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덕수궁 미술관] 궁궐 안의 별도의 공간, 왕의 처소와 연결된 건축물과 그 앞에 조성된 정원... 궁궐 내에 있지만 궁궐이 아닌 아픈 역사의 흔적을 간직한 덕수궁 미술관. 덕수궁 안의 조선 황실로 ‘석조전’이 지어지고, 이후 일제의 국권침탈이 본격화되면서 일제는 덕수궁의 공원화 계획을 발표한다. 석조전 옆에 미술관을 짓고 다리를 연결해 두 건물을 하나의 미술관으로 통합하는 것이었다. 일본인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헤이는 석조전의 신고전주의를 반영하면서 당시 유행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덕수궁 석조전] 석조전은 덕수궁 내에 위치한 근대식 석조 건물이다. 대한제국이 열강들의 세력 다툼의 장이 되었던 조선 말.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러시아 공사관으로 몸을 피신했던 아관파천 이후, 고종은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새로운 황실 건축을 계획했다. 덕수궁 석조전은 대한제국 광무황제(고종, 1852~1919)의 숙소와 사무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1898년 영국인 건축가 하딩(J. R. Harding)에 의해 설계된 3층 구조의 석조건물이다.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구의 취수장] 한강의 물을 끌어들여 가정까지 깨끗한 물을 공급해온 구의 취수장. 1976년 통수를 시작한 구의취수장은 하루 83만 톤의 물을 생산해내는 당시로선 국내 최대 시설이었다. 그러나 지난 2011년 강북 취수장이 새로 생기면서 구의 취수장의 운영은 중단됐고, 4년 만에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됐다. 1976년부터 30여 년 세월 동안 서울 시민들에게 물을 공급하던 곳이 이제 우리나라 거리예술의 장으로 탈바꿈하였다. “물이 흐르던 자리에 예술이 흐르자 거리에는 꽃이 피었다”.20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남대문시장] 서울 최대 상설시장, 남대문 시장. “고양이 뿔만 없고, 다 있다” 야간 도매시장에서부터 외국 관광객의 기념품 시장까지 1만 여개의 점포, 1천 7백여 종의 상품, 그리고 하루 평균 이용객이 40만 여명에 육박하고 있는 서울 대표 시장이다. 모든 것이 모이도 흩어지는 600년 전통, 남대문시장은 오늘도 풍요로운 활기와 넘치는 생기가 가득하다.조선 초기 생성되어 난전의 성향이 강했던 이곳이 본격적인 시장의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은 1897년. 선혜청 창고 터(현재 본동시장)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독립문] 북경으로 가는 길 서문 밖 무악재, 그 초입 중국 사신들을 맞던 모화관과 영은문이 있었다. 영은문은 조선 사기(史記)에 제일 수치스러운 일그 수치를 씻으려면 그 문만 헐어버릴 뿐 아니라그 자리에 독립문을 세우는 것이수치를 씻을 뿐 아니라.../ 독립신문 1896.6.20.길이 10.4km의 왕복 8차선으로 경인고속도로 입구까지 이어져 서울시내 최장가로로 꼽히는 성산로, 그 기점은 바로 서대문구 현저동 독립문 일대이다. 서대문형무소와 함께 서대문 독립공원을 이루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서교 365] 지하철 2호선 개통과 함께 소극장이며 독특한 분위기의 카페들이 생겨나면서 문화예술거리로 자리 잡은 홍대 입구. 하지만 2000년대 들어 프랜차이즈 숍들이 범람하면서 홍대만의 공간들이 많이 사라졌다. 그중, 번화한 거리 사이로 좁다란 기찻길을 연상시키며 크고 작은 점포들이 밀집돼있는 곳 서교 365.'서교 365’는 서교동 365-2번지에서 26번지까지, 모두 23개의 필지에 다닥다닥 들어선 가늘고 긴 건물 군을 말한다. 이 독특한 구조의 서교 365 거리는 언제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한남대교] 한국전쟁 이후 1970년대 인구는 550만 명으로 폭발적인 증가 추세를 보이면서 196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경기도에 속했던 지금의 강남 일대가 서울로 편입된다. 1985년 한강종합개발사업으로 제3한강교에서 지금의 이름으로 바뀐 한남대교.경부고속도로의 관문이기도 한 한남대교는 강북지역의 인구 과밀을 해소하는 한편, 유사시 서울시민 도강용이라는, 전쟁 후 말 못 할 안보 불안감이 낳은 결과물이기도 하다.