.멀리 혜화나 명동까지 가야 했던 교인들이 대거 유입되고, 6.25전쟁 후 신앙을 찾아온 이들이 급증하자 새로운 성당 건축
[미디어파인 칼럼= 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서울맹학교·서울농학교]“처음 이곳에 왔을 때, 아무것도 모르고 듣지도 못하며할 수 있는 게 없는 우리 아이가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습니다.”“하지만 이제는… 우리 아이도 발전할 수 있다는 희망을,대한민국의 기둥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학부모의 고백 중조선시대의 중심, 경복궁 끝자락을 따라 이어진 골목 끝에는 특별한 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듣지 못하거나, 앞을 볼 수 없는 아이들을 위한 서울농·맹학교.우리나라 최초의 특수교육기관의 시작은 일제강점기 때로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남산제1호터널] 길이 1,530m, 너비 10.8m, 왕복 4차로, 강북 도심과 강남을 잇는 주요 교통로의 시작! 바로 남산1호터널이다. 1996년부터 서울시는 '혼잡세' 개념으로 지나는 차마다 통행료 2천 원을 받았는데 오는 15일, 도입 27년 만에 통행료가 일부 사라지게 된다. 남산1호터널 공사의 목적은 단순히 교통 소통만의 문제는 아니었는데... 그렇다면 그 탄생의 비밀은 무엇일까?광복 후, 한강의 기적을 일구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던 서울. 그러던 1968년 1월.온 나라를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장충단공원] 1960년대 대중가요의 노랫말로... 1970년대 정치집회의 장소로... 1980년대 서울의 대표적 공원으로... 시대에 따라 운명을 달리했던 곳 장충단공원. 대중가요의 노랫말로 잘 알려진 장충단공원에 숨겨진 비밀은 무엇일까?서울 한복판 남산 자락 아래 자리한 장충단공원.지금은 인적이 드문 한가로운 공원이지만, 과거 장충단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그 역사는 1895년 고종황제 때부터 시작된다. 대한제국 최초의 국립현충원이라 할 수 있는 장충단에서는 매년 봄가을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경기도청 구청사] 우리나라 최대의 인구가 밀집해 있는 경기도.한반도 중심에 위치해 있어 역사상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으며, 오늘날에도 경제, 문화, 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데... 경기도의 역사와 운명을 함께해 온 대표적인 건축물이 바로 경기도청 구청사(현 수원 팔달구 매산로 3가)이다.그러나 원래 수원에 있던 경기도 구청사가 일제강점기 때 광화문 세종로에 있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대한제국 말기 시절인 1910년 8월 대한제국 내부(內部) 청사로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해병대사령부 초대교회] 1951년 6월 강원도 양구에서 벌어진 도솔산 전투. 통영 상륙작전과 더불어, 한국 해병대가 6․25 당시에 거두었던 여러 승리들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다. 도솔산은 북상 중인 국군의 전진을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 했던 전략적 고지였다. 퇴각을 거듭한 미 해병대를 대신해 투입된 한국 해병 제1연대는 16일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마침내 도솔산을 탈환했다. ‘무적해병’의 신화, 그 힘은 하나의 교회로부터 시작되었다...용산구 해방촌 군인아파트 사이에 자그마한 교회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의릉 옛 중앙정보부 강당] 조선 20대 왕 경종과 계비 선의왕후 어 씨가 잠들어있는 의릉. 그러나 33년간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채 일반인에게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던 은밀한 공간이다.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이 남겨놓은 굴곡진 역사의 흔적들을 살펴본다. 오랫동안 금기의 영역이었던 의릉이 세상에 공개된 것은 무려 43년 만의 일이다. 의릉의 주인인 경종과 선의왕후 어 씨의 봉분. 이를 중심으로 좌우에 여러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데 바로 중앙정보부 청사로 쓰였던 건물들이다.그러나 실상은 김대중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육군박물관] 서울 공릉동, 육군사관학교 내에 자리한 육군박물관. 한반도를 지키기 위한 전쟁과 희생의 역사가 기록된 곳, 바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군사전문 박물관이다.※ 강재구 소령(1937~1965) 수류탄 투척 훈련을 실시하는도중, 몸으로 수류탄을 덮쳐 수많은 부하들을 구하고 산화한 그의 군인정신을 찬양하여 소령으로 특진1956년 육군사관학교 기념관에서 출발한 육군박물관은 한국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 건축가 김중업(1922~1988)의 설계로 완공됐다.‘81년 새 아침에 김복동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남영동 대공분실] 남영역 너머, 용산구 갈월동 98-8번지 암울한 시대의 상처로 기억되는 공간이 있다.1980년대 군부독재 시절의 대공수사 기관이었던 ‘남영동 대공분실’이다.1980년대 남영동 대공분실은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숨겨진 세계였다.이곳에서 잔인한 고문들이 벌어졌고...어느 날 한 청년의 죽음으로부터 남영동 대공분실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당시 남영동 대공분실은 민주화운동 인사에 대한 고문이 자행되던 곳이었다.