한국전쟁 당시 한강철교와 한강대교(제1한강교) 폭파로 수많은 시민이 희생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수원 가족여성회관] 가족여성회관은 일제강점기에 금융대부업을 위한 조선중앙무진회사 건물로서 지어졌고, 1956년 수원시청 임시청사로 사용되다가 1956년 7월 26일 바로 뒤편에 수원시청사가 지어지고 난 뒤 1958년 수원시청 별관으로 잠깐 이용되었고, 오랫동안 수원문화원 건물로 사용되었다. 현재는 수원시가족여성회관의 문화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구 수원문화원’은 지상 2층 규모의 벽돌조 건물로 평면은 거의 정방형에 가까운 형태이며, 주출입구에 일제강점기 관공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선유도 공원] “서울 제2한강교 중지도에 위치한선유수원지가 일부 준공됐습니다.이 수원지는 매일 20만톤의 수돗물을 생산해서서대문 마포 영등포 관악 강서구 일원의29개 지역이 급수혜택을 받게 되며. . . ”- 대한뉴스 / 1978.6.23.합정동과 당산동을 잇는 양화대교의 중간지점, 거대한 배처럼 떠있는 공원이 있다. 선유봉이라는 작은 언덕이 있어 신선들이 유람하며 즐겼다는 한강 위의 작은 섬 선유도... 한때 사라져간 한강의 명승지 선유도가 21세기 다시 우리의 기억
[미디어파인=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함석헌 기념관] 한국의 대표적인 인권운동가 함석헌 선생(1901~1898). 때로는 고요하고 수줍음 잘 타는 종교사상사고 때로는 독재에 저항한 대쪽 같은 민주투사로....신문이 씨알에게 씨알이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가리고 보여주지 않을 뿐 아니라씨알이 하고 싶어 못 견디는 말을입을 막고 못하게 한다 / 창간사 2011년부터 추진해온 도봉구 쌍문동의 함석헌 가옥이 기념관으로 개관했다.부족한 예산이며 유족과의 협의 등 그
[미디어파인=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아담스 기념관] 개화기 시절 아펜젤러와 스크랜턴 모자로 시작된 한국 감리교는 인천, 서울에 이어 1890년대에 수원 선교를 시작했다.수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면수 선생 등이 설립한 수원 첫 근대 사립학교인 삼일학교는 교회부설 15명의 학생들로 시작돼 수원 사립 명문으로 성장한 곳이다.총 길이 5.7킬로미터, 면적 1.2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수원 화성과 팔달문 등 4대문을 위시해 여전히 수 십 개의 주요 시설물이 보존돼있는 조선 정조 때의 역작이다. 그중 화성 북쪽의 수
[미디어파인=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정독도서관] 인왕산 자락에서 내려온 등산객이며 북촌을 찾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한 번쯤 머무는 종로구 화동의 명소. 1980년대 이전 학창시절을 보낸 이들에겐 엘리트 양성소였던 경기고등학교로, 학교가 강남으로 이전한 뒤엔 추억의 도서관으로 손꼽히는 정독도서관이 있다.이곳은 국보 216호인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가 탄생한 유서 깊은 공간이기도 하다. 건축 당시 스팀 난방 등 최신식 설비를 갖췄던 교사 건물들은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미디어파인=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제18,58은행] 개항기 일본 조계지의 중심이었던 인천 중구청 앞거리, 격자형 도로로 시가지가 조성돼 있던 이곳은 인천 안의 일본 금융가이기도 했다. 현재는 중구청 건물이 있는 옛 일본 영사관 앞으로, 민간인이 설립한 세 개 은행이 나란히 자리했다. 숫자는 당시 일본 국립은행 조례에 따른 허가번호였다. 일본 제18은행 인천지점(現 근대건축 전시관)은 일본 나가사키 본점의 최초 해외지점으로 인천 내 일본인들의 직물 무역을 위해 개설되었