피의자들은 정문이 아닌, 건물 뒤편 출입구를 통해 아무도 모르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한무숙문학관] 혜화동 골목길, 양옥 건물들 사이로 고풍스러운 기와집 한 채가 들어서 있다. 소설가 한무숙 선생이 1953년부터 작고할 때까지 40년 동안 살았던 집이다. 1993년 작가가 별세한 후 남편은 집을 문학관으로 개조해 시민들에게 개방했다.‘한국의 버지니아 울프’라 불리는 작가 한무숙. 그녀의 집은 재능 있는 문학도들의 아지트였다.그리고 천상병이 시인이 남긴 추모시에도 드러나 있는데...한무숙 선생님이돌아가셨다. 우리를 남긴 채내가 대학생 때하숙 생활을 하지 말고우리집에 와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서울공업고등학교 본관]1899년 고종 황제의 칙령, “상공학교를 설립하라”“농상업이 흥하지 못함으로써백성들의 자산은 날로 줄어들고국가의 재정도 날로 힘들어지고 있다.상공학교의 개설은 더욱 급선무로 되어 있어...머뭇거리지 말고 한결같이 전심전력하라”- 1899년 4월 27일 에 관한 조칙그해 6월 발표,“1조 상업과 공업에 필요한 실학을 교육하도록 한다”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실업학교 ‘상공학교’의 탄생의 배경이다.그로부터 120여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한성교회] 정동길을 따라 걷다 보면 우리나라 최초의 화교교회인 한성교회를 만날 수 있다.1912년 경 중국 산둥성 출신의 한의사 차도심(車道心)은 “기독교를 버리지 않으면 산 채로 매장하겠다”던 아버지를 피해 한국으로 도망 왔다. 그 무렵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중국 저장성 출신의 여선교사 더밍(C.S. Derming)은 “서울에 온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게 된다. 이렇게 더밍과 차도심, 두 사람의 만남으로 한국 화교교회의 역사는 시작되었다.더밍 여사가 선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4․19 혁명기념도서관]학생과 시민의 힘으로 이룩한 4․19 혁명다시, 그날을 기억하다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것은, 1960년 3월 15일 실시된 제4대 정․부통령 선거였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지난 12년간의 장기집권에 이어, 또다시 정권 연장의 야욕을 드러냈다.부정선거로 당선된 대통령 이승만과 부통령 이기붕.선거 결과가 발표되자, 수많은 학생과 시민들이 부정선거 규탄을 외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마침내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하고“첫째는 국민이 원하면대통령직을사임할 것이며..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일본군 관사] 1931년 만주사변... 1937년 중일전쟁... 1941년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지는 일본의 전쟁 야욕, 그 과정에서 일본은 한반도를 대륙 침략의 병참기지로 삼았다.지난 2005년 상암동 일대에 대규모 택지개발사업이 시작됐다. 그런데 당시 문화재 지표조사 과정에서 특별한 건축물이 발견돼 세상의 이목이 집중됐는데...총 22개 동의 목조건축물건물들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 군인들이 거주했던 숙소인 것으로 추정된다.현재 상암동의 지리적 특징이 일본군이 북쪽으로 진출하는데 유리한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행주성당] 행주대교 남단의 행주외동. 이곳 나지막한 언덕 위에 자리한 행주성당은 명동성당, 약현성당에 이어 경기북부지역에 세 번째로 설립된 유서 깊은 성당이다. 1910년 행주나루터 인근에 처음 성당을 지은 후, 1928년 지금의 자리로 이전해 왔다. 이전 당시 성당 본래의 자재를 대부분 재활용해 원형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냈다.행주성당은 본래 공소로 출발했다. 즉 사제 없이 행주 지역 신자들의 모임으로 유지된 교회였는데, 1909년 김원영 아우구스티노 신부가 초대 사제로 부임해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장욱진 가옥] 이중섭, 박수근과 함께 우리나라 1세대 서양화가로 손꼽히는 화가 장욱진. 일본 도쿄제국미술학교에서 유학한 후 서울대 교수로 재직했지만, 6년의 학교생활을 끝으로 그는 오직 그림에만 매달렸다.그의 나이 70세 되던 1986년 봄, 화가 장욱진은 그간의 생활을 정리하고 용인의 한 한옥집으로 거처를 옮겨온다. 그리고 이곳에서 보낸 5년의 시간 동안 화가는 무려 200점이 넘는 작품을 쏟아냈다.안채 뒤 후원으로 들어서면 정자를 만날 수 있는데 속세를 떠나 자연 속에서 살고자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선린인터넷고등학교] 서울 용산구 청파동에 자리한 선린인터넷고등학교. 우리나라 최초의 실업학교로 설립된 이래, 120여 년의 오랜 역사를 써 내려온 학교이다. 1899년 6월 ‘상공학교관제’가 공포됨에 따라 서울 명동에서 관립상공학교로 개교하였다. 1904년 9월 관립농상공학교로 개편되어 상과·공과를 두었다가 1907년 4월 상과가 독립하여 사립 선린상업학교로 개교하였다.오늘날에는 IT 전문 인재 육성을 목표로 한 특성화고등학교로 새롭게 도약하고 있다.현재 선린상업학교 시절에 지어진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감신대 청암기념관] 우리나라 최초로 설립된 개신교 신학대학. 감리교 신학대학교의 역사는 1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의 모체가 되는 것은 1907년 미(美) 감리교에서 설립한 협성신학교이다.처음에는 재정난으로 자체 건물 없이 운영되다가, 3년이 지난 후에야 서대문구 냉천동의 부지를 매입해 신축 공사를 시작했다.갬블 기념관이 있던 자리에는 현재 감리교 신학대학원 건물인 청암 기념관이 들어서 있다. 화재로 갬블 기념관이 소실된 후 건축가 김정수의 설계로 새 건물을 지은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