[미디어파인=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승동교회] 탑골공원을 지나 인사동으로 접어드는 초입, 작은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면 인사동이 그 이름을 갖기 전부터 이곳에 있던 터줏대감 승동교회가 있다. 지금이야 고층 빌딩에 가려져 놓치기 쉽지만 건립 당시엔 북한산을 배경으로 솟아난 기념탑처럼 웅장했다.승동교회는 1893년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 사무엘 포먼 무어 목사가 곤당골 교회를 설립하면서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 당시엔 최하층 신분의 백정들을 대상으로 목회활동을 해 별칭 ‘백정교회’라 불리기도 하였다.1904년 승동(現 인사동)에 한
[미디어파인=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간송 전형필 가옥] 북한산 둘레길이 시작되는 도봉구 방학동의 인적 드문 산자락, 2012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올해까지 복원 사업이 완료된 간송 전형필 가옥이 자리 잡고 있다. 양부이자 숙부였던 부친 사망 후 집 부근에 묘소를 꾸미고 가업을 이었던 간송 역시 이곳에 묻혔다.1900년 경 지어진 한옥은 대지주였던 부친이 황해도, 충청도 일대의 소출을 관리하던 일종의 지역 근거지였다. 간송 사망 후 종로에 있던 본가가 철거되고 그곳에서
[미디어파인=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가톨릭 회관] 명동성당을 곁에 내주고 인파 속을 걷다 보면 수많은 유리창호로 단장된 직사각형의 건물을 명동 길에서 만날 수 있다. 바로 국내 최초의 가톨릭병원이 전신인 현 가톨릭 회관이 그것이다. 1936년 25개 병상 규모의 2층 목조건물로 문을 연 당시 성모병원은 1957년 12월 신축 병원 기공식을 시작으로, 그 후 3년 뒤 명동성모 병원의 시대를 열게 된다.하루 유동인구 150만 명에 이르는 번화가 명동 길과 삼일로가 만나는 곳에 자리 잡은 가톨릭 회관.성당과 함께
[미디어파인=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인천 공화춘] 1884년 청국 조계지가 형성되면서 인천에 들어선 최초의 차이나타운. 차이나타운은 중국의 음식과 중국의 문화가 넘치는 개항장 인천의 상징이다. 대한민국 외식문화의 시초라 일컫는 짜장면. 100여 년 전, 인천에서 태어난 짜장면의 숨겨진 이야기는 무엇일까?지난 2006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2012년 짜장면 박물관으로 개관한 옛 공화춘. 짜장면의 발원지로 알려져 인천 차이나타운을 찾는 이들이 한 번쯤 들르는 명소로 재탄생했다. 박물관엔 개항과 함께
[미디어파인=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가락시장] 새벽 4시 53분, 생산지에서 농산물을 싣고밤새 달려온 화물차가 시장에 도착하고 수많은사람들이 성시를 이루며각자 자기 몫의 일을 합니다.파는 사람 사는 사람, 저마다 하는 일이 있고이렇게 이른 시간부터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 대한뉴스 1942호낙후된 농수산물유통시설의 근대화와 유통 체계의 구조 개선을 위해 1976년 1도시 1시장제 폐지를 시작으로 농수산물 유통가격 안정법을 마련하여 위탁거래로 혼탁해진 기존의 유통구조를 경매 시스템으로 변화시킨 첫 공영도매시장으로 1985년 6
[미디어파인=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연세대 핀슨홀]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의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는 언더우드관과 스팀슨관, 그리고 아펜젤러관.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있는 이 세 건물 뒤로 비슷한 시기에 건축된 영국 주택 양식의 기숙사 한 동이 있다.1917년 이곳에 캠퍼스를 마련할 당시, 기부금 조성에 공이 컸던 미국 남 감리교 총무 핀슨 박사를 기념해 명명된 핀슨홀이 바로 그 건축물이다.연희전문학교 재학 시절, 시인 윤동주가 주옥같은 작품들을 남겼던 곳이기도 하다.
[미디어파인=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서울 현충원] 서울 동작구 현충로 210. 관악산 기슭의 공작봉을 주봉으로, 능선이 3면을 감싸고 있고 한강이 굽이쳐 흐르는 곳에 우리나라 국립묘지의 시초 서울 현충원이 있다. 40만 평이 넘는 성역에는 구한말 의병을 위시해 국가의 위기 때마다 산화한 수많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이 모셔져 있다. 전사자가 급증하던 한국전쟁 당시 11개월의 답사를 거쳐 마련된 영면의 터.묘지가 착공된 건 한국전쟁이 끝나고 이듬해 봄. 그리고 1956년, 현충일이 제정되면서 국군묘지